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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der Sep 19. 2023

실리콘밸리. 중독.

여기엔 왜 이렇게 중독자가 많을까?

한국에 오면 내가 즐기는 일 중에 하나가 등산이다. 내가 사는 곳 가까운 곳에 등산로가 있어서 주말이 되면 아침 일찍 해가 뜨기 전에 산에 오른다. 산에 오르는 것도 좋아하지만, 산에 오를 때 오디오북이나 포드캐스트를 듣는 것도 좋아한다. 이어폰을 끼고 산에 오르면, 물론 산이 주는 소리들, 새소리, 물 흐르는 소리, 매미소리 또 다른 등산객들이 지나가는 소리들은 잘 못 듣지만, 듣는 콘텐츠에 집중도 잘되고 산행도 쉬워진다.

예전부터 즐겨 듣던 프로그램 중에 하나가 NPR의 Hidden Brain이라는 프로그램이다. 미국에서는 NPR(National Public Radio)이 우리나라의 KBS 라디오 방송국쯤 된다. 보통 국가 지원금과 사람들의 지원금으로 운영하는 방송국으로 아무래도 공정성이 있다.


얼마 전에 들은 에피소드 중에 하나가 중독에 관한 것이다. 제목이 Paradox of Pleasure, 즐거움의 역설이라는 제목의 방송이다. 링크를 통해서 직접 들으시거나 아니면 spotify 등의 앱을 통해서 들을 수 있다. 이 방송에서 스탠퍼드대학 교수이면서 정신과 의사로 일하는 Anna Lembke이 본인이 실리콘밸리에서 정신과 상담을 할 때 만난 환자들의 에피소드와 자기 자신의 중독경험에 관한 일화들을 소개한 것이다.


오늘은 좀 심각한 주제 - 정신적인 고통과 그 심각성, 특히 중독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내가 실리콘밸리살면서 알게된 분들의 이야기와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


없어서 못하는 상담

Anna, you are a practicing psychiatrist in the heart of Silicon Valley. I think of California, as the Bay Area, as perhaps the richest part of the richest country in the history of humankind. People would be very happy with so much material success. Is your psychiatric practice empty?

에피소드는 이렇게 시작한다. 실리콘밸리에 그렇게 부자들이 많은데 다들 행복하지 않냐? 정신과 상담하러 오는 사람들이 있기는 있는 거냐? 물론 포드캐스트를 들으면 알겠지만, 의사의 대답은 YES.


나는 사실 정신과 상담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별로 없다. 내 정신이 강하고 튼튼해서가 아니라, 상담 약속을 잡을 수가 없어서 그렇다. 실리콘밸리에서 정신과 상담을 받으려면 최소한 1년은 기다려야 한다. 정말 대기가 길다. 그냥 문자나 간단히 전화통화로 하는 상담(요즘은 이런 간편 상담앱이 많다)이 아닌, 진짜 정신과 의사를 만나려면, 최소한 약물중독이나 술중독정도의 문제가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실리콘밸리에서 의사를 보기가 힘들다고 할 정도.

나도 그래서 몇 번이고 이름을 올리고 기다렸지만, 내 순서가 올 때쯤이면 그냥 취소하고 만 경험이 꽤 있다.


중독의 여러 형태

사람들이 중독이라 하면 약물이나 술 중독만을 주로 생각한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술이나 약물이 아닌 다른 형태의 중독은 거론자체를 잘 안 한다. 그렇지만 나를 포함한 내 주위에 심심치 않게 다른 형태의 중독자들을 많이 만난다.


내 친구 중에 하나는 스포츠 베팅(도박)으로 수천만 원을 잃었다. 그런데 이런 친구한테 감히 '중독'이라는 표현을 못쓴다. 그냥 운이 좋지 않아서 잃었다고 본인도 말하고, 우리도 그렇게 말하고 넘긴다.


우리 회사에서 나랑 7년도 넘게 일한 한 젊은 직원은, 이 직장이 첫 직장이다. 이제 겨우 30이 되었는데 술 마시는 정도가 너무 심해서, 우리 회사 모든 공식 파티에서 초대가 금지되었다. 일도 잘하고 다른 직원들하고 너무 사이가 좋은데, 술만 마셨다 하면 문제가 많이 생겨서 내린 인사과의 조치다. 우리 회사에는 회사 전용 Bar가 있다. 우리 회사가 유별나게 특이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 실리콘밸리에서 점심시간이나 일 끝나고 삼삼오오끼리 술 마시도록 해놓은 회사가 많다. 오히려 이런 분위기를 회사가 권장한다. 술 마시고 함께 일하면서 친해지기도 하고, 일도 더 열심히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끔 이렇게 같이 술을 마시다가 일이 나는 경우가 있다. 지난번에는 그 친구가 술 마시고 계단에서 굴러서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다.


또 다른 친구는 부동산사이트를 하루에 150번도 더 본다. 이것도 중독 중에 하나다. 계속해서 오는 알람 때문에 제대로 일을 할 수가 없지만, 좋은 물건을 놓칠까 봐 꺼놓을 수가 없단다. 이 친구는 새벽에도 일어나서 물건을 조사한다.


또 다른 아는 사람은 쇼핑중독이다. 하루에 쇼핑하는 시간만 4-5시간 정도 된단다. 물건이 오면, 죄책감에 물건을 열어보지도 않고 창고에 넣어두거나, 아니면 남에게 주거나, 액수가 큰 것들은 되판다.

다른 친구 하나는 영화광이다. 좋은 말로 영화광이지, 하루에 영화를 3-4편 정도 본다. 집에서 보지만, 영화를 보는 것뿐이 아니라 영화에 대한 책, 영화 포드캐스트, 영화에 관한 모든 것에 삶의 에너지를 쏟는다. 요즘은 재택근무를 하니까 일하는 시간에 영화를 보는 일이 잦다. 요즘은 일을 그만두고 전문적으로 영화평론을 할까 고민을 한다. 내 생각에는 영화평론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직장을 때려치우고 영화를 보고 싶은 것 같다. 영화평은 한 글자도 적어놓은 게 없는 걸 보면.


한 친구는 주식으로 돈을 좀 벌다가 잃다가를 계속하다가, 이제는 직장생활이 힘들 정도로 주식에만 매달려있다. 하루종일 본인이 산 회사들의 주식을 체크하느라, 점심을 한번 편하게 먹을 수가 없다. 다행히 주식시장은 5시면 끝이라서, 주식이 끝나면 그래도 시간의 여유가 있을 것 같지만, 또 나름 Youtube 등을 보고 공부를 해야 하니 24시간이 모자란다.


내 친구 중에 또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라고 본인을 칭하는 이도 있다.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인스타그램 중독이다. 한시도 핸드폰이 손에서 떨어지는 때가 없다. 어쩌다가 올려놓은 사진에 '좋아요'가 많지 않으면 우울해하고, 심지어는 이것 때문에 향 정신성약도 복용한 지 꽤 되었다. 항상 일등석 타고 여행가고, 비싼 옷만 사고, 명품가방 메고 좋은 음식점에서만 밥 먹는 것처럼 인스타에 보여도, 실제로 그 친구를 알면 정말 우울증이 이런 거구나 생각할 만큼 UP과 DOWN이 심하다. 이런 사람들은 좀 심한 경우지만, SNS, 또는 인터넷(Youtube 등)의 중독도 실제로 심각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나만해도 Youtube 보는 시간이 하루에 5시간을 넘어갈 때도 있다.


중독이란 이런 것이다. 꼭 약이나 술에 빠지는 것뿐이 아니라 뭐에 빠지던, 자신이 그만둘 수 없고, 다른 것을 할 의지나 에너지를 빼앗고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삶을 망치고 있으면, 중독자이다.


왜 실리콘밸리엔 중독자가 많나?

내 생각에도 실리콘밸리에 이런 사람들이 다른 지역보다 많은 것 같다. 비단 여기 있는 사람들이 나이가 어려서 만도 아니다. 여기서는 정신과의사를 만난다고 하는 것이 무슨 감기약 먹는 것처럼 캐주얼하다. 회의 시간 잡을 때 "난 수요일 2시는 안돼. 상담시간이라서."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들도 많고, 듣는 사람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다. 물론 상담을 받거나 적극적으로 치료를 하는 것은 좋고 본받을 일이다. 그런데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다수라는 것은 좀 주목해 볼 만한 일이다.


실리콘밸리가 밖에서 보기에는 어떨지 몰라도, 사실 좀 고립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아무래도 여기에 있는 우리들은 좀 다르다는 우월감들이 알게 모르게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어떤 일이던 자기 합리화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면, "스포츠도박이 나쁘지만, 나는 아직 어리고 앞으로도 성공할 확률이 크니까 괜찮아." 또는 "다들 내가 잘한다 똑똑하다고 하니까 내가 하는 일은 다 잘될 거야." 아니면 "남들은 돈을 잃지만, 내 계산데로라면 나는 이길 수 있어." 이렇게 자기 합리화에 천재들이 되는 것 같다.


물론 이건 주관적인 생각이다. 아마 내가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남들과 공유할 때 주변에서 다들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준 것 같다. 다들 비슷한 문제들이 있으니 이해를 해서 그런지, 아니면 속으로는 욕을 하지만 겉으로는 괜찮다고 얘기해 준 건지는 몰라도, 여기 안에서, 우리들은 서로를 다독거리고, 이해하려 노력하고, 잘해주려고 노력한다. 문제는 이런 것이 중독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하게 한다.


실리콘밸리에선 회사들도 이 문제에 있어서는 관대하다. 직원이 문제가 있어서 치료를 받으려고 한다 하면 많은 회사들이 도와주려고 노력한다. 여기서는 이런 이유 등으로 정신 휴가(Mental Health Leave), 무급이든 유급이든, 가는 사람들이 많다. 정신과 의사가 이 사람은 좀 시간이 필요한 듯하다고 써주면 회사에서는 인정하고 휴가를 허락한다. 물론 이런 일이 인사에 반영될지, 아니면 나중에 있을 정리해고 때 다시 들추어질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최소한 본인이 시간을 가지고 치료를 할 기회는 많다. 근데 계속해서 돌고 있는 실리콘밸리 정리해고가 이런 트렌드에도 반영될지는 모르겠다.


요즘도 사람들이 자주 이런 휴가를 마음껏 쓸까? 해고당할까 봐 걱정돼서 못쓸까? 알 수 없다.

애나 랙키는 도파민네이션이라는 책의 저자이기도 하다.

도파민네이션을 쓴 애나 렘키 박사는 이렇게 다수가 계속해서 중독에 빠지는 이유는 우리가 너무 많은 자극적인 즐거움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열심히 일해야 또는 가끔 있을 수 있던 즐거운 일들이 이제는 너무 가까이 주변에 있다는 것이다. 음식, 엔터테인트먼트, 쇼핑, 도박 모든 것들이 이제 손끝하나에서 24시간 해결된다. 이렇게 쉽게 도파민을 밖에서 받을 수 있으니까 우리 두뇌는 스스로가 도파민을 만드는 능력을 점점 잃어가고, 그래서 음식을 다 먹으면, 쇼핑을 마치면, Youtube가 끝나면 도파민이 완전 바닥상태가 된다. 그럼 우울해지고 괴로워지니까 또다시 먹고, 쇼핑하고, 인터넷을 뒤지는 것이다. 이래서 우리는 중독이라는 사슬에 묶여 계속해서 도파민 HIGH 상태를 유지하려 한다는 것이 박사의 이론이다.


특히 실리콘밸리에서 사람들은 다른 곳보다 풍족한 경제사정, 편리한 앱들 그리고 다양한 서비스들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이래서 우리는 중독에 많이 빠지나 보다.


한국 미국에 많은 술중독

요즘 한국에 있으면서 친구들이 가끔, "나 진짜 알코올중독이야" 하면서 한 잔씩 하는 것을 본다. 한국에서도 술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으셔서 자주 마시기도 하지만, 또 마시는 게 미덕이라 더 권장하는 것 같다. 또 잘 마시면 사람들이 좋아하고 낄 자리도 많다. 실리콘밸리도 마찬가지다. 술을 안 먹으면 어디든 끼기가 어렵다. 특히 젊은 친구들이 많기 때문에 술이 끼지 않는 행사가 없다. 그래서 더 술을 권한다.


한국이나 실리콘밸리처럼 술을 권하는 사회에 살다 보면, 중독과 좀 과하게 마시는 것의 정도차이를 가늠하기 힘들다. 내가 앞서 소개했던 동료는 엄청나게 술을 마시지만, 본인은 문제가 없다고 한다. 물론 젊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본인이 아는 사람이 정말 술중독자인데, 그 사람에 비하면 자기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비교가 사실은 문제를 더 크게 만든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뭐든 너무 엄청난 양을 소비하는 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본인이 끊기 힘들고, 또 끊을 줄 모르면 전문의의 도움을 받으라고 권한다. 꼭 술중독자랑 비교해서 나는 아직은 아니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이야기이다.

난 손 떨리기 시작하면 치료받을 거야

내 친구가 한잔 하면서 그러더라. 무식한 놈. 그냥 상담이라도 한번 받아봐라. 내가 그랬다.


대문은 Photo by Jon Tys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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