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하우스를 진단해 보다!
클럽하우스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혹자들은 드디어 페이스북의 독주를 막을 수 있는 새로운 SNS 플랫폼이 등장했다고 호들갑을 떨기도 한다. 필자도 요 며칠 클럽하우스에 들락거리느라 그나마 돈도 되지 않는 일에 지장을 받고 있다. 백수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중독이다. 덕분에 유튜브 중독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 불행 중 다행이랄까? 느닷없이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20세기 소년>에 등장하는 대사가 떠오른다.
아이들의 놀이는 끝나지 않는다. 다만 다른 놀이로 옮겨갈 뿐이다.
클럽하우스는 분명 새로운 SNS 팬덤을 만들어 가고 있다. 앞으로 클럽하우스가 어떻게 진화할지는 필자의 관심뿐만 아니라 능력 밖의 일이다.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견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필자는 한 줌도 안 되는 사회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현실을 진단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영웅이 사라진 시대, 미래는 우월한 누군가의 의지가 아니라, 더 우월한 대중들의 적당한 합의를 통해 만들어질 것이다. 누군가는 흑을 주장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겠지만, 흑과 백의 절박한 바람과는 무관하게 어쨌든 미래는 흑과 백이 대충 뒤섞인 회색이 될 것이다. 그러니 목놓아 주장하지 마시라. 그 주장이 더 큰 역설에 부딪힐지 모르니...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은 누구나 관계에 대한 욕구가 있다. 그 욕구가 과잉되어 나타나는 것이 바로 커뮤니케이션의 동기화다. 커뮤니케이션의 동기화를 가장 크게 방해하는 물리적인 제약은 다름 아닌 시간과 장소다. 어쩌면 IT의 진화는 커뮤니케이션을 보다 효율적으로 동기화시키기고 싶은 욕망의 결과일 수도 있다. 1866년 전보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대서양을 건너 소식을 전하는데 2주라는 시간이 걸렸다. 전보는 그 시간을 무려 2,500배 넘게 단축시켰다. 사실 전보 다음에 발명된 팩스보다 고작 100배 정도 빨라진 인터넷은 감히 전보 앞에서 명함을 내밀면 안 된다(장하준,『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참조).
지금은 마음만 먹는다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실시간으로 편지나 목소리, 심지어 얼굴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정보기술이 발전했다. 하지만 모든 의도는 역설된다. 커뮤니케이션을 동기화하려는 의도는 역설적으로 비동기 커뮤니케이션의 창궐로 이어졌다. 혹시 문득문득 생각나는 옛 친구나 연인이 있는가? 바람이 서늘해지고, 어쩌다 데굴데굴 구르던 낙엽이 내 신발 위에 살포시 앉기라도 하면 미친 듯이 그리워지는 그런 친구나 연인 말이다. 만약 있다고 하더라도 그냥 그 그리움을 즐기시기 바란다. 혹시라도 서로 연락이 닿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리움이라는 애틋함만 잃을 뿐, 얻는 것은 별로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필자는 전화와 문자, 그리고 카톡을 구별해서 쓰는 편이다. 편한 상대이거나 숨 돌아갈 정도로 급할 땐 어쩔 수 없이 전화를 하지만, 아무리 급하더라도 상대가 편하지 않거나, 또는 덜 급한 상황이라면 전화보다는 문자를 선택한다. 커뮤니케이션의 동기화가 급하지 않다면 그다음으로는 카톡을 사용한다. 반면, 페이스북, 블로그, 기타 온라인 커뮤니티에 수고스럽게 글을 올리는 이유는 동기화된 커뮤니케이션을 바란다기보다는 스스로 만족감을 얻기 위해서이다(ZDNET 코리아에 필자가 쓴 칼럼, "동기와 비동기 커뮤니케이션" 재인용).
클럽하우스 팬덤은 이 시대에 보편화된 비동기 커뮤니케이션의 역설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그나마 부족했던 동기 커뮤니케이션이 아예 실종되지 않았는가? 불현듯 치고 올라오는 지금의 감정을 동기화하기 위해 가장 가까운 가족을 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나 느끼겠지만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은 각각 게임이나, 유튜브, 또는 각자의 취향에 맞는 비동기 커뮤니케이션에 빠져 있어 동기화가 가장 어려운 대상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커뮤니케이션의 동기화에 대한 갈증이 조금씩 쌓여, 마침 차오르기 바로 직전에 "음성 기반 동기화 SNS 플랫폼"인 클럽하우스가 등장한 것이다.
클럽화의 가장 큰 특징은 동기화가 가능한 SNS라는 것이다. 그다음은 유튜브나 팟캐스트와는 다르게 후가공이 전혀 필요 없는 음성에 기반한다는 것도 매우 중요한 특징이다. 청각이나 언어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두 가지 특징은 자연스럽게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으로 이어진다. 복잡한 사회 속에서 다양한 비대칭 관계에 놓여있는 우리는 소위 다양한 분야의 셀럽들과 언감생심 오프라인 관계를 맺는 것의 고사하고, SNS 상에서도 지금까지는 그저 일방적인 팔로우에 만족했던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클럽하우스에서는 유명인과 일반인이 거의 동등한 지위로 만날 수 있다. 필자는 오늘 오전에도 경향신문에서 "미래의 석학에게 미래를 묻다"를 기획 연재했던 안희경 작가님과 감히 클럽하우스를 통해 말을 섞었다. 이는 클럽하우스가 내세우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클럽하우스는 다양한 SNS 상에서 어디에 위치하고 있을까? X축을 비동기와 동기로, Y축은 수직성(전문성)과 수평성(일반성)으로 나누어 클럽하우스의 위치를 표시해 보았다.
SNS라고 모두 같은 SNS가 아니다. 유튜브를 하려면 영상과 관련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어야 하고, 가끔 실시간 방송을 하기도 하지만, 그 관계는 결코 수평적이라고 할 수 없다. 팟캐스트도 유뷰브만큼의 전문성은 아니지만, 일반인이 접근하기에 결코 만만한 플랫폼이 아니다. 브런치에서 글을 쓰는 작가가 되려면 운영진이 정한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필자도 어설프게 브런치 작가를 신청했다가 떨어진 경험을 가지고 있다. 과거 티스토리는 일반 블로그와 다르게 초청장을 통해 소위 물관리를 했다.
블로그는 전문성과 일반성 사이에 걸쳐 있으며, 반면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밴드 등은 누구나 쉽게 가입해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언급한 SNS는 모두 비동기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가입자를 보유한 카카오톡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지만, "읽씹", "안읽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강제적으로 동기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필자가 알고 있는 한 자발적 동기화가 가능하면서도 가장 수평적인 SNS 플랫폼은 클럽하우스가 유일하다.
일반적인 SNS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클럽하우스를 사용하면서 중독성에 상응하는 불편함을 겪을 것이다. 사실 클럽하우스는 다양한 사람들과 음성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기능을 빼면 나머지는 매우 불편하다. 심지어 필자는 클럽하우스에 가입한 후 어떻게 사용할지 몰라, 눈에 보이는 지인과 음성 채팅을 하며 “전화랑 다른 게 뭐야?”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클럽하우스에 마련된 방에 있는 사람과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카톡이나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고, 그나마도 클럽하우스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는 1대 1 대화가 아예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불편함은 오히려 클럽하우스가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장점이다. 만약 1대 1 대화가 가능하다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가장 경계하는 친목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관계의 다른 표현인 친목은 99개의 장점이 있지만, 누군가를 배제할 수 있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 과거에는 99개의 이익을 얻기 위해 1개의 불편함을 감수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1개의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99개의 이익을 포기해야 하는 시대다. 자칫 클럽하우스가 가지고 있는 불편함을 보완하는 과정에서 클럽하우스만의 장점인 수평성이 깨질 수도 있다. 그래서 필자는 현재 가지고 있는 클럽하우스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