덧붙이는 이야기
큰맘 먹고 대청소를 계획했다. 그러나 호기롭게 달려든 거에 비해 좀처럼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벌려놓은 건 많은데, 해가 지기 전까지 마무리가 안 될 듯싶다. 이를 어쩌나?
이게 다 과거에 연연해서 그런 거야! 손에 들고 있던 일기장을 덮어 버렸다. ‘너 때문이야.’ 가끔 하는 대청소 때마다 손에 들어왔다 하면 도무지 나가지 않는 일기장. 순식간에 과거의 나로 빙의하게 만드는 그 일기장이 늘 나의 추진력을 방해한다.
녀석과 쌍벽을 이루는 것은 과거 지인들과 주고받았던 편지이며, 꼬리처럼 매달려서 내 시선을 강탈하는 것은 과거의 사진첩이다. 지나간 추억을 조각조각 담고 있는 물건들은 물귀신 작전이라도 펼치는지, 내 시간을 야금야금 잡아먹는 데에 아주 탁월하다.
그나마 긍정적인 추억을 담은 것들은 시간이 그렇게 아깝지 않다. 그때의 행복이나 즐거움을 다시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부정적인 기억을 담은 것들이다. 분명 시간이 지나서 괜찮은 줄 알았다. 그런데 그때의 감정을 되돌아보면서 잊었던 미운 감정이 되살아나기도 하고, 해결된 줄 알았던 원망이나 불평이 새롭게 솟아오르기도 한다.
현재의 내가 해야 할 일을 끝내지 못하게 된 것도 속상한데, 반갑지 않은 감정이 다시 떠올라서 쓸데없는 감정 소모를 하게 되어 여간 찜찜한 게 아니다.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현재에 충실하자’는 명언들이 어째서 쏟아지고 있는지 너무 이해가 된다.
그래서 우리 가족의 지나온 과거를 되짚어 보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간의 역사에는 완벽한 행복이나 즐거움이나 보람만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아픔을, 그때의 초라함을, 그때의 수치를 지금 내가 다시 직면해도 될 만큼 괜찮은 게 맞는지 분명 고민이 되었다.
그러나 과거를 돌아보기로 한 나의 선택에는 정말 후회가 없다. 아니 오히려 잘했다고 칭찬하고 싶다. 그것이 단순히 사진을 보며 기억을 떠올리거나, 일기를 읽으면서 그때의 감정을 되살리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었다면 분명 후회가 뒤따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거를 돌아보면서 글을 쓰는 것. 그때의 감정을 정리하고, 지금의 긍정적인 변화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글’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리라. 나에게 있어 이번 글쓰기는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과거를 과거 그대로 인정하는 작업이었다.
우리 가족의 스토리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앞으로 또 어떠한 돌발상황이 발생할지 예측할 수 없어 미래가 불안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마냥 두렵지만은 않다. 과거를 돌아보니, 나도 모르게 걸어온 이만큼의 시간이 감사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완전이 아닌, 안전을 꿈꾸게 된 것이 너무 다행이다 싶다. 불가능한 목표를 가지고서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되니 이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물론 울고불고할 일들, 좌절하고 절망할 일, 아예 없을 수는 없겠지. 하지만 징검다리 하나를 건너보았으니, 두 개 세 개 거뜬히 건널 용기 하나쯤은 장착한 게 아닐까.
마지막으로 바라는 게 있다면, 지극히 개인적인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다른 분들에게 의미있게 닿는 것이다. 누구나 슬픔 하나를 지니고 살아야 하는 게 인생이라면, 서로의 슬픔 나누며 이겨낼 힘을 공유하는 것도 인생의 묘미이지 않겠는가.
지금껏 함께해 주신 독자님들, 감사드립니다.
언젠가 다른 모양으로 다시 소통할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완전하진 않아도 안전하게,
오늘 하루도 행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