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태와 오이 볶음
주말 아침, 어쩌다 보니 남편과 루틴을 만들게 됐다.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고 카페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로 간단한 브런치를 즐긴다. 특별히 갈 곳이 없는 '아주 보통의 하루'에는 근처 재래시장에 들러 살아 움직이는 시장 구경을 즐긴다. 그중에서 재래시장 즉석 김은 우리 집 단골 메뉴다. 얼마 전 그 가게가 문을 닫아서 근처 마트에 들렀다. "앗, 감태다"하는 남편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대기업에서 만든 감태 조미김을 보고 서산 처가에서 먹던 감태가 생각나 반가웠나 보다. 남편은 익히 알던 감태를 기대하고 사자고 했다. 집에 돌아와 감태 봉지를 뜯었을 때, "엥, 그냥 파래김 같네" 생김새는 물론 비슷한 향조차 맡을 수 없었다.
감태는 머리털같이 가느다랗고 길이가 아주 긴 초록색 녹조류다. 12월에서 3월 사이 추운 겨울에만 서해안과 남해안에서 자란다고 한다. 채취, 세척, 건조까지 모든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져 귀한 식품이라고. 성장 조건이 매우 까다로워 양식이 쉽지 않았기에 흔하게 볼 수 없는 먹거리였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남해 해양연구소에서 개발한 양식 기술을 통해 재배하고 있다고 한다. 감태에는 비타민, 미네랄,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칼슘, 칼륨, 비타민A, 비타민C, 알긴산, 요오드 등의 영양성분을 가지고 있단다. 감태의 정식 명칭은 가시파래인데 감태라는 이명으로 계속 불려서 혼란은 생겼지만, 감태를 가시파래라고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인다.
남편은 감태를 우리 친정집에서 맛봤다. 처음엔 머리카락 같다며 먹기를 꺼렸는데, 들기름을 발라 소금을 적당량 뿌려 바삭하게 잘 구워낸 감태의 그 독특한 맛과 향에 서서히 빠져들어 계속 찾게 되었단다. 엄마가 살아계실 땐 어렵지 않게 맛볼 수 있었는데 돌아가신 후론 그게 쉽지 않다. 잊고 살다가 한 번씩 어렵게 만날 때마다 엄청나게 반가워한다. 하얀 접시에 정갈하게 담아 놓은 감태는 장모님을 떠올리게 되는 음식이란다. 서른 살이 넘어서야 처음 맛본 음식을 늘 그리워하고 있다니 찡한 마음이 들었다.
남편이 감태를 그리워하는 마음처럼 내게도 시집와서 처음 먹어본 음식인데 먹고 싶고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바로 '오이 볶음'이다. 오이로는 무침이나 오이냉국, 오이소박이 정도만 먹어온 나는 오이 볶음이 정말 생소했다. 시댁 밥상에서 처음 만난 오이 볶음을 조심스럽게 한입 먹었을 때를 기억한다. 그 꼬들꼬들 아작아작한 식감에 깜짝 놀랐다. 볶으면서 오이의 싱그러운 향은 많이 날아갔지만, 오이를 소금에 절여 물기를 꽉 짜서 센불에 볶았기 때문인지 입안에서 씹을 때 나는 소리와 식감이 굉장히 좋았다.
오이 볶음의 핵심 과정은 소금에 절여 물기를 꽉 짜는 것이다. 이 과정이 오이 볶음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한다. 시아버님은 절인 오이를 물기 없이 짜는데 달인이셨다. 꼼꼼한 시어머니가 믿고 맡길 정도로 빈틈이 없으셨다. 아버님이 돌아가시면서 어머니는 더 이상 오이 볶음을 하지 않으신다.(요즘 나온 야채 짜는 기계는 기대에 못미쳐 있어도 사용하지 않는다) 남편이 감태를 만나면 장모님을 생각하듯 나 또한 어쩌다 오이 볶음 요리를 만나면 시아버님이 생각난다. 반가운 마음에 급하게 맛을 보지만 시아버님과 시어머님 환상의 조합이 만드셨던 오이 볶음 맛이 아님을 알고 금세 실망한다.
음식의 회귀 현상은 누구에게나 강하게 다가온다. 보통은 어릴 때 먹던 음식이 주기적으로 몸에 당긴다. 그럴땐 적극적으로 찾아 먹거나 만들어 먹는다. 하지만, 결혼하면서 접하게 된 음식에 대한 그리움은 그 결이 조금 다른 것 같다. 남편이 감태를 그리워하고 내가 오이 볶음을 그리워하는 것은 음식의 맛에 대한 순수한 선호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먼저 아닐까? 접해보지 못한 음식을 만난다. 그 음식에 정을 붙인다. 어렵게 노력하지 않아도 쉽게 먹을 수 있던 음식이 그걸 만들던 주체의 부재로 이젠 먹기 힘들어졌다. 그 음식은 이제 그 사람을 떠올리는 매개체가 된다. 어쩌다 만나게 되면 순식간에 그 너머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마음의 중심엔 그리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