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말이 없다.
결혼한 지 28년이 됐지만, 진심을 터놓은 대화는 손에 꼽는다.
가끔 생각한다. 나는 이런 남자가 뭐가 좋아서 결혼을 했을까.
세월이 흘러도 대화는 늘 같았다.
몇 마디면 끝.
남편은 가족의 말엔 귀를 닫고, 타인의 말엔 귀를 연다.
그런 남편이 유일하게 입을 여는 순간이 있다.
술을 마실 때다.
술이 들어가면 직장 이야기, 운동 이야기, 세상 이야기가 줄줄 흘러나온다.
하지만 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술 냄새도, 취기 속의 말들도 마음이 가지 않는다.
우린 참 극과 극이다.
얼마 전 동생들과 함께한 저녁 자리에서, 남편이 불쑥 말했다.
“월급쟁이가 편해.”
그 말이 너무 웃겨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28년을 살면서 들은 말 중 가장 솔직하고 가장 코믹한 한마디였다.
남편은 대학 졸업 후 대기업 건설회사에 들어가 일했다.
결혼 후 십 년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건축사 시험을 준비했다.
두 해를 매달렸지만 실패했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공사 현장은 가정을 꾸린 사람에게 녹록지 않았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기 어려운 일.
그래서였을까, 그는 늘 피곤했고 무표정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정엄마와 시아버님이 잇따라 세상을 떠났다.
내 마음이 흔들리던 그 시기, 남편은 말 한마디 없이 회사를 그만두었다.
이미 일을 저질러 놓은 뒤였다.
그리고는 전주로 내려와 아이스크림 가게를 인수했다.
본사 확인도 없이 매장 주인과 계약을 맺은 탓에, 곧 문제가 생겼다.
그 일은 실패로 끝났고, 바로 옆 치킨집을 인수했다.
하지만 남편은 장사할 성격이 아니었다.
가게는 직원이 알아서 하고, 그는 탁구장에 가 있었다.
결국 가게는 망했다.
가난이 스며들고, 그의 자존심은 더욱 거칠어졌다.
이후에도 몇 번의 도전이 이어졌다.
독서실, 공인중개사 사무소…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일은 안 되고, 마음의 벽만 더 두꺼워졌다.
그때부터 우리는 거의 말을 잃었다.
자식들에게도, 서로에게도.
그런 남편이 몇 해 전부터 다시 건축 현장 감리로 일을 시작했다.
오랜만에 월급이 생기자 얼굴이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어느 날, 저녁 자리에서 그 한마디가 나온 것이다.
“월급쟁이가 편해.”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웃다가 문득 울컥했다.
남들 정년할 때쯤,
남편은 비로소 ‘월급의 안정’을 깨달았다.
인생은 그렇게 뒤늦게, 아주 천천히 배워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남편은 말이 없다.
하지만 월급날이면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며 살짝 웃는다.
그 얼굴을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풀린다.
남편이 사준 블루베리 주스 한 잔이,
오늘따라 참 달다.
그래,
월급쟁이가 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