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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Oct 05. 2021

슈퍼밴드2 최종 파이널 후기

코로나 19로 일상에 브레이크가 걸렸지만, 어쨌든 세상은 미싱처럼 잘만 돌아간다. 넷플릭스에서는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고, 내년 있을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정치인들도 국민들의 관심과 무관하게 열심히 찻잔 속에서 회오리치고 있다. 그리고 6월 21일부터 시작했던 슈퍼밴드2가 어제(10월 4일) 무려 40만여 명이 온라인 투표에 참여한 가운데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하나의 문화 콘텐츠가 대중들의 마음을 뒤흔들고 나면 애초의 의도와 무관한 다양한 현상들이 남겨진다. 60년대 <비틀즈>와 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이 그랬고, 지금의 <BTS>가 그렇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문화 현상들은 불행하게도 나 같은 어중이떠중이에 의해 해석되고, 평가된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지금부터 난 슈퍼밴드2 파이널에 오른 6팀에 대해 나름의 후기를 남겨 보고자 한다. 그래야 이 허탈함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이너네셔날 밴드 <Kardi>

슈퍼밴드2 최종 파이널에 오른 밴드들은 한 팀, 한 팀 모두 글로벌 코리아 밴드로서 손색이 없는 팀들이다. 그중에서 난 개인적으로 <Kardi>를 응원했지만, 2위도 아닌 3위에서 이름이 불려지자 갑자기 몸에 힘이 쭈욱 빠졌다. 밴드의 꽃은 뭐니뭐니해도 보컬이다. <카디>의 보컬 "예지"는 심사위원과 참가자들이 공인한 "이너네셔날 보컬"이기 때문에 나도 황린처럼 큰 기대를 했던 것 같다. <카디>의 프런트맨 "황린"은 이 멤버로 1등을 못하면 말이 안 된다고 할 정도로 예지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의 능력 또한 출중했다. 매 회마다 새로운 기타 사운드를 창조해 온 황린은 말할 것도 없고, 드럼이라는 게 원래 정확한 박자로 밴드 음악의 중심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하는데, <카디>의 드러머 "전성배"는 정박도 뒷박도 아닌 그 사이에 있는 정체불명의 박자를 두드리면서도 밴드와의 호흡을 놓치지 않는 독특한 드럼을 선 보였다. <카디>에 놀러 왔다가 <카디>의 정체성이 되어 버린 슈퍼밴드 최초의 거문고 파이널리스트인 "박다울"은 밴드명 <Kardi>에서 'K'를 담당할 정도로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를 잡았고, 베이시스트 "황인규"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개성 강한 멤버들을 하나씩 연결하는 기둥 역할을 훌륭하게 해 냈다는 것만으로도 칭찬을 받아 마땅한 베이시스트라고 할 수 있다.

슈퍼밴드 최종 파이널에서 아쉬운 3위를 차지한 <Kardi>. 사진 출처: 스타데일리뉴스


영원한 생명을 얻은 <Crack Silver>

예상을 뛰어넘어 1위를 차지한 <Crack Silver>에게 가장 아쉬운 건 오직 이름이다. <크랙 실버>는 왜 하필 "오은철"의 이름 석 자 중 '은'을 취했을까? 베이시스트 "사이언"이 빠지고 피아니스트 오은철이 참가한 크랙샷은 일명 <오랙샷>으로 불렸다. 사이언까지 돌아온 마당에 <크랙샷>을 계속 <오랙샷>으로 부를 수는 없는 노릇, 그런데 하필 '오'를 제하고 남은 두 자 중 '철'이 아니라 '은'을 취해 <크랙 실버>라는 애매허접한 이름을 갖게 되었다. 만약 오은철에서 ‘철'을 취했다면 이름까지 그럴듯한 완성체 <크랙 메탈>이 되었을 텐데… 뭐, 그래도 <오랙샷>보다는 낫다.

4인조 글램 록 밴드였던 <크랙샷>은 피아니스트 오은철의 가세로 5인조 심포니 록 밴드 <크랙 실버>로 재탄생했다.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인데 1등까지 거머쥐었으니 슈퍼밴드2의 최대 수혜 밴드라고 아니할 수 없다. 난 피아노와 키보드 사이를 오가며 건반을 두들겨 대는 오은철의 모습에서 바로크 메탈의 전설 <딥 퍼플>의 "존 로드"가 떠올랐다. 기타리스트 "윌리K"의 무대 퍼포먼스는 누가 봐도 바로크 메탈을 전 세계에 알린 "잉베이 맘스틴"을 닮았다. 잉베이가 <딥 퍼플>의 까칠한 기타리스트 "리치 블랙모어"의 영향을 받았으니 윌리K가 오은철을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크랙 실버>가 이대로 쭈욱 음악 활동을 이어간다면 '존 로드'의 <딥 퍼플>에 이어 '리치 블랙모어의 <레인보우>, '잉베이 맘스틴'의 <알 카트라즈>가 못 이룬 클래식과 록이 만나는 새로운 음악의 지평에 언젠가는 도달할지도 모르겠다.

슈퍼밴드 최종 파이널에서 우승을 차지한 <크랙 실버>. 사진 출처: 스타데일리뉴스


린나경 + 황현조 = <The Fix>

<린나경> AI 프로듀서 "황현조" 결합한 밴드, <The Fix> 무대는 나에게  "Don't Look Back" 짝퉁처럼 들렸다. 보컬 "린지" 보이스는 사람의 목소리라기보다는 차라리 악기에 가깝다. "Don't Look Back"에서 정나영의 볼륨 주법과 함께 나오는 린지의 목소리를 기타 소리로 착각했을 정도다. 그래서 그런지 노래를 부를  진실처럼 느껴졌던 린지의 목소리가 일상 대화 속에서는 가식처럼 들렸다. 나만 그런가? 중간중간 있었던 인터뷰에서 린지 대신 다른 멤버가 말을 했다면 린지와 더불어 < 픽스> 신비감이  했을  같다. 드러머 "" 수퍼밴드의 기라성 같은 참가자 중에서도 나의 최애 참가자다. 경의 천진한 미소를 보면 무작정 기분이 좋아진다. <카디> 전성배의 드럼 특징이 정박을 비껴가며 만들어 내는 그루브라면, 경의 드럼은 정박을 찍어대며 만들어 내는 다이나믹함이 대체 불가능한 장점이다. 경은 낮은 튜닝의 드럼으로 다이나믹함에 묵직함까지 더해 필인으로 심사위원 유희열을 혼절 위기로 몰아넣기도 했다. 전곡을 필인으로 돌려주었으면 좋겠다는 유희열의 심사평에 나도 동의한다. "정나영" 기타 리프는 아직은  익은  보인다. 기타가 보컬과 함께 전면에 나서지 못하면 대중들이 원하는 밴드의 에너지를 뿜어 내는  한계가 있다. <크랙 실버> 보라, 보컬과 기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대중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무대의 에너지를 만들어 내지 않느가! < 픽스>에서 정나영의 기타는 중심보다 주변에 머물러 있는  보인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AI 프로듀서 "황현조" 가세가 린나경의 음악 폭을 넓혀  것은 확실하지만, 대중들은 복잡한 예술보다 간명한 예능을  좋아한다. 피타고라스가 소리의 진동 주파수를 계산해 음계를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계산을 통해 탄생한 음악은 연속된 아날로그 감성을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천방지축 프런트맨 린지가 < 픽스> 이끌며 풀어 나가야  숙제이다.

아쉬운 4위 <더 픽스>. 사진 출처: 스타데일리뉴스


밴드의 새로운 실험, 기타 어벤저스 <Poco-A-Poco>

기타 4대로도 밴드를 구성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준 <Poco-A-Poco>는 파이널리스트로서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그 가치가 빛나는 팀이다. 이름도 귀엽게 잘 지었다. 쏘울 가득한 "제이유나"의 보컬은 대중들의 심장 주파수를 알고 있는 듯하다. 최연소 파이널리스트 "김진산"은 최연소 답지 않게 <포코아포코>에서 음악의 골격을 책임진다. 욕일지 칭찬일지 모르지만 클래식 기타리스트 "장하은"의 목소리는 기타보다 감미로웠다. 전문 보컬이 아니기에 불안정한 고음은 애교로 봐주자.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 연주할 때의 눈빛이 다소 농염해 감상을 방해한다는 게 역시 장점인지, 단점인지 잘 모르겠다. 보통 밴드에서 일렉기타는 늘 주연을 담당하는데, <포코아포코>에서 "정민혁"의 일렉기타는 다른 기타들이 빼먹은 소리를 챙겨주는 사운드 매니징을 담당한다. 축구로 치면 공격형 미들필더라고 할 수 있다. <포코와포코>가 기타 4대로 음악의 어느 영역까지 확장해 나갈지는 많은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일 것이다.

존재만으로도 그 가치가 돋보이는 <포코아포코>. 사진 출처: 스타데일리뉴스


두 명의 남성 보컬이 만들어 낸 기적, <Cinema>

<Cinema>가 <크랙 실버>와 함께 끝까지 남아 결국 2등까지 차지한 기적은 매력적인 남성 투 보컬이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크랙 실버>야 그렇다 쳐도 <시네마>가 <카디>를 제치고 2위를 했다는 사실은 나 또한 3위를 선고받고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던 황린처럼 인정하는 게 쉽지 않았다. "임윤성”의 보컬은 들매다. 처음 들었을 땐 평범해 보이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매력이 쩐다. 그런 면에서 임윤성을 선택한 보컬이자 기타리스트 "기탁"의 혜안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기탁은 보컬로서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기꺼이 임윤성이라는 보컬과의 거버넌스를 선택했다. 기탁의 선택을 받은 임윤성은 처음에 어리둥절해했지만, 무대가 거듭되면서 기탁의 선택에 납득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베이시스트 "변정호"는 슈퍼밴드2의 안정환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배우 장동건이 제발 외모가 아닌 연기로 자신을 봐 달라고 했던 것처럼, 변정호도 이미 가지고 태어난 외모보다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 성취한 베이시스트로 인정받고 싶을 것이다. 인생이라는 게 그렇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모른다. 변정호를 보면 신은 대놓고 불공평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2010년 <Toxic>이 탑밴드에서 1위를 차지했을 때 보컬과 기타를 담당했던 김정우의 그늘에 가린 "김슬옹"을 그저 천재적인 드러머라고만 생각했었다. 짙게 눈 화장을 한 김정우의 카리스마가 워낙 강하긴 했다. 하지만 슈퍼밴드2에서 김슬옹의 드럼은 오히려 평범하게 느껴졌다. 반면 슈퍼밴드2를 통해 김슬옹이 가지고 있던 음악 센스가 크게 부각되었다. 그 첫 센스가 발휘된 무대가 바로 12세의 기타 '카피' 신동 “다온”과 함께 한 "사탕가게 아가씨"였다. 김슬옹은 2인조 밴드 <톡식>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빌 수밖에 없는 사운드를 훌륭하게 채웠고, 심지어 노래까지 앙증맞게 불렀다. "사탕가게 아가씨"에 중간에 등장한 "Smoke on the water"의 기타 리프는 김슬옹의 센스 있는 배려였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생방송 파이널 무대에서 선 보였던 시네마의 두 번째 자작곡 "항해"는 파이널 생방송에서 소개된 노래 중 가장 좋았다고 생각한다.

매력적인 투 보컬로 2등으로 기사회생한 <시네마>. 사진 출처: 스타데일리뉴스


비범하지 못해 슈퍼밴드2의 먹잇감이 된  <The Whales>

<The Whales>는  파이널 라운드에 오른 6팀 중 평균 나이가 최연소라는 점을 빼면 가장 평범한 밴드라고 할 수 있다. 파이널 라운드 1차전에서 속사포 드러머 "조기훈"이 부상으로 빠진 채 무대에 올라 6위가 되었지만, 단지 드러머가 빠졌기 때문에 6위가 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파이널 1차전에서 <크랙 실버>가 비겁하게 <Motley Crue>의 "Home Sweet Home"으로 1등을 한 것을 보고, 심사위원보다 더 비중이 큰 문자 투표 60%를 통해 반전을 노리며 "John Lennon"의 명곡 "Imagine"를 들고 나왔지만, 다른 5팀의 독특한 매력을 넘어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최종 결과가 발표되기 전 페이스북에 올린 예상 순위에서 1등부터 4등까지는 못 맞췄지만, 5등과 6등을 맞추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이널리스트는 역시 파이널리스트, <The Whales>의 멋진 음악 활동을 응원한다.

슈퍼밴드2에서 6위를 차지한 <더 웨일즈>. 사진 제공: JTBC


슈퍼밴드2에서 심사위원의 역할

슈퍼밴드2의 심사위원들은 자신의 심사 능력 밖에서 음악을 가지고 노는 천재들을 보며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무대를 떠올렸던 것 같다. "변진섭"의 작곡가 "하광훈"은 2012년 3월 21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1992년 4월 11일 있었던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 무대에서 "난 알아요"를 듣고 감히 멜로디 약하다는 평을 해 지금까지도 악플에 시달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슈퍼밴드2 심사위원들은 "내가 혹평을 한 참가자가 나중에 <서태지와 아이들>처럼 잘 나가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을 느꼈을지 모른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분위기 파악 못하고 슈퍼밴드2에서 혹평을 한 심사위원 한 명이 시청자로부터 욕을 먹은 해프닝도 있었다고 알고 있다. 서바이벌의 독설가 "이승철"이 빠져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심사위원들은 참가자들에게 칭찬 일색의 심사평을 이어갔다. 하지만 입에 사탕을 문 심사위원들은 손으로는 자신의 음악적 취향을 서슴없이 표현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파이널 라운드 1차전에서 <크랙 실버>의 "Home Sweet Home"에 1.000점 만점에 990점을 준 심사위원 "이상순"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순은 자신의 점수에 대해 미안하다며 사과를 하기도 했다.

슈퍼밴드2의 심사위원들

이렇게 슈퍼밴드2는 끝이 났다. <카디>가 심사위원과 나의 기대처럼 진짜 내년 이맘때 비행기를 타고 전 세계 투어를 하고 있을지, <포코아포코>의 공연에 유희열이 진짜 표를 사서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슈퍼밴드2는 확실히 지금까지의 서바이벌 프로그램과는 다른 차별성을 보여 주었다. 그 차별성은 JTBC도, 전지전능한 심사위원도 아닌 천재적인 참가자들이 만들어 냈다. 슈퍼밴드2가 만들어낸 독특한 문화현상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어서 써 볼 예정이다. 단순 후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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