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쏘로우, 법정스님 그리고 어프그리드
또 일이 터졌다.
참 다사다난하다. 토할 것 같은 느낌이다. 내 책임과 능력 범위 바깥에서 벌어진 이번 일은 나에게 엄청난 Collateral Damge를 준다. 항상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터지는 일은 힘들다.
인생의 어느 시점이 되어서 그런 건지 일이 계속 생기고 있다.
불안정적이고, 불안해 보이는 변화들 그리고 엄습해 오는 답답함.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예상했던 일들이 180도 반대로 벌어진다는 것이다.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고, 정말 나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기쁜 일이 되기도 했다. 예상의 의미가 상실된다. 각주구검하던 내 인생에 새롭게 오는 새옹지마다.
한 가지 일에 즐거워하고, 또 한 가지 일에 괴로워하는 스스로가 지겹게 느껴진다. 물결처럼 다가오는 그 막막한 불안감은 끊임없이 날 초조하게 만든다. 지금 날 덮쳐오는 물결이 날 쓸고 지나갈지, 날 덮어버릴지 모르겠다. 잠자리에 누우면 의식이 생각을 멈추라고 속삭인다. 이불을 입 위까지 올리고 작은 숨소리를 듣는다. 핸드폰으로 놓아버리라는 유튜브 채널을 들으며 잠들려 노력한다. 한 2~3시간이 지나면 여지없이 잠에서 깬다. 허망과 분노가 섞여 안개가 낀 듯 눈앞이 어둑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벌어진 일에 대한 생각을 해보다 바로 멈춘다. 다시 자려면 어느새 뒷목과 등짝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기분 나쁜 느낌에 수면과 각성 중간 상태로 아침까지 뒤척인다. 눈알이 빠질 것 같은 통증과 심장이 쪼그라든 것 같은 상태로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하며 욕실 바닥에 엎드려 기도를 한다. 심한 압박과 무거움을 내보내려 한다. 무표정한 얼굴로 간단한 먹을거리를 먹고 양치를 하고 출근을 한다.
이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면서 감정을 조절하려 끊임없이 호흡을 한다. 478 순서로 한다. 들이쉬고 멈추고 내뱉고를 반복한다. 생각이 잡초 자라나듯 떠오를 때는 차 안에서 볼륨을 높이고 상진스님의 금강경이나, 싱잉볼 소리를 듣는다. 생각이 조금 잦아들고 호흡이 안정된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더라면
고통스러운 일들을 겪어내면서 자주 드는 생각은 결국 뭔가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고통의 원인인 듯하다. 내가 쌓아온 성취도, 만들어온 자산도, 인간관계도 모두 언젠가는 없어질 것이라는 알면서도 지금 당장 없어진다면 너무 괴로울 것 같다. 화두는 이렇다. 모든 것이 없어져서 결국 '나'도 없어진다는 생각이 온몸에 박이면 그 어떤 감정도, 감각도 이렇게 고통스럽지는 않을 것 같다. 감정과 감각이 없어진다면 생각이 생길 리 만무하다.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은 내가 '나'를 비우더라도 '없던 게 생길 거라는 희망'같은 건 아예 의식을 하면 안 되리라는 거다. 이 수련과도 같은 삶에서는 행복도 치사하게 느껴진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느끼는 주체인 '내'가 없다면 다 사라지겠지만, 아직도 내 안에 꽉 찬 '나'는 내게 흘러들어오는 모든 것을 오롯이 느끼고 있다. 요즘 부쩍 희망한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더라면, 좀 나으려나?'
저소비생활이라는 책을 읽었다. '스트레스받는 삶. 보상을 위한 끊임없는 소비가 결국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억지로 노력하지 않고, 숨만 쉬어도 돈이 줄어든다는 불안을 줄이고, 잘 나가는 사람들과의 비교에서 벗어나고, 약하지도 강하지도 않은 자신으로 사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돈/의식주/생각/습관을 정리하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결과적으로 안정화된 생활을 지키는 방법이 중요하다고 한다. 내 눈에 띄었던 소제목과 글귀는 이렇다. '깨끗이 포기한다. 이것밖에 없어라는 생각이 결국 포기를 어렵게 한다. 살짝 관두는 느낌으로', '이미 가진 것에 눈을 돌린다. 잘 안 보이지만 잘 보면 보인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일단 물러난다. 다음에 방문했을 대 본다. 대체제를 바로 찾지 않는다', '집착을 버리고 기분전환을 한다. 인연이 없었고, 정말 때가 되면 손에 들어오겠지'
결국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무리해서 지키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깨끗이 포기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이미 가진 것 정도에만 눈을 돌려도 되지 않을까?라는 상당히 경박단소적인 생각의 실행 매뉴얼 같은 책이었다.
법정스님은 왜 월든을 좋아했을까?
무려 2년간이나 완전히 자연으로 돌아가는 생활을 하는 1800년대의 미국 자연인 같은 철학적 생활 혁신가인 듯하다. 그래서 법정스님이 좋아했던 것 같다. "I went to the woods because I wished to live deliverately. To front only the essential facts of life, and see if I could not learn what it had to teach, and not, when I came to die, discover that I had not lived. 내가 숲으로 간 이유는 의식적인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삶의 본질적인 면만을 직면하고, 삶이 가리키는 것을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고 싶었으며, 내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혹시 잘못 산 게 아닌지 알고 싶었다", "Simplify, simplify. 단순화해라, 단순화해라", "The mass of men lead lives of quiet desperation,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요한 절망 속에 살고 있다". 제일 와닿는 것은 대부분의 인간들이 고요한 절망 속에 살고 있으니, 꿈을 좇고 단순하게 살아라고 하는 메시지였다.
멘털 오프그리드와 피지컬 오프그리드가 정답일까?
요즘엔 사회가 설정한 물질적/정신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잘못 사는 것이라고 주입당한다. 수십 겹의 수직 레이어로 구성된 그물망구조인 사회에서 가치관/세계관/인생관 정도로 정답을 찾기는 너무 어렵다. 그물망은 기어의 움직임으로 오르락내리락하며, 망의 촘촘함이 헐거워지면 바닥으로 추락하기도 한다. 인생이라는 수직그물망에서 자꾸 떨어지는 연습을 해야 인생의 맨바닥을 볼 수 있는 것 아닐까? 아니, 충격이 줄어드는 것은 아닐까? 결국은 모두 바닥에 떨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핵심은 결국 모두 필연적으로 바닥으로 간다는 것이다. 바닥은 가깝게는 힘든 하루고, 헤어짐이고, 없어짐이고, 멀게는 죽음과 소멸이다.
그 어느 누구가 갑자기 자발적으로 바닥으로 갈 수 있겠는가?
앞서 말한 3명(저소비생활의 저자, 월든의 저자 그리고 법정스님)은 자발적으로 그물망에서 나간다는 행동이 삶을 다시 디자인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물건/지위/권력/자산/능력과 같이 중독이 발생하는 영역에서 강제적으로 발을 빼는 연습을 하면서, 조금씩 수직의 수십 겹 그물과 그 그물을 움직이는 기어망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결국 Grid같이 구성된 그물망에서 거리를 두는 게 Off-Grid인 것 같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잠시 물러난다던지
인연에 실패하면, 잠시 혼자 지낸다던지
무언가 가지고 싶다면, 그곳에 한 동안 가지 않고 나중에 간다던지
복잡하다면, 단순하게 바라본다던지
인생이 고요한 절망이더라도, 작은 평화를 찾아본다던지
의도를 가지고 숲으로 가 머물러본다던지
수많은 경우가 있겠으나, 공통된 방법은 '거리를 두는 것'같다.
특히 생각과 감정에 거리를 두면, 다시 보인다.
인생이 '비교와 집착'으로 가득 찬 Grid라면,
'거리를 두는 Off-Grid'가 Re:디자인의 첫 출발점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