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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Sep 13. 2019

“미엘린 형성론”과 “포동포동 다리 이론”

교육에 대한 엉뚱하고 당연한 질문들 2부

193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유아 발달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유아들의 보행 반사(유아를 들어 올리면 걷는 것처럼 다리를 움직이는 행위)를 인간의 선천적인 보행 본능이라고 보았다. 문제는 유아들의 보행 반사가 생후 2개월쯤 사라졌다가 걸음마 직전에 다시 나타난다는 것...

과학자들은 보행 반사가 인간의 보행 본능이라는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보행 반사가 사라지는 이유를 해명해야 했다. 그래서 평균주의자들에 의해 등장한 것이 바로 미엘린 형성론... 즉, 모든 아기는 선천적으로 보행 반사를 타고나지만 뇌의 운동 제어 센터가 미엘린 형성을 개시하면 반사 반응이 사라지며, 그러다 뇌의 운동 제어 센터가 더 발전하면 다시 그 반응을 의식적으로 통제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그리하여 과학자들은 특정한 시기가 지나도 아이들이 보행 반사를 하지 않는다면 뇌의 운동 제어 센터가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부모들은 난리가 났다. 그리하여 자신의 아이가 평균, 또는 또래의 아이들과 비교해 늦게 뒤집거나, 늦게 걸음마를 하면 비정상이 아닌지 의심하게 되었다.

이 별나고 비실제적인 미엘린 형성론은 수십 년 동안 미국 소아학계를 지배했고 에스터 텔렌이라는 젊은 과학자가 없었다면 21세기에도 그 지배력을 이어갔을지 모른다. 텔렌은 2년에 걸쳐 40명의 아이들을 유심히 살폈다. 텔렌은 이전의 과학자들과는 다르게 아이들을 살핀 후 그 평균을 낸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개인별 신체 발달을 분석했다. 그 결과 체중 증가가 유독 빠른 아이들이 보행 반사가 사라지는 경향을 발견했다. 즉, 다리를 움직일 수 있는 근육이 채 발달하기 전에 허벅다리에 살이 포동포동하게 올랐기 때문에 보행 반사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이전까지 단지 평균 연령과 평균 체중을 비교했던 과학자들이 이렇다 할 결과를 밝혀내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의 "종합 후 분석" 접근법은 아이들 각각의 발달 패턴을 알아보지 못하게 가렸지만 텔렌의 "분석 후 종합" 접근법은 그런 패턴을 잘 드러냈던 것이다. (토드 로즈의 "평균의 종말" 중에서 발췌 편집)


토드 로즈는 "평균의 종말"에서 우리가 그동안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평균이 가지고 있는 함정을 다양한 사례를 바탕으로 조리 있게 지적한다. 평균의 최초 쓸모는 '측정'이었다. 통계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벨기에의 천문학자 '아돌프 케틀레'는 별과의 거리를 정확히 측정하기 위해 평균을 도입한다. 천문학자마다 별과의 거리를 측정한 값이 달랐기 때문이다.

측정을 위해 시작된 평균이 의학과 만나서는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이 되었다. 1919년 미국의 의사인 '로버트 L. 디킨스'는 미국 여성의 치수를 측정한 후 그 평균값으로 '노르미'라는 완벽한 정상 여성을 만든다. 이때부터 인간은 모두 비정상으로 전락했다. 평균값이 일치하는 인간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평균이 산업과 만나 탄생한 것이 바로 테일러리즘이다. 모든 인간은 이제 비정상일 뿐만 아니라 효율적 생산을 위해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존엄성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평균이 교육과 만났다. 교육과 만난 평균은 우월과 열등을 나누는 기준이 되었다. 영국의 '프란시스 골턴'은 평균값 위에 있는 사람은 우월한 사람이고, 평균값 아래 있는 사람은 열등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프란시스 골턴의 주장은 미국의 심리학자 '에드워드 손다이크'에 의해 우리가 현재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근대교육의 핵심논리가 되었다.

"평균의 종말", 토드 로즈

평균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간파한 사람은 영국의 시인이 '윌리엄 사이플스'다.

윌리엄 사이플스는 1864년 에 쓴 에세이에서 평균을 활용하는 신세대 과학자들과 관료들의 표면상의 승리를 인정해 주다가 뒤이어 경시가 깔린 동시에 특징을 제대로 짚어주는 평균주의자(averagarian)라는 별명을 붙였다. ("평균의 종말" 중에서)

토드 로즈는 평균이 가지고 있는 모순을 극복해 멋지게 문제를 해결한 사례로 1926년 미국의 '길버트 S. 대니얼스'를 이야기한다. 길버트 S. 대니얼스는 음속을 돌파하는 전투기가 조종 미숙으로 사고가 잇달으자 평균에 맞춰진 비행기 시트를 모두 파일롯 개개인에게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현재 우리가 자동차를 운전할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는 조정이 가능한 시트와 끈이 개발되었다. 이는 평균에 개인을 맞추는 건 폭력일 뿐, 혁신이 아니라는 것을 최초로 보여준 사례라 하겠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빠르게 변하면서 그 어떤 평균도 평균의 의미를 잃게 되자,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적 평균에 갇히게 되었다. 평균은 이제 객관성마저도 잃어버린 것이다. 진보와 보수, 민과 관, 마을과 학교, 남성과 여성, 세대와 세대들은 모두 자신의 주관적 평균에 갇혀 있다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대부분의 사회 문제들은 평균이 가지고 있는 함정에서 벗어나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들쭉날쭉한 능력을 효율적으로 융합할 때 비로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back2an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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