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그런 날이 있다

아무 일도 없는 날의 일기

by 글쓰는 백구
오늘은 아무 일도 없었어


아마도 그런 날이 있다. 내 마음이 요동치는데 원인도 없고 해결방법도 없는 이상한 날. 일이 힘들었거나 사람들이랑 대화가 불편했거나 밥을 잘못 먹는 것도 아닌데 머리가 복잡한 날. 누군가 말을 걸었는데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나는 날.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하루인데 뭔가 낯선 날. 매일 먹던 라면 맛이 다르게 느껴지는 날. 졸린데 자고 싶지 않고 배고픈데 아무것도 먹기 싫은 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싫고 뭐든 하고 싶지도 않은 날. 그냥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날. 그냥 그런 날.


아무 일도 없는 날의 일기다. 아무런 일도 없어서 감정만 정리했던 날이다. 새삼스럽게 하루가 낯설었던 그날은 일기 쓰기가 쉬웠다. 대단한 사람과 만나던 날에는 그 사람을 만났다는 것 외에는 일기에 적을 내용이 없었는데 내 감정이 복잡한 날에는 감각적으로 써내려갔다. 그리고 일기를 쓰는 순간 편안함을 느꼈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아무 것도 아닌 날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더라도 내 삶의 시냇물은 흘러내려간다. 열심히 내려가는 사람보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의 머릿속이 더 복잡한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일기는 그런 나에게 그래도 괜찮다고 토닥여준다. 내가 적은 일기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따뜻하게 손을 어루만진다. 아마도 내 감정을 일기가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무 일도 없던 날 고민이 생긴다면 그날 적어 내려간 일기는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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