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사는 게 멋있게 사는 걸까?

by 낭만박사 채희태

어제 밤늦게 친구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주로 운전을 하며 집에 갈 때마다 졸음을 쫓기 위해선지 전화를 걸어대는 친구다. 중학교 때 같이 미술부 활동을 했던 친군데, 그 당시에는 관심사가 달라 그렇게까지 친한 친구는 아니었다. 중학교 동창이긴 하지만 그 친구는 단순히 추억 속에 박제된 '동창' 이상으로 현재의 나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조금 더 부연을 하자면, 그 친구는 프로그래머이자 사업가다. 이과이면서도 인문학에 조예가 깊어 나의 인문학 선생이기도 하다. 반면 나는 천상 문과지만, 수학을 좋아하고, 물리학에 관심이 많다. 나는 그 친구와 대화를 통해 이과와 문과 사이를 오가기도 하고, 추악한 현실과 실현 불가능한 이상을 넘나들기도 한다. 그 친구가 어제는 뜬금없이 이렇게 물었다.


희태야, 어떻게 사는 게 멋있는 사는 거냐?


선문답이 시작되었다. 그 질문에 "나처럼 살면 돼~"라고 말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난 멋있게 살기는커녕 더 이상 찌질해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는 중이다. 적어도 어제의 난 오늘의 나보다 덜 찌질했던 것 같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주변 사람들은 나를 여전히 꿈이 놓지 않고 살아가는 몽상가라고 불렀다.


그런데 지금 나의 꿈은 단지
더 이상 찌질해지지 않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 꼽는 나의 가장 큰 장점은... 관계를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1993년 제대하고 학교 앞에서 만난 술집 사장형이 뉴질랜드로 이민을 간 후에도 몇 차례 이메일을 주고받았었고(메일함을 뒤져보니 2011년에 보낸 메일에 아직 답장을 받지 못했다), 2000년 즈음부터 내가 몸 담았던 여러 직장 동료들 중 꽤 많은 사람들과 여전히 인연의 끈을 놓지 않으며 살고 있다. 88학번인 내가 위로는 80학번 선배, 아래로는 00학번 후배들까지 챙길 정도로 오지랖을 떨며 살았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본의 아니게 끊어진 인연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의지하고 존경했던 한 선배는 코로나 백신을 두고 논쟁을 한 후, 나와의 관계를 끊었다. 그 후 몇 년째 연락을 시도하고 있으나 묵묵부답이다. 아마도 내용의 문제였다기 보다는 논쟁에 임하는 내 태도가 문제였다고 반성하고 있다.


내가 끊은 인연도 적지는 않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감정 에너지가 고갈되어 가는 것을 느낀다. 젊었을 때였다면 어떻게든 관계를 이어 붙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겠지만, 60을 바라보는 지금 난, 언젠가부터 감정 에너지가 과하게 들어가는 관계에는 크게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예전엔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라는 심정으로 살았다면, 지금은 즐길 수 없다면 피하자라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나 할까?


언젠가 난 내가 몸 담은 커뮤니티에서 관계의 소중함을 주장하며 관계가 주는 1의 피해 때문에 99를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역설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이 바뀌었다. 변했다고 비난을 받아도 상관없다. 지금의 난 그 1의 관계가 견디기 어려울 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40여 년 전 민주화 투쟁에 나선 것이 지금의 586이 아니라 당시의 청년학생이었듯, 동창은 그저 과거를 공유하는 추억 속의 존재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 사이 서로 다른 삶의 경험 속에서 뒤틀린 가치관을 가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다 뒤통수를 쎄게 얻어맞았다.


난 이제 그 1과의 관계를 끊어내기 위해 나머지 99와의 공식적인 관계를 버리고자 한다. 크게 아쉽지는 않다. 생각해 보니 추억의 소환 이상도 이하의 관계에 얽매여 반가움에 가려진 불편함을 참았던 적도 없지 않았던 것 같다.


파스칼이 이야기했듯 피레네 산맥 이쪽의 진리가 너머에서는 진리가 아닐 수 있다. 그렇기에 내가 옳고 그 1이 틀렸다고 항변할 생각은 없다. 이어지지도 않을 관계에 구질구질하게 나의 메마른 감정을 소모하고 싶지 않기도 하고… 내 주변에도 동창들과 인연을 끊고 살아가는 친구가 하나, 아니 둘인가? 있는데, 그동안 그 심정에 이해하지 못했던 나를 반성한다.


혹시라도 그 1을 마주치는 것이 더러워(무서워라고 썼다가 더러워로 고친다) 공식적인 관계를 끊을 뿐, 개인적인 관계까지 끊는 것은 아니니 오해는 하지 마시라!


멋있게 살긴 이미 글렀고,
더 이상 찌질해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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