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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사벨라 Sep 19. 2024

최초로 경험한 죽음과 가장 최근에 경험한 죽음의 차이

'두려움'과 '깊은 슬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인지 후인지 정확한 기억은 없다. 아무튼 어린 나이에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처음 경험했다. 그 당시 난 세상 무서운 것 중의 하나가 꽃상여였다. 고향에선 사람이 죽으면 행하는 의식이 있었다. 꽃상여에 망자를 태우고 그가 머물렀던 집에서부터 자주 가던 동네 곳곳을 돌다가 장지로 향하는 것이다. 그걸 볼 때마다 ‘죽음=귀신’을 떠올리던 어린애의 눈과 마음으로는 죽음이 슬픔 보다는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허, 딸랑(종소리) 어허, 딸랑”

 이 소리에 맞춰 가족들은 애 어른 할 것 없이

 “아이고, 아이고”


 울며 그 뒤를 따른다. 사찰의 단청처럼 알록달록 화려한 꽃상여를 한 번 쳐다보는 것만으로 쭈뼛쭈뼛 머리칼이 곤두서는 듯한 무서움을 느꼈다. 그런 내가 울며 꽃상여 뒤를 따라가야 하는 유가족이 된 것. 그때까지만 해도 용기를 한번 내야만 꽃상여를 힐끔 볼 수 있었고, 그 한 번만으로도 극도의 공포를 느끼던 겁쟁이가 꽃상여와 엄중한 의식 내내 함께해야 한다. 할아버지의 죽음. 할아버지는 큰아버지 댁에서 사셨다. 우리 집과는 100m도 안 떨어진 가까운 곳이었다. 할아버지에겐 손주들이 아주 많았다. 할아버지에 대한 가장 좋은 기억은 셋째 작은집 사촌 Y와 큰집에 놀러 가면 다락방에서 알사탕 한 개씩을 꺼내 어서 먹어보라고 웃으시던 모습이다. 안 좋은 기억도 한 가지 있는데, 큰집 사촌들 하고 우리 형제하고 패싸움(?)할 때 할아버지가 일방적으로 큰 집 언니들 편만 드셨던 것. 할아버지의 편들어 주기는 어린 마음에 충격이었다.


그랬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더 이상 할아버지를 볼 수 없다니 정말 슬프다. 근데 이상하다. 눈물이 안 나온다. 내 영혼의 단짝 사촌 Y는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소리 내 울고 있다. 큰일이다. 팔을 꼬집고 손등을 꼬집어 봤지만 어림없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발등을 아프게 밟아봐도 눈물 한 방울 나오질 않는다. 할아버지 돌아가신 것이 분명 슬픈 일인데 눈물이 나지 않는 상황은 웬일인지 알 수가 없다. 아 낭패다. 그 후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 생각해도 눈물을 흘리지 못해서 쩔쩔맸던 그 상황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어린 시절 나는‘할아버지의 죽음이 전혀 슬프지 않았나?’ 어떨 땐 내가 나를 의심하기도 했었다.

35년이 지나고 아버지와 엄마를 1년 사이 모두 잃어버렸다. 소리 내 울고, 숨죽여 울고, 넋 나간 채로 눈물만 줄줄 흘리기도 했다. 당최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슬픔이 파도처럼 굽이굽이 멈출 줄 모르고 찾아왔다. 장례를 치르면서 우는 건 당연한데, 한 참 시간이 지나서 찾아오는 상실감에 통곡도 여러 번 했다. 부모님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숨이 안 쉬어질 때도 있었다. 신체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는 표현이 어느 정도 맞았다. 일상을 보내다가 갑자기 설움이 복받쳐 몸을 쓰러뜨려 구르며 울 때도 있었다.  다 큰 어른이 엉엉 소리 내 우는 걸 여러 번 목격한 남편과 자식들은 그때마다 조용히 등을 토닥토닥 해줬다. 그러던 중 그날도 라디오를 들으며 설거지하고 있었다. DJ가 어떤 사연 끝에 ‘이젠 볼 수가 없네요’라는 멘트를 했을 때,   갑자기 슬픔이 복받쳤다. 모든 사연이 내 사연이고 사랑 노래 가사도 내 부모님과 내 사랑을 말하는 걸로 들렸다. 주저앉아 엉엉 울고 있는데, 고등학생 아들이 방에서 나왔다. 근데 위로의 방식이 평소와 다르다. 나를 폭 안아서


“순아, 괜찮아. 괜찮아.”


하며 외할아버지 흉내를 낸다. 난 더 엉엉 울어버렸다. 그런데 뭔가 따뜻하다. 아버지가 안아준 듯 포근하다. 그 방식이 큰 위로가 됐다. 아버지가 정말 내게 위로를 건네는 것처럼 마음이 곧 가라앉았다. 이후로도 갑자기 엉엉 울고 싶을 땐 아들이나 딸을 불러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처럼 엄마 이름을 불러 달라고 했다. 그러면 정말 아버지와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갑작스럽게 통곡하는 순간이 줄었다. 더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없어졌다.


어릴 때의 ‘죽음에 대한 감정’은 할아버지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슬픔도 존재했지만 ‘두려움’이 더 컸다. 그 감정이 너무 강해서 슬픔을 삼켜버린 듯했다. 할아버지는 철없는 어린애의 시점으로 그렇게 보내 드렸다. 최근에 경험한 부모님의 죽음은 ‘깊은 슬픔’이었다. 손잡고 싶을 때 손잡고, 전화하고 싶을 때 전화하고, 성공했을 때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딸임을 알리고, 외로울 때 위안을 받을 수 있는 무조건적인 내 편이 사라졌다. 존재만으로 큰 힘이 되는 가장 강력한 지지자를 잃은 것이다. 더 이상 그들과 일상을 함께 할 수 없다. 여기엔 할아버지 죽음에서 느꼈던 두려움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슬픔만이 존재했다. 견딜 수 없는 슬픔은 나 스스로 멈추고 싶다고 해서 멈춰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때 알았다. 앓을 만큼 앓고 나서 자연스럽게 없어지는 것임을 알게 됐다. 충분한 애도 기간을 가지고 슬퍼할 만큼 슬퍼했을 때 비로소 진짜 이별을 할 수 있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으로 깊은 슬픔에 빠진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 본다.


“천천히 그리고 충분히 슬퍼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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