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하 선생이 쓰신 [왜 지금 고조선 문명인가]란 책을 보다가 '콩의 식용 연한이 8천 년‘이란 내용이 있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나 '콩의 시간'이 길어졌다니! 한반도는 '콩의 원산지'로, 세계에서 통용되는 작물의 원산지 조건에 모두 부합된다. 물론 탄화 콩의 존재는 '빼박'이다.
1980년대 콩을 지극히 사랑했던 몇몇 학자들은 ’한국콩연구회‘를 결성하고 콩 박물관 설립을 목표로 '콩박물관추진위원회'를 운영했다. 나는 총무 간사로서 박물관에 전시할 자료를 요약하는 일을 맡았다.
우리 민족이 언제부터 콩을 먹었는지에 대해서는 '5천 년(기원전 3천 년)' 정도로 정리되었다. 그때까지 발굴된, 50여 군데의 유적지를 참고한 결과였다. 내 기억에, 북한 쪽에서 나온 자료에는 6천 년 전의 콩 유적지도 있었다. 한편, 충북 제천 점말 용굴에서 나온 4만 년 전의 콩 화분(꽃가루)에 대한 자료도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연결하면 좋을지, 어떤 아이디어도 없었기 때문에 최종 전시 콘텐츠에서는 빠졌다...
박물관 개관(2014년 영주 콩세계과학관) 후에도, 새로운 신석기시대 유적지들이 속속 발굴되었고 유물들도 쏟아져 나왔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강원도 양양 오산리에서 발굴된 '탄화 콩 18종과 잡곡들‘이다. 콩은 토기의 밑바닥에 압흔 형태로 있거나 탄화된 채였다. 탄화 콩은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실시한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 결과 7,175~7,160년 전으로 밝혀졌다. 이는 중국 쪽보다 대략 3천 년 이상 앞선 것이다.
쌀의 경우 1만 2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충북 청원 '소로리 볍씨'가 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쌀과 콩을 보유하는 나라가 되었다. 강조하지만, 모두 과학적으로 실증된 결과다.
위에 언급된 책에 따르면, 마지막 빙하기에는 전체 유라시아 대륙이 동토가 되었다. 상대적으로 따뜻했던 북위 40도 이남으로 이동했던 구석기인들만 생존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산둥반도와 한반도는 해수면이 낮아져 걸어 이동이 가능했다. 한반도는 아침 해가 가장 일찍 뜨는 동쪽인 데다 혹한을 피할 수 있는 석회석 동굴이 많아 인구 밀집 지역이 되었다.(*4만 년 전 충북 청원 두루봉 동굴에 5살 '흥수 아이'가 살았다!)
해빙기가 진행되자, 사람들은 모두 동굴에서 나와 강변과 해안에 움막을 짓고 마제석기와 토기를 만들어 사냥, 어로, 식료 채집은 물론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기 시작했다. 이것이 인류 문명 시대를 알리는 '농업혁명' 스토리다.
당시 한반도에 살았던 신석기인들이 먹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식품들은(*탄화 유물 참조) 쌀, 콩, 조, 기장, 들깨 외 다양한 짐승의 고기와 물고기, 각종 푸성귀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조리법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겠지만 식재료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우리 조상들은 쌀을 이용해 밥, 떡, 술을 만들고 콩을 이용해서는 콩나물, 두부, 장 등 다양한 콩 가공식품들을 만들어왔다. 우리 민족과 쌀과 콩은 오랜 운명공동체였다. 왜 '밥심(밥힘)으로 살고’ ‘마음은 콩밭에' 늘 있는 것인지... 우리 식문화에 있어 쌀과 콩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설득이 된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이 땅에 사는 한 앞으로도 쌀과 콩을 기본으로 하는 식생활은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