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가 독차지한 전 세계의 인재들
얼마 전 실리콘밸리 큰 회사에서 안전보안 엔지니어로 일하는 친구가 최근 면접에서 미국 연방 정보국에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을 지원자로 만났단다. 지원자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정신줄을 놓고 듣다가 질문은 하나도 못하고 나왔다면서 회사에 전직 연방 정부 직원 출신이 꽤 있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이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자연히 내가 살다 온 한국과 캐나다 이야기가 나왔고 그러다가 각 나라에서의 "공무원"이란 직업에 관련된 사회에서의 관점등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내가 한국에서 학교 다닐 때 제일 좋아했던 티브이쇼는 바로 X-File이었다. 또 90년대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영화 '양들의 침묵'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다. 생각해 보니 예전에는 정부 요원들에 관한 영화나 쇼가 많았던 것 같다. FBI 요원들 뿐만이 아니라 경찰관, 미국 정보 수집 요원들에 이르기까지 정부 요원들이 언론에 자주 미화되어 나왔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NASA나 백악관을 소재로 한 여러 방송물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또 이런 정부 기관에서 일하는 것이 멋지고 대단해 보였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나도 이런 미국의 연방 정부 요원들이 멋지게 보였는데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더 대단해 보였을까?
미국에서는 대학 졸업시기가 가까워오면 여러 회사나 정부 기관들이 새로운 인재 채용을 위해 취업 박람회등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한다. 예전에는 이런 미국의 정부 기관들이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지만 요즘 듣기로는 학생들이 실리콘밸리 회사들을 더 선호하는 편이라고 한다. 특히 기술계 쪽, IT 분야에 있어서는 그 차이가 뚜렷이 나타난다고 한다. 선호도가 바뀐 이유로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실리콘밸리의 빠르고 간편한 채용 절차와 높은 인금이 주요 요인인 듯하다.
정부 기관이 제시하는 급여는 실리콘밸리의 큰 회사에 비해 턱없이 적다. 물론 이런 공무원직은 월급 말고도 다른 혜택이 많다. 퇴직금, 연금 제도, 주택이나 교육 관련 보조비등 기관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실리콘밸리 회사에서는 이런 혜택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에게 이런 혜택들이 당장 주머니에 들어오는 큰 현금보다는 끌리지 않는 모양이다. 참고로 비교를 위해 FBI 연봉을 가져왔다. 특히 실리콘밸리 회사들에 비하면 컴퓨터 관련 직종은 터무니없이 적은 편이다.
이런 이유들로 미국 정부 기관들은 지금 젊은 인재를 뽑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나마 작년과 올해 계속되는 실리콘밸리의 채용 부진으로 정부 쪽으로 눈을 돌리는 젊은이들이 약간 늘었다고는 한다. 또 연방 정부도 젊은이들 유치를 위해 최근 월급을 많이 상향조정했다.
한국처럼 공무원을 선호하고 공무원이 대접받는 사회와 비교해서 미국처럼 사기업을 더 선호하는 사회의 앞날은 어떻게 다른가? 물론 똑똑한 사람들이 정부 조직에 많다고 나라가 잘 돌아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 이렇게 강력한 미국의 실리콘밸리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똑똑한 기술/IT 인재들을 너무 많이 소비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런 현상은 정부뿐이 아니라 학술계에도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번에 소개한 2023년을 빛낸 과학분야에서도 언급했지만 미국에서도 기술/과학 쪽 박사 학위를 마친 PostDoc들은 요즘 학술계에 계속 남기 보다는 역시 기업들로 발길을 돌리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고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야 이런 개인적인 결정이 당연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또 사회의 일원으로서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실리콘밸리가 있기 전에 한참 동안 전 세계에서 똑똑하고 잘 나가는 사람들이 월스트리트로 몰려 갔었다. 그래서 결과는 어떤가? 지금의 월스트리트는 세계의 부를 좌지우지할 뿐만 아니라 부의 불평등을 더욱더 조장하고 사회에 여러 가지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그 길을 실리콘밸리가 따라 걷고 있다.
사기업들을 견제하는 국가의 정책을 쓰거나 학술계 여러 분야에서 의미 있는 연구를 해야 할 사람들이 실리콘밸리로 몰려와서 인간에게 득이 되기보다는 해가 되는 앱이나 소비성의 상품들을 만드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된다. 여기서 우리가 떠받드는 회사들이 만들어내는 앱이나 상품들이 실제로 우리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게 아니라 몇몇 특정인들만 더 큰 부자로 만드는데 혈안이 돼있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
얼마 전 시카고 대학과 연게한 시카고 범죄 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충분히 큰 회사에서 엄청난 연봉을 받을 수도 있는 사람이 범죄 데이터를 연구하는 일을 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무엇인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겠다는 의지 하나로 일을 시작했다고 그 이유를 밝히더라. 이런 사람들이 있어서 우리에게 아직도 희망이 있다.
대문은 Photo by Marija Zaric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