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마지막화)
“그렇다고 휴대폰을 반납할 필요까지 있을까?”
집으로 향하는 길에 동민이가 레도에게 물었다. 레도는 싱글싱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가마미 때문에 기계에 질린 건 알겠는데, 휴대폰은 다르지. 아무리 오작동을 한다 한들 널 묶을 일은 없을 거잖아.”
동민이 불만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레도는 피식 웃으며 그를 바라봤다.
“휴대폰 없으면 죽을 것 같잖아? 근데, 안 그래. 엄청 시원하고 뭔가가 홀가분해.”
동민이는 입술을 삐죽였다. 함께 게임하던 날들이 떠올라서였다. 이제는 집 전화로 연락을 취해야 하고, 문자로 나누던 비밀 이야기들도 전처럼 나눌 수 없다.
“스마트폰 싫으면 2G폰이라도 해, 응?”
레도는 웃으며 고개를 저어 보였다. 기계라면 정말 신물이 난다. 언제나 최신형 게임기, 최신형 휴대전화, 최신형 기기 등에 관심을 가지던 레도였지만, 이제는 그 모든 것들이 징그럽게 느껴졌다. 특히, ‘인공지능’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몸서리가 쳐진다. 그래서 준이가 ‘디지멀’을 자랑하는 자리를 언제나 피하고 있었다.
“어?”
레도가 걷다 말고 걸음을 멈췄다. 바닥에 쭈그리고 앉은 남자아이 하나가 길쭉한 감자 과자를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도는 빠른 걸음으로 남자아이에게 다가갔다. 아니나 다를까 남자아이는 과자를 개미집 입구에 집어넣으려고 시도하던 참이었다. 그 손을 레도가 다급히 붙들었다. 깜짝 놀란 아이가 레도를 올려보았다.
“그러면 개미가 굉장히 놀랄 거야.”
“응?”
초등 2학년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가 의문스러운 눈으로 레도를 응시했다.
“개미는 네가 공격하는 거라고 생각할 거야.”
“어? 아닌데? 난 그냥 먹이 주려는 건데?”
아이가 천진한 얼굴로 레도에게 말했다. 레도는 아이에게 웃어주었다.
“그래, 네 마음은 알겠어. 근데 개미집 입구에는 넣지 마. 입구가 막혀 버리면 개미들이 드나들 곳이 사라지는 거야. 그러면 개미들은 굉장히 당황하게 되고, 그 과자를 치우느라 힘들 거야. 그냥 여기 바닥에다 내려놔 봐. 냄새를 맡고 자기들이 알아서 가져갈 테니까.”
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레도의 말대로 길 위에 과자를 내려놓았다. 레도는 그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해주었다.
“형은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이 형은 말야. 예전에 그랬다가 개미가 우왕좌왕하는 것을 봤거든.”
동민이가 대신 대답했다. 아이는 감탄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레도와 동민이는 다시 집을 향해 걸었다.
“먹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집을 망가뜨렸을 때, 얼마나 무서울까?”
레도의 질문에 동민이가 손가락을 딱 소리 내며 튕겼다.
“도움이 될 줄 알았는데, 위험을 안겨 준 기가마미처럼?”
레도는 씨익 웃었다. 동민이는 며칠 새 한결 의젓해진 레도가 낯설면서도 그런 레도가 무척 반가웠다. 씁쓸한 웃음과 함께 매번 핀잔을 던지는 친구보다는 바른 마음으로 바른 이야기를 하는 친구가 더 좋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에 왔다 갈래?”
“왜? 같이 게임하게?”
동민이는 잔뜩 기대하는 마음으로 되물었다. 그러나 레도가 고개를 내젓는 모습에 따라 동민이의 얼굴이 실망으로 일그러졌다.
“아직 게임 할 마음도 없는 거지? 알았어, 인마! 가서 같이 숙제나 하자!”
레도는 활짝 웃었다.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엄마가 싫어하는 것들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고 나니, 집에 늦게 들어갈 이유도 사라졌다. 레도는 동민이와 함께 일찍 집에 가서 엄마가 만들어주는 간식을 맛있게 먹고 싶었다. 그럴 때, 엄마의 얼굴이 해와 같이 밝아지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숙제를 끝낸 레도는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점심시간에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었다.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고 나니, 더 이상 글자들이 징그럽지 않았다.
게다가 기개 있는 장수들의 이야기인 삼국지가 만화로 그려진 책이 레도의 온 관심을 사로잡았다. 도서관에 그와 같은 책이 수없이 많다는 사실이 레도는 너무도 설렜다. 아빠가 본인이 알고 있는 삼국지의 인물들에 대해 옆에서 설명을 늘어놓는 게 레도는 귀찮았다. 이미 다 읽은 아빠가 하는 이야기는 레도에게 방해가 됐다.
그러나 레도는 그런 아빠의 수다에도 버럭 화를 내지는 않았다. 어느덧 레도는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리는 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아빠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레도는 한마디 했다.
“아빠, 저 다 읽으면 그때 다시 이야기 나눠요.”
아빠는 레도가 변한 것이 정말로 신기한 모양이었다. 무심한 듯 사과를 아삭 씹으면서 던진 말에 아빠는 제법 긴 시간 레도를 바라보았다.
“아빠 닮아서 멋있다는 말은 이제 그만 하세요.”
아빠는 참지 못하고 레도의 온 머리카락을 헤집으며 허허허 웃음을 터뜨렸다. 레도는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굳이 정리하지 않았다. 어차피 자는 동안, 흐트러질 머리카락 먼저 흐트러진들 큰일 날 것 없다. 그렇게 엉망이 된 머리카락인 채로 새로운 사과 조각을 집어 들었다.
그때, ‘쾅!’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온 집안을 들었다 놨다. 아빠와 레도는 의아한 얼굴로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야, 이시도! 너 대체 왜 그래? 그렇게 문을 쾅 닫으면 이웃집에서 얼마나 놀라겠어?”
엄마의 고함이 터졌다.
“쟤가 도대체 요즘 왜 저러는지 모르겠네. 아프고 난 뒤로 너무 예민해졌어.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 아유, 그 속에 들어가 볼 수도 없고 답답하네, 정말!”
엄마가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내뱉는 말에 아빠와 레도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빠, 기가마미 다시 데리고 와야겠는데요?”
“그럴까?”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아빠는 작성하던 서류를 내보였다. 맨 위엔 ‘기가마미 사용 후기’라는 글자가 크게 적혀 있었다.
“쓰고 싶은 말, 있어?”
아빠가 레도에게 물었다. 그러나 레도는 여전히 삼국지에 빠진 채 고개를 흔들었다.
“얼마 뒤, 기가마미가 시중에 출시될 거야. 정말로 해 줄 말 없어?”
아빠의 말에 레도가 시선을 들었다. 그러고는 아빠가 들고 있는 종이를 바라보았다. 레도는 아빠의 손에 있던 볼펜을 받아들고서 종이의 빈칸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이름 : 이레도
*나이 : 13세
*사용기간 : 6일
*사용 후기 : 경고! 절대로 기가마미와 아이를 단둘이 두지 말 것!
아빠는 할 말을 다 기록한 뒤 다시금 삼국지로 시선을 돌린 레도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그리고 나머지 빈칸에 아빠의 생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아빠의 후기 : 기가마미는 훌륭한 로봇입니다. 그러나 아이에게는 역시 사랑하는 엄마가 최고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 기회였습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없는 로봇은 오작동을 일으켰을 때, 오히려 아이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아이를 향한 엄마의 마음이 사랑과 얄미움 그리고 속상함과 염려가 뒤섞여 혼란스러운 만큼, 그 정보를 입력하는 과정에서 기가마미 역시 혼란을 겪은 것 같습니다. 그런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앞으로 저희는 절대 돌봄형 로봇을 사용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아빠는 할 말을 다 기록한 뒤, 시도로 인해 속상해 하는 엄마를 바라보았다.
“여보, 하고 싶은 말 있어?”
엄마는 멍하니 방문을 바라보다가, 잠시 고민하더니 조용히 다가와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한참을 서 있던 엄마는 말없이 펜을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글을 남겼다.
*엄마의 후기 : 레도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아이가 아닌 내 마음부터 돌아보는 일이라는 걸요. 시도에게도, 저는 ‘진짜 엄마’로 남고 싶습니다. 로봇은 대신할 수 없는 자리니까요. 여전히 서툴고 두렵지만, 저는 엄마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당 연구소는 돌봄의 어려움 속에서 지쳐가는 부모들에게 감정 없는 로봇을 권하기보다, 사랑으로 아이를 이해하고 돌볼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엄마는 종이를 내려놓고, 잠시 숨을 골랐다. 문득 자신의 말투와 행동을 돌아보는 듯했다. 그러곤 고요하게, 식탁 옆 의자에 앉았다. 아빠는 엄마의 후기를 본 뒤, 가만히 엄마의 어깨를 안아 주었다.
아무 말도 없었지만, 레도는 알 수 있었다. 누군가가 진심으로 변하려 한다는 건, 어떤 기계보다도 믿음직한 일이라는 것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