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리고 긴장되는 마음, 저만 느끼는 걸까요?
“내일이 신검 있는 날인 거 알지?”
어젯밤(25일) 아들이 말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스무 살인 아들에게 개학하기 전에 검사를 받아 두는 게 좋겠다고 말한 건 나였다. 그런데 아이가 검사일로 신청한 날이 바로 오늘이었던 것이다.
작년 아이의 생일이 지난 이후로 검사일을 선택하여 신청하라는 공문서가 두 차례 집으로 왔다. 일명 ‘신검’이라 불리는 병역판정검사의 날을 당사자가 직접 고를 수 있다니, 참 괜찮은 제도라 생각했다. 학업이나 생활에 무리 되지 않게 조율할 수 있으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병역판정검사가 끝나고 나면, 입영 날짜까지 선택할 수 있다. 예기치 못한 날에 입영통지서가 날아와 당사자와 주변 사람들을 당황케 하는 일은 이제 사라졌다. ‘세상 좋아졌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한 마디로 예전에는 병무청이 정해주고 본인이 맞추는 구조였다면, 지금은 병무청에서 배정한 범위 내에서 개인이 선택하고 병무청이 조율하는 구조로 바뀐 것이다.
이왕 다녀와야 할 곳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다녀오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부담스러운 일을 먼저 해치우고 나면, 마음 편할 날이 더 많아지니 그 편이 더 낫다고 여겼다. 하지만 심심찮게 보도되는 군 관련 좋지 못한 소식들은 늘 걱정의 산을 쌓게 만들었고, 좀 더 있다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언젠가’라는 마음으로 안심하고 있던 일이 당장 코앞에 닥쳐온 것이다. 물론 검사한다고 바로 입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아들이 다니는 과의 선배들은 2학년까지 마치고 입대하기를 권유했다고 한다. 그러니 아직 3학기라는 시간이 남아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입대 일정의 첫 단추를 끼웠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은 요동쳤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검사지, 경인지방 병무청은 내비게이션 상 46분 거리였다. 대중교통 이용 시 1시간이 훌쩍 넘는다. 이른 아침, 아이를 혼자 보내는 것보다는 함께 가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인터넷에서 선배 부모들의 후기를 찾아보니, 모두 한목소리로 말했다. “일찍 가서 대기표를 받아라, 그래야 빨리 끝난다.” 그래서 알람을 06시 30분으로 맞춰 두었다.
길 찾기에 젬병인 내가 단번에 길을 찾아가지 못할까, 아이가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질까, 혹은 검사 시간에 당도하지 못할까 걱정되었다. 다행히 일정을 비울 수 있다는 남편과 동행하게 되었지만, 나는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밤새 비가 내렸다. 하늘이 찢어질 듯한 굉음도 들렸다. 괜스레 심란한 마음에 불안마저 겹쳤다. 뉴스에서 본 군 관련 사건 사고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도중에 일어나 물도 한잔 마시고, 화장실도 다녀오면서 마음을 달랬다.
‘안전하고 건강하게 잘 다녀온 아이들이 훨씬 많아.’
아침에 도착한 경인지방 병무청은 왠지 삭막하게 느껴졌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 때문에 더 그리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먼저 들여보내고 주차를 마친 뒤 건물 안에 들어갔다. 안내에 따라 이동했는지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알아서 잘 들어갔겠지, 라는 마음으로 안심하자마자 미간이 일그러졌다.
코끝에 닿는 냄새가 유쾌하지 못했다. 강한 에어컨 바람에도 꿉꿉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안내하는 이들의 표정도 밝지 않았다. 남편은 그 일을 하는 아이들이 아마 사회복무요원일 거라고 했다. 그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래, 국가를 위해 의무를 다하고 있는 청년들이, 후임으로 오게 될 후임병의 부모에게까지 친절을 베풀 필요는 없는 거겠지.
대기실 내부는 제법 넓고 깔끔했다. 의자도 넉넉했고, 읽을 책도 준비되어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빗속 풍경은 잠시 마음을 누그러뜨려 주었다. 다만 차를 마실 공간은 있었지만 정작 마실 차는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집에서 음료를 좀 챙겨올 걸 그랬다.
홈페이지에는 검사가 4시간 정도 소요될 거라고 안내되어 있었다. 아들이 받게 될 검사는 심리 검사(정신건강의학과 정밀검사 대상자 선별), 신체검사(각 부위별 건강정도검사, 신체등급 판정 1급~7급), 적성분류(자격, 면허, 전공학과, 직업, 경력 등)였다. 실제로 검사를 받고 온 이들의 후기에서 개인마다 시간의 차이가 있었고, 누군가는 2시간 만에 끝났다는 후기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어디 다녀오지 않고 기다리기로 했다. 30분 정도 일찍 왔으니, 후기를 올린 사람들보다 더 빨리 끝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대기실에서 책을 읽으며 기다리다, 에어컨의 위력에 못 이겨 차에서 기다리기도 했다. 차에서 책을 읽다가, 까무룩 잠들었다가를 반복하는 와중에 세찬 비가 한차례 내리기도 했다.
2시간이 지났지만, 검사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침 일찍 나서느라 물 한 모금도 먹지 못한 상태였기에 상당히 허기가 졌다. 주변 카페를 검색해 보았으나, 이른 아침 오픈한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본 결과, 병무청 바로 앞에 자그마한 카페가 있음을 뒤늦게 발견했다. 갓 구운 스콘과 에그 타르트, 부드러운 카푸치노와 말차라떼가 있는 곳. 마치 이른 아침 병무청을 찾는 이들을 위해 일찍부터 서둘러준 듯한 카페의 온기가 날 선 불안과 허기를 달래주었다.
“2급이야. 1급 나올 줄 알았는데....”
아들의 검사는 약 2시간 30분 만에 끝났다. 판정 결과는 신체등급 2급, 현역대상. 체중이 적어 2급이 나왔다는 설명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나는 양가적인 마음을 품고 있었다. ‘정신과 신체가 건강해서 1급이 나오기를’ 바라면서도, ‘사회복무요원으로 빠질 수 있는 4급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 그러나 어떤 다른 문제는 없고, 단지 말라서 받은 2급이니 감사한 마음이 앞섰다.
이제 아들은 입영 날짜를 3학기 이후로 선택하여 신청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곧 군 생활을 시작하게 되겠지.
사람들은 종종 여성의 출산과 남성의 군 입대를 같은 무게로 이야기하곤 한다. 너를 낳았던 엄마처럼, 너도 이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맡은 역할을 감당하게 되겠구나.
다만 의연하지도, 씩씩하지도 못한 엄마는 그저 기도할 뿐이다. 그 길이 험난하지 않기를, 그리고 너에게 유의미한 시간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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