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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소시민으로 돌아갑니다.

무명씨의 어공일기 Prologue

by 낭만박사 채희태

2020년 1월 1일 자로 지난 2011년 7월 15일부터 대략 8년여 년 간 해 왔던 어쩌다 공무원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소시민으로 돌아갑니다. 아주 특별한 명분이 있지 않는 한 생계형 어공으로는 돌아오지 않을 생각입니다.

가끔 생각을 합니다. 만약 제가 여전히 출판사에 있었다면 제 인생은 어떻게 굴러갔을까? 아마 출판사에 계속 있지는 못했을 것 같고, 여기저기를 옮겨 다니며 살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무려 8년이라니... 자의든, 타의든 지금까지 한 직장에서 5년 이상 있어본 적이 없었던 저에겐 대단한 경험이었습니다. 비록 중간에 2년 2개월 14일 동안 설시굑청에 다녀 오기는 했지만...


드라마, 미생에서 회사를 그만두려는 오과장에게 먼저 회사를 그만둔 선배는 이렇게 말합니다.


회사가 전쟁터라고? 밖은 지옥이야!


솔직히 매출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저에게 어공 생활은 ‘천국’이었습니다. 그 부담에서 벗어나니 오히려 창의력과 자발성이 용솟음쳤던 것 같습니다. 저의 어공 생활이 상대적으로 그랬다는 것이지, 공무원 생활이 편하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늘공들은 나름의 애환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후에 찬찬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그 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 가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정했습니다. 첫째, 선출직...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구요. 둘째, 인사청문회 통과해야 하는 임명직... 비리보다는 자질 문제가 더 부각되겠지만, 제가 살면서 인지하지 못했던 죄가 튀어나올까 봐 두렵습니다. 셋째, 사업... 할 그릇이 못 됩니다.


아무튼 제가 어공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일천한 경험들을 정리 차원에서 풀어 보고자 합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아니 이제는 말하고 싶다? ^^

대략 생각하는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공무원은 악마가 아니었다.

고백하건대, 저는 처음 어공생활을 시작하면서 공무원은 ‘절대악’, 시민단체는 ‘절대선’으로 생각을 했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 누구도 절대적으로 선하거나 악하지 않더군요. 대부분의 시민들은 사실 공무원들을 직접 경험할 일이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저처럼 부정한 존재로 먼저 낙인을 찍어놓고 인식의 전개를 시작합니다. 공무원이 공무원이기 때문에 겪을 수밖에 없었던 억울함에 대하여, 또 공무원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공무원의 문제에 대하여 짚을 문제는 짚어 보고자 합니다.


2. 보수의 위치에 있는 진보...

우리는 신념이 곧 실력이던 시대를 살아왔습니다. 하루는 한 시민단체 분에게 직접민주주의 시대에 대응하는 시민단체의 변화에 대해 얘기를 하려고 하는데, 관에 있는 사람이 시민단체에 대해 이러구저러구 얘기하는 건 부적절하니 하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그분은 공무원은 시민의 대상일 뿐이라는 대단한 신념을 가지고 계신 듯했습니다. 어떤 분이 제게 덴마크와 핀란드를 다녀오기 전엔 교육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해서 자격시험을 보는 심정으로 교육연수를 다녀왔는데... 이제는 관이 아니니 시민단체에 대해 말을 해도 되지 않을까요? 이 얘기가 하고 싶어 수천만 원 들여가며 대학원에서 공부도 했습니다.


현실은 열정이 난무한 주관이고,
학문은 영혼을 상실한 객관이다!


3. 내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아니라, 세상이 나를 변화시킨다.

2010년, 제가 친구 선거운동을 하기 위해 멀쩡한 직장을 때려 친다고 하니까 누가 저에게 그러더군요.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가 왜 가냐고... 그리고 2015년 은평구청에서 서울시교육청으로 가는데 친한 공무원들이 교육관료가 얼마나 답답한데 그 힘든 곳에 가려고 하느냐고 만류를 했습니다. 두루두루 경험하다 보니 문제는 정치도, 관료도, 교육도 아니었습니다. 정작 문제는 그것들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저의 ‘편협함’이었습니다. 이해의 주체와 이해의 대상을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해할 수 없다는 말로 사회문제의 책임을 이해의 주체인 자신이 아닌 대상에게 전가합니다. 이해할 수 없다면 이해의 대상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 합니다. 저는 지난 8년 여의 어공 생활 동안 정치를, 관료를, 그리고 교육을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제가 그들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변화하고 성장해 왔던 것 같습니다. 자식도 마음대로 못하는 시대에 감히 누가 누구를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전 세상을 바꾸기 이전에 내가 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생각들을 담아 앞으로 시간 나는대로 제가 직접 경험한 내용을 담은 어공일기를 써 보고자 합니다.


자, 들을 준비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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