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_가족 중 한 사람에게 편지글 쓰기
여보! 시원해? 난 지금 당신이 화장실에 가고 없는 틈을 타서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어. 편지를 쓰고 싶은 가족과 쓸 이야기들이 무궁무진하지만, 오늘은 꼭 당신에게 편지를 써야 할 것 같아.
이제 당신이 그렇게도 고대했던 2주간의 휴가가 서서히 저물고 있어. 날마다 퇴직할 연도를 손가락으로 꼽는 당신. 몇 년만 더 일하면 되는지, 늘 그것을 가늠하고 현재의 고난을 견뎌내는 당신을 보면서 난 늘 여러 가지 감정이 들어.
능력 있는 아내라면, ‘너무 힘드니 이제 그만 회사 생활 접고 쉬어!’라고 말해주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아내라서 늘 미안해.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몇 년만 더 참으라고 말하는 내가 나도 참 잔인한 속물처럼 느껴져. 우리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어느 자리에서든 잘해 내는 당신이 나는 참 자랑스럽고 고마운 마음이 커.
이번 명절 연휴를 끼고 낸 2주간의 휴가는 정말 잊지 못할 순간의 연속이었어. 물론 글쓰기 활동을 하는 중이라 글을 쓰며 앉아 있고 싶은 순간이 더 많아서 초조했던 건 사실이야. 그럼에도 당신의 바람대로 달 구운 바람, 국립중앙박물관, 화성행궁, 스타필드 등으로 부지런히 함께 다녔어.
귀경길에 들렀던 문경새재 도립공원도, 시댁 식구들과 함께했던 해운대 바닷가도, 현재 귀성길에 들른 문경 리조트도 너무 즐겁고 행복했어. 든든하고 유쾌하며 사랑이 넘치는 당신이 중심이 되는 우리 가정. 이 안에서 우리 아이들은 정말로 아름답게 잘 자라나고 있고, 나 역시 감사가 가득한 일상을 누리고 있어.
이번 연휴 때, 엄마네 전등을 두 개나 갈아주고, 선풍기 청소까지 도맡아 해준 당신, 정말 고마워. 엄마의 이런저런 부탁에 싫은 내색 한번 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섬겨주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자기는 모를 거야.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짝으로서 언제까지나 함께 하고 싶은 마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알지? 오늘 리조트 내 오락실에서 당신에게 눈을 흘겼지만, 그건 정말 스쳐 지나가는 아주 가벼운 삐짐일 뿐이야.
사실, 그렇잖아. 우리 딸은 어느새 엄마만큼 키가 커졌고, 아주 우월한 체력의 소유자가 되었어. 배드민턴이나 탁구 경기를 해도 이제는 나에게 쉽사리 지지 않는 아이가 되었단 말이야. 오늘 오락실에 있는 ‘미니 볼링’도 그래. 자기가 굳이 도와주지 않아도 걔는 나를 이길 역량이 충분히 있는 아이야. 한 프레임을 굳이 자기가 대신 쳐줄 필요 따위 없었다는 거지. ‘에어 하키’도 그래. 이미 나를 이기고 있는 아이 편에서 내 골대에 볼을 일부러 집어넣어 버린 건, 정말 어처구니없는 행동이었어. 그게 아이를 향한 사랑에서 비롯된 행동이 아닌, 나를 골탕 먹이려고 하는 행동처럼 느껴진 건 내 기분 탓일까?
여보, 사랑해. (불평해 놓고 갑자기 고백이라며, 당신은 분명 콧바람을 쌩 내보내겠지? ㅎㅎㅎ)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한다고 해도, 당신의 나를 향한 사랑의 뿌리가 하도 깊어서 그렇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어. 자기를 향한 나의 사랑도 우리를 부부 되게 하신 그분 아니고서는 누구도 방해할 수 없을 거야. 그래, 우리에겐 누구도 흔들 수 없는 굳건한 뿌리의 긴 역사가 있으니까.
불과 몇 년 전에 ‘헤어짐’을 거론한 부부치고는 좀 뻔뻔한 걸까? 하지만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는다는 걸, 우리는 아마도 증명한 게 아닐까 싶어. 그때의 그 파란이 우리를 한 뼘 더 성장 시킨 거라고 생각해.
‘어쩜 저래’ 할 정도로 나와 다른 당신. ‘역시 우리야’ 할 만큼 또 닮은 우리. 우리는 아마도 서로 다른 점으로 여전히 논쟁할 거고, 같은 점으로 즐겁게 웃음을 터뜨리겠지. 정말 바라기는 우리의 긍정을 앗아갈 만한 고난은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물론, 적지 않은 고난의 연속 중에서도 우리는 끝내 긍정의 다리 위에 서 있긴 했어.
하지만 기도할 힘이 남아 있는 한, 난 계속 기도하게 될 거야. 당신의 건강, 우리 가족의 건강. 언제까지나 서로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고통이 아닌 위로와 힘이 되는 존재가 되기를. 우리 가정의 있는 모습 그대로가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고, 누군가를 일으킬 만한 영향력을 발휘하기를.
남은 3일도 최선을 다해 행복하자. 그렇게 비축한 힘으로 또 남은 한 해를 살아내자. 서로의 다른 점에 분내지 말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안아주자. 오늘 편의점에 다녀오며 나누었던 이야기처럼 아이들의 성장을 함께 바라보고, 함께 기뻐하자. 연애부터 지금까지 함께 해 왔던 27년보다 더 진한 사랑을 마음껏 하자, 여보. 알겠지? (그래, 알겠어. 라고 답하는 당신의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는...)
-당신을 '여보'라고 부르는 유일한 사람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