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사벨라 Jul 09. 2024

[냄새들]

비를 품은 흙냄새

 머리가 흠뻑 젖은 아들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아휴, 다 젖었네.”

 “왜?. 지금 비와?‘

 ”비가 억수같이 와요.“

베란다 문을 닫고 에어컨을 틀고 있던 나는 신발까지 젖어버린 아들을 보며 깜짝 놀랐다. 집 근처 정류장에서부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해서 그냥 걸어왔는데 빗줄기가 금세 굵어져 어쩔 수 없었단다. ‘근데, 이 냄새!’ 근래 자주 맡아보지 못했지만 아주 익숙한 향이다. 아들과 함께 현관문으로 들어온 반가운 그것은 바로 ’비를 품은 흙냄새!‘ 엄마에게 우산 갖고 와달라는 말없이 온몸으로 비를 맞고 온 아들을 보니, 초등학교 시절 아주 가끔 비를 쫄딱 맞은 채 집에 돌아갔던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5교시쯤 갑자기 흙냄새가 훅 끼친다. 뜨겁던 대지가 비를 만나 만들어 낸 특별한 냄새다. 뜨거워진 공기가 상승해 만들어진 빗방울은 빠른 속도로 흙 속에 곤두박질치고, 이내 땅은 감각적인 냄새를 풍긴다. 빗방울이 몹시 굵다. 그것은 햇빛으로 달궈졌던 그네와 시소 위에서 반으로 꺾여 튕겨진다. 분홍 꽃봉오리를 촘촘히 품고 있던 봉숭아에 거칠게 노크하고 그 잎사귀를 뚫어 버릴 듯 시끄럽게 때리기도 한다. 운동장 흙이 패고 미처 스며들기 버겁게 계속 쏟아진다. 더 이상 들어갈 곳을 찾지 못한 물방울은 금세 고랑을 만들어 냇물처럼 흐른다. 비를 촉촉이 맞은 풀 냄새와 함께 흙냄새는 꼬마들을 묘하게 흥분시킨다.

 초등학생 어린 발걸음으로 30분 이상의 통학 거리를 매일 걸어 다녔다. 만만찮은 거리다 보니 학교에서 갑자기 맞이한 비는 가을이나 겨울이 아니면 그냥 맨몸으로 맞으며 하교해야 했다. 가까운 곳에 사는 친구들은 엄마가 마중을 나왔다. 반면 학교와 먼 마을 아이들은 1학년 봄비를 한 번 맞게 되면서 엄마의 우산 마중에 대한 기대를 버린다. 그렇다고 서운하거나 슬프진 않았다. 약간의 부러움은 있었지만, 우리에겐 재미난 일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산 없이 비를 맞을 때, 첫발을 내딛기 전 잠깐 갈등을 겪는다. 하지만 ‘악’ 소리 한 번 지르고 몇 발짝 뛰다 보면 언제 망설였냐는 듯 그저 신이 난다. 처음이 어렵지, 한 번의 경험은 우릴 용감하게 만든다. 옷이 축축해져 불쾌하다는 생각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더 큰 비와 더 큰 웅덩이를 원한다. 우산을 챙겨온 친구마저 맨몸으로 놀이에 동참한다.

 온 세상이 드넓은 물놀이장이 된다. 큰 웅덩이를 만나면 양발로 폴짝 뛰어 누가 물을 더 멀리 튀길 수 있는지 내기도 한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지렁이가 징그럽지만, 이 시간만큼은 공존할 수 있다. 가끔 들리는 번개와 천둥소리에”꺅“ 비명도 지른다. 맨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꺼이 빗줄기에 뺨을 댄다. 그런 김에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회색빛 하늘을 한참 관찰해서 비 내리는 작은 구멍들을 찾아낸다. 젖은 대지처럼 온몸에 비가 촉촉이 스며들면 두려움이 사라져 온전한 자유를 느낀다. 젖은 옷, 아프게 때리는 빗줄기, 물이 들어찬 신발, 천둥과 번개도 나를 더 이상 괴롭히는 존재가 아니다. 자연에 완전히 동화됐음을 꺠닫게 된다.   

  

 초겨울 갑작스런 소나기에 수업에 집중하지 못한 우리는 흘깃흘깃 밖을 바라봤다. 우산을 든 엄마들이 교문을 통해 운동장으로 걸어 들어오는 게 보였다. 내 엄마는 없을 테니 애써 외면했다. 하교시간 드디어 비를 맞을 만반의 준비가 끝났다. 그때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른다. ‘앗, 아버지다.’ 우리 아버지가 자전거와 함께 계셨다. “아버지“ 뛸 듯이 기뻐하며 아버지께 달려갔다. 아버지도 환하게 웃고 계셨다. 우산을 챙겨주러 온 엄마들을 보며 ‘난 괜찮아’를 외쳤지만 부럽긴 부러웠나 보다. 아버지가 무척 자랑스러웠다. 그날 아버지 등에서 맡은 냄새는 가을 냄새였다. 비와 섞인 땀 냄새도 났지만, 볏짚 냄새, 콩 냄새 가을에 수확해야 하는 것들의 냄새를 골고루 맡은 것 같다. 그게 좋아서 돌아오는 내내 아버지 등에 코를 묻고 왔다.


 가을비는 흙 내음과 함께 마른 식물 향을 끌어온다. 단풍이 들었다 떨어질 때 그것을 밟으면 바스락 소리를 낸다. 비를 만나면 소리는 없고 촉감만 남아 대지가 폭신폭신해진다. 밟으면 밟을수록 나무 향은 강해진다. 추수가 끝난 대지에 내리는 비는 치열했던 식물의 한해살이 종료를 알리며 은은한 식물 향을 풍기며 휴식을 하게 한다. 바짝 마른 것들의 세상에 내리는 비는 그것들을 빠르게 흙으로 되돌아가게 만든다.     

 아들이 몰고 온 비를 품은 흙냄새는 어린 시절 큰 웅덩이에서 첨벙첨벙 뛰던 친구들과 나를 추억하게 했다. 아버지의 건강하고 젊은 모습과 등에서 나던 짙은 가을 향도 떠오르게 했다. 어릴 때부터 비 냄새가 계절마다 살짝 다르다는 걸 몸으로 깨달았다. 그러면서 조금 일찍 철이 들었다. 우산 마중을 나오지 못한 부모님을 이해했다. 어쩌다 마중 나온 엄마와 아버지의 모습이 사진 찍힌 듯 선명하다. 그 사진엔 ‘감사함’이 있다. 일찌감치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경이로운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걸 배웠다. 그때의 비는 식물만 키운 게 아닌가 보다. 맨몸으로 비를 맞지 않았다면 갖지 못했을 여러 가지 생각을 자라게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