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과 여명의 노을
산벚꽃이 흐드러진 비탈길을 우리 일곱 명은 차 두 대로 거침없이 내달렸다. 황톳길을 지날 땐, 떨어진 벚꽃잎이 앞차의 뒷바퀴를 중심으로 작은 회오리를 일으키며 뱅글뱅글 춤을 췄다. 하늘은 조금씩 조금씩 어두워지고 나무 사이를 가르고 석양빛이 들어오자, 그 붉기에 자칫하면 노을을 배경으로 우아한 식사를 즐기겠다는 계획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조급해졌다. 다행히 산길을 벗어나자마자 인가가 있는 조그만 백사장이 보였다. 소박한 바닷가의 수평선 위에는 일몰이 절정을 이뤘다. 밀물을 기다리던 한 낚시꾼이 던진 그물엔 작은 물고기들이 높낮이가 다르게 은빛으로 팔딱거렸다.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은 우리의 시선을 한순간에 사로잡았고 잔잔한 감동을 줬다.
어릴 때 낙조가 예쁜 바닷가에서 살았다. 친구들과 '내일은 없다'라는 생각을 한 듯 매일 열정적으로 놀았다. 우리를 멈추게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정도였다. 하나는 "OO야 밥 먹어."라는 엄마 목소리, 그 순간 누구 엄마인지 찾기 위해 모두 동작 그만을 했다. 한 명 한 명 엄마를 찾아가면 그날 게임은 끝이 났다. 다른 하나는 유난히 붉은 노을이 수평선 위에 걸렸을 때다. 태양이 바닷속으로 다 빨려 들어갈 때까지 꼼짝하지 않고 그 순간을 눈에 담았다. 그 광경은 '아름답다'라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했다. 어리지만 노을이 있는 풍경은 그저 예쁘다고만 생각할 수 없었다. 명확하게 설명할 순 없지만 그것이 주는 건 ‘아름답지만 쓸쓸한’ 감정이었다. 그 시절 엄마의 밥 먹으란 부름이 없었더라면 슬픔이 커져 울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이번 여행은 '예쁜 일몰을 보며 저녁 식사하기'라는 목표를 가진 단순한 로드트립이었다. 각자 '노을이 있는 풍경' 시절을 겪어냈을 친구들과 함께였다. 어릴 땐 붉은 해가 바닷속으로 소멸될 때, 어둠이 두렵고 헤어짐이 서운했다. 엄마의 부름과 우리 집 굴뚝에서 퐁퐁퐁 날아가던 하얀 연기가 나를 다시 밝은 세계로 데려가 줬기에 사그라드는 노을이 주는 슬픔을 참을 수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해넘이는 마냥 아름답게만 바라볼 수 없다. 조금 다른 건 어릴 땐 친구들과 헤어짐이 서운했을 테지만 중년이 된 지금은 "OO야 밥 먹어"라는 엄마가 없어 서럽다. 일몰엔 언제나 슬픔이 배어있다. 그 슬픔엔 '헤어짐'이 있다. 어린 시절 친구와의 짧은 헤어짐이 지금은 그 시절 밥 먹으라고 부르던 엄마의 부재가.
그러나 노을은 석양에만 이는 게 아니라 아침에도 인다. 노을의 사전적 의미는 ‘해가 뜨거나 질 무렵에, 하늘이 햇빛에 물들어 벌겋게 보이는 현상’이다. 바다나 산, 강, 지평선 어디에서든 일어서는 해는 노을을 거느리며 나타난다. 아침 빛 노을은 곧 있을 밝은 세계에서 온 전령인 셈이다. 석양과 함께 온 노을에선 이별이 떠오르지만, 여명과 함께 온 노을은 설레는 만남이 생각난다. 석양의 노을은 과거를 추억하게 하고, 여명의 노을은 미래를 생각하게 한다. 사는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노을을 보며 감동하고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오늘은 슬프지만, 내일은 따뜻할 수 있다. 노을은 그렇게 윤회한다. 친구들과 ‘노을을 바라보며 저녁 식사하기’란 미션을 완수했다. 온 마음을 빼앗길 정도로 아름다움을 느끼고 풍요로운 마음이 되어 일상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