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안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나고 자란 나는 맨손으로 게를 잡는 것이 무섭지 않다. 친구들과 놀다가도 운이 좋으면 어렵지 않게 꽃게나 박하지 한두 마리 정도는 잡을 수 있는 환경이었다. 게를 잡다가 집게발에 물려 피를 몇 번 본 뒤로는 다치지 않고 잡는 방법을 터득했다. (집게발과 가장 먼 곳, 생식기 쪽을 꽉 잡으면 물릴 염려가 없다) 썰물이 질 때 미처 되돌아가지 못한 꽃게는 물이 들어찬 웅덩이에서 만날 수 있었고, 박하지는 얕은 물이 흐르는 작은 바위들을 배꼼이 들어 올려 잡으면 그 맛이 짜릿했다. 그때의 추억 때문인지 어시장에 가면 많은 바다생물 중에 게가 가장 반갑다.
고향에서는 간장게장이 아주 흔한 음식이다. 엄마께서는 게가 잡히는 시기에 따라 꽃게, 박하지, 농게, 능쟁이 등 다양한 종류의 게장을 담가주셨다. 꽃게는 1년에 두 번, 봄과 가을이 꽃게 철이다. 암꽃게는 4~6월이 제철로 이때는 주황빛 알이 꽉 들어찬 먹음직스러운 게장을 만날 수 있다. 수꽃게는 9~11월에 많이 나는데 이때에는 암꽃게보다 수꽃게가 살이 더 통통하고 단맛이 난다. 게장을 담가놔도 게딱지에 알은 없지만, 몸통에 살이 많아서 수꽃게 장도 밥도둑 역할을 충분히 한다.
게 중에서도 가장 사나운 박하지는 꽃게처럼 봄, 가을에 많이 볼 수 있다. 성질이 포악해서(물론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다) 가까이 손을 뻗으면 양다리를 들어 올려 물어버릴 듯 공격 태세를 취한다. 실제로 박하지를 잡다가 자주 피를 봤다. 빠르고 힘이 좋은 박하지는 게장을 담가놓으면 살의 탄력이 좋아 씹는 맛이 좋다. 다만, 껍질이 단단해서 이로 발라먹기엔 무리가 있다. 엄마께서는 박하지 게장을 상에 낼 때 항상 집게발을 깨서 먹기 좋게 만들어 주셨다.
더위에 입맛을 잃어갈 무렵엔 농게장과 능쟁이장이 밥상 위에 오른다. 갯벌의 진흙 바닥에 구멍을 내고 사는 이들은 자기 몸통보다 큰 왕발을 가진 농게와 그보다 조금 작은 납작한 능쟁이. 작은 게들이지만 게장을 담가놨을 때 특히 감칠맛이 좋다. 게딱지에서 나오는 천연 조미료 맛 때문인지 식감은 큰 게에 비해 부족하지만, 입안을 가득 채우는 바다 향에 한두 마리 정도면 죽은 입맛을 살려놓는다.
고등학교를 진학해서 집을 떠나왔을 때야 간장게장이 특별하고 자주 먹을 수 없는 음식 아니, 거의 먹기 힘든 것임을 알게 됐다. 그때부터인 것 같다. 그 어떤 산해진미가 있어도 나의 첫 젓가락은 으레 간장게장으로 향한다. 아이들을 임신했을 때는 머릿속에서 ‘간장게장’이라는 네 글자와 이미지가 떠나지 않아서 못 참겠다 싶을 때마다 엄마에게 달려갔다. 보통 임신했을 때는 음식을 가려먹는다. 게장은 날것이라 식중독 위험이 있고, 태교를 생각해서 많이 먹으면 아이의 뼈가 일찍 닫힌다고 하니 그나마 자중을 한 것이다. 그 와중에도 우리 아이들은 뱃속에서부터 게장 맛을 알아 버렸는지 간장게장을 무척 좋아한다.
엄마가 없는 지금도 고향에 갈 때마다 현지인 추천 간장게장 맛집을 빼놓지 않고 방문한다. 흰쌀밥 위에 알을 품은 꽃게 장 한입이면 2시간 넘게 달려간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그마저도 힘들 땐, 아이들 입맛까지 고려해 만든 나만의 레시피로 엄마의 간장게장을 흉내 내어 담가 먹는다. 다행히 세월이 흐를수록 엄마의 간장게장 맛과 얼추 비슷해지고 있다.
두근두근 간장게장
꽃게 중간 크기 4~5마리 기준(종이컵 계량)으로 간장게장을 담근다면, 제일 먼저 할 일은 산 꽃게를 깨끗이 닦아 냉동실에 1시간 이상 얼리는 것이다. 그랬을 때 게장을 담가놓으면 통통한 꽃게 살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 청양고추, 홍고추, 마늘 각 10개 정도를 적당한 크기로 어슷하게 썬 다음 씻어 놓은 게 위에 뿌린다. 생강 1쪽도 편으로 썰어 얹는다. 여기에 진간장 3컵, 사이다 1컵 반, 매실액 1컵, 매실주 1컵(또는 소주 1컵)을 혼합하여 끓여서 식혀 붓는다. (끓이는 것을 생략하고 바로 재워도 된다) 3일 이상 냉장고에서 숙성시키면 매콤하고 감칠맛 나는 간장게장을 맛볼 수 있다.
‘소울 푸드’는 영혼을 흔들 만큼 인상적인 음식으로 향수를 불러일으키거나 마음을 위로해 주는 음식을 말한다. 간장게장은 나의 소울 푸드다. 첫 숟가락을 입에 넣자마자 엄마에게 토닥임을 받는 느낌이 드니 이건 확실하다. 자주 밥상에 오르던 음식이 환경이 바뀌게 되면서 흔히 먹을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됐고, 언제까지나 건강하실 줄 믿었던 엄마의 부재로 뒤늦게 그 음식의 귀중함을 더 깊이 깨닫게 됐다. 엄마의 레시피를 온전히 기억해 내지 못했지만, 입맛을 더듬어 보았다. 우리 아이들에게 외할머니 간장게장의 정서와 맛을 전하고 싶었다. 단순히 재료를 섞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엄마의 마음과 그 시절의 추억이 담겨 있음을 아이들도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지난 9월에 게장을 담그려 살아 움직이는 꽃게를 닦고 있는데 딸이 다가왔다.
“에고, 울 엄마! 외할머니가 또 보고 싶은가 보네. 꽃게 장 담그게?”
“응, 가을이잖아.”
“그러잖아도 게장 생각이 났는데…….”
딸도 계절에 따라 엄마의 음식을 생각하고 그 음식을 떠올리고 있었나 보다. 소울 푸드간장게장으로 삼대가 온전히 연결되었음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꽃게를 보고 외할머니를 떠올리고 엄마의 그리운 마음을 헤아리며 그 너머 음식을 먹고 싶었다던 딸을 보니 음식에 대한 진심이 잘 전해진 것 같다. 이야기를 품은 음식은 이렇게 다음 세대에 자연스럽게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