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백수 채희태 Feb 07. 2022

이해의 주체와 이성 과잉

이대남 현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이대남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라는 말은 이대남을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의 책임을 오롯이 이대남에게 전가하는 말이다. “총균쇠”를 쓴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말처럼 인간은 사실 철저하게 환경의 지배를 받는 동물이다. 우리가 통탄해 마지않는 그 환경은 누가 만들었을까? 적어도 이대남은 아니다. 제대로 시대를 진단하기 위해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가 아닌 “왜 그럴까?”를 따져봐야 한다.


모든 사회 현상에는 그 이유가 있다. 언제까지 이유는 무시한 채 결과에 대한 혐오만 할 것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엔 돈이 많은 사람도,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도, 학식이 뛰어난 사람도 모두 “약자 코스프레”에 몰두한다. 견고해 질대로 견고해진 구조 앞에 아무리 뛰어난 영웅도 결국 약자일 수밖에 없다. 슈퍼맨이라고 하더라도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범죄를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 그래서 등장한 문화적 아이콘이 바로 “어벤저스”다. 뛰어난 능력에 이성을 장착하면 영웅이 되고, 이성이 아닌 동물적 본성을 좇으면 빌런이 된다. 인간은 여전히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일으키고, 또 같은 종족을 학살하기도 한 이성의 과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니 한껏 진보한 과학문명에 취해 헤어 나올 생각 자체를 안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 같은 대학을 나온 친구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내가 주로 학생운동 변두리를 서성였다면 그 친구는 학생운동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던 친구였다. 그 친구는 아들이 어렸을 적 게임에 빠지지 말라고 한 달 정도 기타 학원을 보냈는데, 그 후 음악에 빠져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는데 음악 천재 소릴 듣는다고 했다. 자식 자랑을 하나 싶었던 친구는 자랑이 아닌 하소연을 했다. 친구는 아들이 음악이 아닌 공부나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난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넌 대학 때 부모님이 시켜서 데모했냐?
네 아들의 미래를 왜 네가 결정해?"


진짜 가진 게 없는 이대남의 눈에 이 시대 기성세대들이 그 잘난 이성(부, 지식, 신념?)으로 자신을 흠씬 두들겨 팬 다음 어이없게 경찰에 폭행죄로 고소한 조폭으로 보이지는 않을까?


네이버 일요웹툰 <착한 영웅>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이대남은 자신을 혐오하는 이 시대를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촛불 혁명이 만든 네거티브 사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