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시장 가방 속 붉은 사과
어린 시절 시장에 가셨던 엄마를 간절히 기다리던 장소가 있다. 엄마의 부재가 길어진다 싶으면 걱정하는 마음과 시장 바구니에 담겨 올 품목에 대한 기대감을 품고 엄마를 기다렸던 곳. 그곳에 올라 고개를 쭉 빼고 무작정 한 곳만 바라봤다. 그때의 감정은 '빨리 엄마품에 안겨 엄마냄새를 맡고 싶다.'였을 것이다.
입학하고 한동안 학교 갔다 돌아와서 엄마가 없으면 눈물부터 났다. ‘엄마!’를 부르며 계실만한 곳을 찾아 헤메었다. 기껏해야 집 근처에서 일하고 계셨을 텐데 엄마의 선택적 부재를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혼자가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닫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것을 이해하면서부터 씩씩해졌다. 하지만, 엄마의 긴 외출은 언제나 적응하기 힘들었다.
얼마 전 50년 지기 가장 오래된 친구 두 명과 1박 2일을 보냈다. 여러 얘기 끝에 친구 M이
“어릴 때 엄마가 시장가시면 따라가고 싶었는데, 안 데리고 가서 섭섭했어.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차도 없이 4KM를 걸어서 버스를 타고, 힘들게 다니신 거야. 이것저것 장을 보고 바삐 돌아오셔야 했을텐데 어린 나를 어떻게 데리고 갈 수 있었겠어. 엄마가 돌아오실 무렵부터 높은 곳에 올라가 살폈지. 그곳이 우리 집 마당에 있는 감나무였어.”
“어! 나도 마을회관 국기 다는 곳에 올라가서 엄마를 기다렸는데.”
“난 우리 집 언덕, 겨울엔 그 위에 쌓여있던 짚더미가 있어서 더 높이 올라가서 기다렸어.”
저마다 장소는 달랐지만, 어린아이가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서 각자의 엄마를 기다렸었나 보다. 그 시절 ‘그곳’이 우리 맘에 남아 있다가 이런 공감을 나눌 수 있게 됐구나.
“멀리서 엄마의 실루엣이 보이면 무조건 달렸지. ‘엄마!’를 목이 터져라 외치면서.”
그 순간, 걱정스럽던 마음은 싹 사라지고 엄마의 시장가방에만 온통 호기심을 가졌다. 이것저것 많이도 담겨있었지만 역시 눈길을 끄는 건 당장 먹을 수 있는 간식거리. 가장 오랜 친구들과 이런 얘기를 나눈 건 처음이라 흥미로웠다.
나뿐만이 아니라 친구들에게도 엄마를 기다리던 곳이 있었다니...그렇다면 같은 집에 살았던 언니는 그 곳이 있었을까? 있었다면, 어디였을까? 궁금해서 전화로 물었다. 역시 언니만의 ‘그곳’은 존재했다. 내 장소와 10~20m 떨어진 시야가 확보된 평지였다. 남편은 홍제동에 살았는데 종종 아버지와 동생손을 잡고 서대문 쪽에서 퇴근하시는 엄마를 마중 했단다. 남편에게 '그곳'은 무악재 고개였다. 그 시절 어느 곳에 살았던 우리에겐 엄마를 기다렸던 각자의 ‘엄마마중’장소가 있다. 장소는 달라도 엄마를 기다리던 마음은 다르지 않았으리라.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런 곳’이 있었는지 궁금해서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가 너희들만 두고 나갔다가 시간이 돼도 오지 않으면 엄마가 오나 안 오나 살피며 기다리지 않았어?”
“그런 건 기억 안 나는데...”
“그런 기억은 없는데요...”
큰아이와 둘째 아이한테 온 메시지다. 나에게 있는 ‘그곳’이 우리 아이들에겐 없는 것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조금 섭섭했다. 태어나면서 아파트문화를 겪으면서 살았기에 짧은 순간 엄마가 그리웠을지라도 엄마를 기다릴 만한 장소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갖지 못한 그 아이들만의 정서는 또 다르게 자리 잡았을 테지만.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엄마가 그리워도 이제 더 이상 엄마를 기다릴 수 없다. 난 그때의 엄마보다 나이가 많고 내 엄마는 안 계신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계절마다 다르게 찾아온다. 봄이 올 듯 말 듯한 요맘 땐, 엄마의 구멍 숭숭 뚫린 파란 시장 가방 아래 켠에 단골로 들어있던 먹거리가 생각난다. 꿀이 선명하게 들어 있기도 하고 뿌석거리기도 했던 작은 사과. 사과 향이 짙었다. 이 계절 사과향은 엄마를 마중했던 '그곳'을 떠오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