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다시 써야할 것 같다
모두 본인의 이야기가 있다.
나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을 보더라도 그렇더라. 모두들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더라.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성장 스토리가 있고, 부모님의 이야기, 형제자매의 이야기, 학교 다닐 때 이야기, 첫사랑 이야기, 회사 입사 이야기, 업무 중 받았던 스트레스 이야기, 여행 갔던 이야기 등 수 많은 이야기가 있더라. 구구절절하다. 내 경우에도 지난 수년간 적어왔던 '인생의 판이 뒤집히는 것 같았던 이야기'가 있었다.
왜 그렇게 이야기를 좋아할까?
세상에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게 이야기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스스로의 성공, 고생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건, 남들의 뒷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건 모두 이야기에 빠져든다. 마약, 술, 담배보다 사람들이 더 좋아하지 않나라는 생각이다.
궁금증은 왜 이렇게 이야기를 좋아하는 걸까 이다. 여러 이론들이 있겠지만, 내 경험상으로는 기억하기 쉽기도 하고, 앞으로의 행동강령을 만들어내기가 참 용이하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앞에서 무시를 당했던 경험을 복수의 힘 또는 성장의 힘으로 사용하고, 칭찬받은 경험이 도파민으로 연결되어 반복적인 습관 형성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거꾸로 폭력 앞에서 무너졌던 기억으로 끊임없는 불안이 야기되기도 했었다. 이 모든 것들이 이야기의 형태로 저장되었다.
본인이 납득 가능한 수준의 이야기 구조는 언제나 '쉽게 삶을 흐름을 정의'해 준다. 삶을 살아가는 아주 쉬운 원동력 또는 추락하게 만드는 힘으로도 작용한다는 점이다.
조금 더 확장을 하면, 타인의 이야기가 있다
가깝게는 친구의 이야기, 멀게는 유명인의 이야기 등이 있다. 물론 책 속의 역사 이야기도 역시 이야기이다. 사실에 근거했는가 아닌가 가 다소 중요한 분기점이 되겠으나, 진실이란 한 개인이 허구이더라도 진실로 믿어버리면 그 효과가 동일하다는 것이 맹점이다. 한 개인이 타인과 맺는 관계는 다양한 접점에서 벌어진다. 회사에서, 학교에서, 모임에서, 책 속에서, 유튜브에서, 넷플릭스에서, 불법 만화사이트에서, 당근마켓에서...
대부분의 플랫폼은 이야기를 생성하고 있다. 쇼츠로 만들던, 긴 영상으로 만들던, 책으로 적어내던 모두 이야기다. 브랜딩도 결국 그 브랜드의 성장과정에 대한 의인화된 이야기일 뿐이다.
이야기가 덫이 되기도 하더라
본인의 불행했던 이야기와 남들이 성공한 이야기가 잘못 만나면 그 부정적인 시너지는 폭발력이 대단해진다. 승승장구하던 타인의 몰락 이야기에서 사람들은 어느 정도 위안감을 느낀다. 재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가십은 무엇인가? 결국 타인에 대한 질투심에서 야기된 이야기를 지칭한다. 반면에 자신의 성공했던 이야기는 술만 먹으면 반복해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나이 들어가면서 과거의 성공에 멈춰있는 사람들은 예전에 잘 나갔던 이야기를 되풀이한다.
이야기란 생겨나기도 하지만, 분명히 내가 어떻게 구성하는가가 중요해 보인다.
이야기란 가장 명확한 커뮤니케이션 툴인 것은 확실해보인다. 그러나 이야기란 그 엄청난 매력을 잘못 수용하면 사람은 천국으로도, 지옥으로도 갈 수 있는 점 역시 명확해보인다. 이야기의 덧없음을 꿈꾸면서도, 특정 이야기에 열광하는 나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더욱 더 지울수 없게 된다.
내가 평온함에 이르는 이야기를 상상한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에 공감이 가기를 기원한다.
내가 억울했던 이야기가 납득가능하기를 소망한다.
내가 살아갈 이야기가 죽을 때 후회없는 이야기이길 기도한다.
오늘 아주 큰 일을 하나 치르고 왔다. 이 일을 준비하고 거쳐내면서 불확실한 미래를 마주앉고 있다.
이 이야기가 불안한 이야기일지, 극복의 이야기일지를 정하는 것보다는, 기억조차 나지 않을 작은 이야기이길 희망한다. 살아가는데 어떤 이야기를 얹을지가 참 무겁게 느껴지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