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이세계물이 아니라, Re:디자인이라도...
지난 5년간 벌어진 나의 문제는 결국 50년간의 습관이었다
몇십 년을 살아가다 보면 인생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습관이 생긴다. 단순히 흡연, 음주 등의 습관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이 많아지는 습관, 감정적이 되는 습관, 중독 수준으로 변하는 습관 등 그 폭이 정말 넓다. 이 외에도 가족관계, 인간관계, 직장생활에서 맞이하는 무수히 많은 이슈들에 대한 대처 습관 역시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보통은 패턴이라는 멋진 말로 표현하지만, 내 경우에는 단순한 습관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예를 한번 들어보자. 어떤 한 인간이 있다고 상상해 보자. 가족 내에서 성장을 한다는 건, 한 인간으로는 무수히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강압적으로 큰 아이는 강박이 생겨나고, 이로 인해 주변인과의 관계를 맺을 때 불필요한 불안감과 같은 감정을 자주 갖게 된다. 확립되어 가는 자아상/세계관 등에서, 타인과 원만한 관계를 갖기 어려운 형태를 갖게 된다. 이 불균형적인 형태가 욕망이라는 에너지를 만나면 그 형태가 어그러지면서 동시에 크기가 커지게 된다. 결국 '개성'으로 발현이 되게 된다. 이 개성이 사회적 범주 안에 있으면 일반인, 법률적 범주 밖으로 가면 범죄자가 된다.
다양한 인간이 있기에, 위에서 언급한 과정을 통해 수많은 Variation들이 발생한다. 이러한 사람들의 유형은 Stereotype이라는 형태로 정리되기도 한다. RGBT, Gen Z, X, Y, 꼰대 등, 모든 단어들이 Stereotype의 별칭인 것이다. 거시적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미시적인 관점에서는 결국 한 개인이 접하게 되는 고통의 집합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패턴 같은 멋진 단어보다는, 개인의 입장에서는 아주 빠져나오기 힘든 습관이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따라서, 내 시각은 철저하게 미시적이다. 난 사회를 논할 주제가 못된다.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은 나와 내 주변의 미시적 개인들이 스스로 '다양한 습관'을 정확히 이해하고, 미시적 정신승리를 통해 건강한 삶을 살기를 희망한다. 습관들을 구조로 바라보고, 그 속에서 정확한 문제점을 인지해야, 재구성(Re:디자인)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습관은 정말 쌓여서 만들어졌다.
자신의 습관을 다 인지하는 개인이 얼마나 될까? 수십 년 간 쌓여온 고착되어 버린 다양한 습관들이, 습관인지 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스스로를 아무리 객관화해도 Interaction을 할 상대가 없으면 명확히 알기 어렵다. 지금까지 발견한 내 습관의 구조는 이러하다.
1. 몸에 관련된 습관
- 섭취습관: 흡연, 음식섭취, 음주 등
- 자세습관: 앉아있는 자세, 서있는 자세, 걷는 방식 등
- 운동습관: 생명유지를 위한 운동 등
2. 사고방식 습관
- 콘텐츠 선호 습관: 읽는 책, 보고 듣는 콘텐츠 등
- 선호 설루션 습관: 매번 당면하는 문제(개인/업무)를 해결하는 선호 방식
- 카타르시스 습관: 나도 모르게 감정을 해소하게 되는 특정 방식
3. 관계 습관
- 1차 관계 습관: 가족부터 친구까지 Non-biz 관계의 1차적 관계를 맺어가는 방식
- 2차 관계 습관: 동료/동창부터 직장 선후배/상사까지 Biz 관계의 2차적 관계를 맺어가는 방식
- 3차 관계 습관: 호감/애정 등의 Emotional Relationship에 대한 3차적 관계를 맺어가는 방식
- 관계를 3가지로 나누게 된 이유는 있다. 일단 확실한 것은 '대상'은 관계의 Tier를 넘나들기 때문이다. 물론 원한, 애증, 질투 등 수많은 감정 레이어가 있겠으나, 큰 구조는 3가지라고 생각한다.
4. 마지막으로 습관이라 칭하기는 어렵지만, 상기 6개의 습관으로 구성되는 세계를 바라보는 나만의 방식이다. 세계관이라고까지 하기엔 거창하지만, 분명 개인마다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은 확실히 다르다.
하나 희한하게 느끼는 것은 유튜브 알고리즘같이 좋아하는 것을 반복하게 되는 성향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하겠다. 아무리 더 큰 대의/정의/가치를 외쳐도 결국 손가락 끝에서 벌어지는 장면은 그 당시 맥락에 해당하는 쾌락을 따라가는 것 같다.
약 2년간 경박단소에 대해서 계속 고민하면서 다양한 서적과 강의 등을 보았다. 불교의 가르침, 마인드풀니스, 습관형성, 심리상담, 영성이슈 등 많은 내용들을 보았지만, 보면 볼수록 좀 헷갈리는 경우가 많았다. 왜냐하면 이들이 던지는 문제해결의 화두는 너무 거대하거나 너무 작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현실에 적용가능한 중간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더 많이 헤매게 되었다. 어떤 책은 습관에 대해서, 어떤 책은 생각/감정/감각에 대해서 따로 이야기를 한다. 각론에 들어가면 너무나 다양하고 많은 이론이 있다. 다들 틀린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 맹점이다. 모두 정답이 아니라 눈감고 코끼리의 코를 만진 사람과 다리를 만진 사람과 꼬리를 만진 사람이 있을 뿐이다. 내 경우에도 그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오랜 기간 이 주제에 대해서 생각을 해왔고, 오랜 기간 동안 별일이 다 벌어졌으며,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봐주는 상대가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습관의 구조도 '건물의 구조와 비슷하다'라고 생각한다
건축물의 구조를 보면 '뼈대'가 있고, 그 뼈대 안에 '벽체'와 '바닥'을 만든다. 일단 이 구조가 튼튼하면 벽과 바닥에 구멍이 나기도 하지만, 건물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기본 구조가 선 후, 바닥/벽 같은 면 부분이 채워지고, 그 위에 도배를 하거나, 마루를 깔게 된다. 시간이 점점 더 가면서 그 면위에 컬러가 입혀지고, 소품이 자리를 잡게 된다. 물론 개인적으로 소품은 취향이라고 생각한다. 여기까지가 하나의 건축물이 시간을 보내면서 완성되어 가는 모습이라 해볼 때, 사람 한 명이 개성을 가지고 만들어져 가는 과정 역시 유사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앞서 말한 습관들 (몸 관련 습관, 사고방식 습관, 관계 습관)은 결국 모두 뒤엉켜 작동되며, 이 작동이 시간이 지나가면서 뼈대가 되어가고, 벽체와 바닥이 되어가고, 색이 입혀지고, 소품(=취향)으로 완성되어 간다. 이론적으로는 비가 세어서도 안되고 , 겨울엔 따뜻해야 한다. 하지만, 습관이 잘못 만들어지면 비가 줄줄 세며, 겨울엔 춥고 여름에 너무 덥게 된다.
이런 집을 수리하려면 하중을 어떻게 받는지, 구조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일층의 기둥 벽을 수리할 때 어떤 조치를 취하고 수리를 해야 하는지 경험이 없으면 모르게 된다. 문제를 해결하다가 문제에 짓눌리게 되는 것이다. 신체습관이 잘못돼서 정신적 문제가 악화되었는데 정신적인 조치만 지속 취해봐야 해결이 나지 않는 것의 이치다.
습관이 인풋이면, 아웃풋은 무엇인가?
개인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뒤돌아보면 몸 관련 습관, 사고방식 습관, 관계 습관은 사실 분리되어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사고방식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몸 관련 습관이 더 큰 원인인 경우도 있었고, 관계에 대한 습관이 잘못 들어 사고방식의 문제가 생긴 적도 있었다.
지금은 이렇게 생각해보려고 한다. 난 왜 한동안 '경박단소'에 심취했고, 나름대로 어느 정도의 효과는 있었다고 느꼈을까? 무거운 것을 가볍게 했고, 두꺼운 것을 얇게 했고, 긴 것을 짧게, 큰 것을 작게 만드려고 했다. 여기서 '무거운 것/두꺼운 것/긴 것/큰 것'에서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에게 '것'이란 사실 어떤 날은 '생각'이었고, 다른 날은 '감정'이었다. 물론 이 두 가지는 항상 '감각'을 수반했었다.
: 너무 덥다는 감각은 공황 때 느꼈던 숨쉬기 어려운 감각을 연이어 불러왔고, 이러한 감각은 날 감정적으로 북받치게 했다. 난 아직 공황장애를 못 빠져나왔구나라는 생각으로 귀결되었다. 이 일이 벌어지기 7년 전을 회고해 보면 '무조건 해내야 해=생존'이라는 생각이 습관이 되었고, '못한다면=감정적 절망'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이 두 가지가 합쳐지면 '숨이 막혀 죽는 = 감각'이 생겼었다. 순서는 계속 바뀐다. 어떨 때는 생각에서 감정으로, 감정에서 감각으로 치달았고, 어떨 때는 순서가 바뀌었다.
: 내가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인간관계, 직장 이슈, 금전 이슈가 벌어졌을 때는, 생각/감정/감각 모두가 한꺼번에 마비가 오는 것 같았다'. 사소해 보일 수도 있는 작은 이슈가 날 숨 못 쉬게 했던 기억과 엄청나게 무거운 돌들이 한 번에 쏟아졌을 때, 나는 분명 흔들렸고, 무너질 뻔했다. 이때 날 압도했던 것은 '생각/감정/감각' 모두가 한 번에 뭉쳐서 나타났던 것이다. 문제는 이런 압도되는 경험은 절대로 내가 가진 습관에 대한 비판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난 공황이 있었어. 회복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증상이 나타나ㅠㅠ. 무서워. 왜 이러는 걸까? 약간의 통제는 되는데 도무지 뭐가 뭔지 모르는 상황이야. 숨이 안 쉬어져"라고만 되뇌게 된다.
'습'의 아웃풋인 생각과 감정과 감각의 무한지옥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고통이 몇 년간 지속되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 고통의 지속시간이 길어지면서, 감각적으로는 힘들었지만 감정적으로는 만성화가 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순간적인 감정이 장기적인 감정이 되었고, 이로 인해 생각과 감정이 많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이 '특정 생각이 발생하면, 유발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종국에는 '감각적으로 내가 평상시와 달라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무한반복이었다. 생각이 감정을, 감정이 감각을, 감각이 감정을, 감정이 생각을 발생시켰다. 이 무한지옥에 빠지면 도무지 헤어 나올 길이 없어진다.
습관이라는 인풋과 생각/감정/감각이라는 아웃풋을 동시에 다뤄야 할까?
자주 보는 요가원 원장의 유튜브 채널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생각은 무관심으로 없애야 하고, 감정은 호흡으로 조절이 가능하며, 감각은 집중하면 적어진다고. 이게 명상에 대한 유일한 공학적인 접근이란다. 물론 이 말에 상당히 동의를 하고 있다. 내가 겪은 무한지옥 탈출방법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렇다. 아직도 찾아가는 중이라는 점을 기억해 주시기 바란다.
1. 무한지옥의 출발점은 '습관으로 이루어진 구조물을 인식'해야 한다.
2. 구조물은 '몸에 관한 습관, 사고방식에 관한 습관, 관계방식에 대한 습관'이 주를 이룬다.
3. 이 3가지 습관이 Input이 되면 생각/감정/감각이 Output이 된다. 이 Input과 Output은 무한수를 표시하는 기호처럼 연결되어 있다. 뒤죽박죽인 상태에서는 Output이 Input이 되고, 그 반대도 벌어진다. 출발점이 모호해지는 상태가 된다.
여기까지가 50년의 습관으로 인한 5년간의 고통을 느끼면서 알게 된 내용이다. 남 탓을 하기도 했고, 내 감정 정도는 내가 컨트롤할 수 있을 것이라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면서 배출을 시도해보기도 했다. Sarcastic 한 농담을 끊임없이 만들어냈다. 특정 주체를 깊이 탐구해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전체를 보지 못하니, 효과는 일시적이었을 뿐이었다. 도대체 지금 2025년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무수히 고통을 겪는 수많은 사람들이 조금 더 나아지려면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해결이 될까 가 나에게는 너무나 큰 화두가 되었다.
멋진 글귀, 깨달음을 주는 문장, 잠시나마 할 수 있는 깊은 명상 정도로 모든 이의 고통은 없어지지 않는다. 이 세계 애니메이션처럼 다 끝내고 다시 시작할 수도 없다. 금융치료도 잠시 뿐이며, 해외여행도 오래가는 치료법은 아니다. 몽클레어에 롤렉스를 치감아도 결코 해결 나지 않는 근본적인 이슈다. 사랑하던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 듯 한 순간이 온다. 믿던 사람이 나를 버리고,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내 능력이 쓸모없어지기도 한다. 어떤 것도 예상한 기간만큼 유지되지 않는다. 절대로 남에게만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눈 깜짝할 사이에 내 일이 된다. 체인리액션이 벌어지면 그 풍파는 결코 작지 않은 일이 된다.
그래서 더 행복해지자는 게 아니다. 이런 Uncertainty 속에서 유일하게 나를 지키려면 이 '습'에서 출발한 '고'를 이해해야 할 것 같다는 거다. 적어도 '미쳐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나를 이루는 구조를 허물지 않으면서, 다시 디자인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우.... 이 한 장을 적는데 한 달이 걸렸다. 시작도 조심스러운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