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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Jan 30. 2021

역대 최강 미간, 주지약(축서단)

의천도룡기 2019 후기

지금까지 여러 버전의 “의천도룡기”를 보아 왔는데, 버전마다 여주에 대한 해석이 조금씩 달랐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김용의 영웅문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인 “사조 영웅전”에선 남주 곽정과 여주 황용이, 두 번째 작품인 “신조협려”에선 남주 양과와 여주 소용녀가 짝을 이루어 등장했다면, 세 번째 작품 “의천도룡기”에선 남주 장무기의 상대로 다양한 매력의 여주가 무려 다섯 명이나 등장한다. 이 다섯 명의 여주들은 작품의 결말을 손바닥 뒤집듯 다시 쓰는 작가 김용에 의해, 그리고 의천도룡기를 영상으로 재해석한 감독들의 취향에 따라 늘 다르게 해석되어 왔다.

참고로 말하면 우리 삼 형제도 영웅문에 등장하는 세 남자 주인공에 대해 엇갈린 취향을 갖고 있다. 내가 우직하고 미련한 스타일의 곽정을 좋아한다면, 작은형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양과에 감정이입을, 돌아가신 큰형은 누가 봐도 장무기 스타일이었다. 취향의 문제는 정답이 없다. 내가 짬뽕보다 짜장면이 좋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다만 좋고, 싫은 취향이 옳고, 그른 가치의 문제로 전이되는 것을 경계하면 된다. 


장무기가 첫 번째 만난 여주는 표지 사진에 등장하는 주지약이다. 주지약은 현명신장을 맞아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어린 장무기를 정성껏 돌봐 준다. 이후 장삼봉을 따라 무당산으로 가지만 무당파는 여제자를 두지 않기 때문에 여자들로만 구성된 아미파의 제자가 된다(가끔 중국 무협에 남성 아미파가 등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중국 무협 세계관의 기초를 다진 김용의 세계관에는 어긋난다). 주지약에 대해서는 뒤에서 더더더 많이 다루겠다.

어린 주지약


두 번째는 아미파의 차기 장문으로 촉망받던 기효부와 명교의 양소 사이에서 태어난 불회이다. 기효부는 무당파의 제자 은리정과 약혼한 사이지만 명교의 양소와 사랑에 빠져 딸 불회를 낳는다. 명교는 명문 정파 사이에서 사파, 마교로 불리기 때문에 양소가 순진한 기효부를 강제로 꼬셨다고 알려져 있지만, 기효부는 딸의 이름을 불회(후회하지 않는다)로 지어 주변의 억측을 일축한다. 비록 주인공은 아니지만 양소는 사실 의천도룡기에서 가장 스윗하고 젠틀한 남자로 그려진다. 불회는 처음에 장무기에게 연정을 느끼지만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 되고, 엄마를 잊지 못하는 은리정과 사랑에 빠져 결국 은리정과 결혼한다.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한 편견은 과거보다 지금이 더한지도 모르겠다. 단지 남녀 사이의 관계 문제가 아니라, 남성과 여성 사이를 둘러싼 주변 환경이 너무 복잡해졌기 때문이리라... 지금은 사랑을 하기 위해 재고 따져야 할 것들이 과거에 비해 지나치게 많아졌다.

의천도룡기 2019에서 불회 역을 맡은 배우, 손안가


장무기가 만난 세 번째 여인은 금화파파의 제자 은리... 은리는 어린 장무기를 좋아해 강제로 영사도로 데려가 치료하려 하지만, 장무기는 은리의 손을 깨물며 저항한다. 은리는 나이가 들어서도 장무기에게 물린 상처를 보며 장무기를 그리워한다. 훗날 은리를 만난 장무기는 자신을 증아우라고 속이고, 은리는 꿈에 그리던 장무기를 눈 앞에 두고도 알아보지는 못한다. 영사도에서 조민을 해하려는 주지약을 말리다 죽임을 당하지만, 다시 살아나 기억을 잃은 채(체?) 살아간다.

의천도룡기 2019에서 괴팍한 여성상을 담당한 은리, 조희월


네 번째는 광명정에서 만난 소소, 의천도룡기의 광명정 전투는 삼국지의 적벽대전끕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이연걸이 장무기 역으로 나왔던 극장판 의천도룡기(1993년)에서는 장무기의 다섯 여인 중 소소를 가장 부각했다. 그 당시 가장 잘 나가던 여배우 구숙정이 소소 역을 맡았는데, 상대적으로 주지약은 찌질하게, 조민은 다만 악녀로 그린다. 김용의 원작 의천도룡기를 읽으며 장무기와 소소의 이별을 가장 아쉬웠을 정도로 소소는 서역에서 온 신비한 여인으로 묘사된다.

극장판 의천도룡기(1993)의 소소 구숙정과 2019 의천도룡기의 소소 허아정


마지막 다섯 번째는 시종일관 의천도룡기에서 요녀로 그려지는 조민이다. 조민은 마치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 등장하는 길라임처럼 익숙함이라는 틀 밖에 존재하는 여인이다. 우유부단하고 착하기만 한 주인공 장무기와 그 성격을 비웃기라도 하듯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조민, 장무기는 머리로 조민을 밀어내면서도, 결국 마음으로는 조민을 어쩌지 못한다. 사실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익숙함이 아니라 낯설음일지 모른다. 익숙함은 익숙함에 묻혀 잘 드러나지 않지만, 낯섦은 익숙함을 뚫고 우리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래서 등장한 마케팅 기법이 바로 세스 고딘이 『보랏빛 소가 온다』에서 주창한 리마커블(remarkable, 차별화)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여자들이 “나처럼” 자상한 남자가 아닌 나쁜 남자에게 더 끌리는 지도... ㅎㅎ

의천도룡기 2019에서 조민 역을 맡은 배우, 진옥기


다시 주지약으로 돌아오자. 의천도룡기 2019에서는 남주 장무기를 둘러싼 여주 주지약과 조민의 대결을 원작보다 더 부각한 것 같다. 여러 후기들을 읽어보니 주지약과 조민의 대결은 마치 1980년대 소피 마르소와 피비 케이츠의 팬덤 대결을 연상캐할 정도로 조민을 지지하는 팬들도 꽤 눈에 띄었다. 과거 난 소피 마르소 파에 맞선 피비 케이츠 파였다.  

청순의 대명사 소피 마르소에 동양적 매력으로 맞선 피비 케이츠


초기에 주지약은 청순 가련형 여주로 등장한다.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주지약의 찌푸린 미간이다. 눈썹과 눈썹 사이가 어찌 저리 아름다울 수 있단 말인가!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정 또한 취향이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나의 감정에 특정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거부한다.

저 미간, 어쩔~


의천도룡기의 결말을 알고 있는 나는 차라리 주지약 역을 맡은 축서단이 장무기와 맺어지는 조민 역을 맡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그런데, 그러기에 주지약은 너무 청순하고, 지나치게 가련해 보였다. 하지만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흑화한 주지약의 모습을 보며 축서단이 조민 역을 맡아도 어울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축서단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을 살펴보니 사실 축서단은 의천도룡기 이전 주로 악역을 맡아왔고 오히려 청순가련한 주지약 역이 낯설었다고...

 

<삼생삼세 십리도화>에서 악역을 연기한 축서단, 아름다운 미간은 찾아볼 수 었다.

과거 소설 영웅문을 읽으며 두 달 가까이 폐인으로 살았었는데, 내가 다시 의천도룡기에 빠질 줄은... 주지약의 미간에 빠져 요 며칠 순식간에 의천도룡기 40여 편을 몰아 봤다. 50화가 끝나고 나면 당분간 마음이 허할 것 같다. 페이스북에 짧게 쓰려고 했던 의천도룡기 2019, 아니 주지약의 미간 후기가 이렇게 길어질 줄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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