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피
함피를 떠나려고 호스펫에 도착하니 그 일이 생각났다. 지난 4년 전, 함피라는 시골 동네로 들어가는 입구 시내 호스펫에서 심카드를 사려고 걸어 다니는데 어떤 아이들이 길을 막고 섰다. 사진 하나만 찍어달라고 징징대는 아이들. 찍은 사진을 보려고 하지도 않고 종이로 뽑아달라는 것도 아니지만 그저 사진을 찍고 이름을 물어보고 악수를 하는 것으로 그들은 즐거움을 느끼나 보다.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이름을 교환하고 이야기를 잇다가, 옆을 보았다.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소녀가 물끄러미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줍은 듯 남자아이들 그룹에는 다가서지 못한 채.
"사진 찍어 줄까?"
소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카메라를 들었다.
사진을 찍으니 아이는 미션을 해결했다는 듯 엷은 미소를 뗬다. 그리고는 내 팔을 잡아당겨 어디론가 나를 인도했다. 어디로 가는 걸까. 시내 큰 도로 사이에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 골목을 꺾고 돌아 아이를 따라 도착한 것은 그 아이의 집이었다. 곧 아이 어머니가 집 밖으로 나왔고, 아이는 어머니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소란스레 전했다. 아마 큰 길가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하는가 보다. 어머니는 나와 아이를 번갈아 쳐다보며 미소를 짓다가 마루 한편에 앉아줄 것을 부탁했고, 양반다리를 하고 앉으니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곧 뿌리와 짜빠티 같은 먹거리를 한 접시에 담아내어 오셨다.
아, 고등학교 때 한 친구 집에 간 적이 있었다. 부반장이었고, 성격이 무척 쾌활했다. 그는 어떤 하굣길에 나를 포함한 친한 친구들 서너 명을 본인의 집으로 초대했다. 우리는 할 것도 없고 해서 주저 없이 그의 집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도착해서도 많이 걸어가 찾은 그 집은 여기가 원래부터 집이었나 생각할 만큼 허름했고 냄새도 났다. 집에는 어머니가 계셨다. 우리들끼리 시답잖은 이야기를 좀 나누고 있자니 어머니가 몇 가지 음식을 내어오셨다. 컵라면 두 개, 과자, 그리고 떡.
도저히 조합이 되지 않는 간식이었지만(당시에 컵라면은 끼니를 때우는 용도라는 생각에 간식으로 먹는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밝게 권하는 친구의 권유에 음식을 입에 넣었다. 오랫동안 오물거리고 씹으면서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진지하게 대접받고 있다고. 집에 있는 갖가지 음식들을 꺼내 최선을 다해서 우리를 대접해주고 있구나. 마음이 따뜻했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뿌리와 짜파티가 담긴 접시를 보며 같은 감정을 느꼈다. 그 친구 어머니의 느낌이다. 그때 감정이 다시 떠올랐다. 왼손을 내밀어 음식을 집으려다, 인도 사람들은 음식 먹을 때 오른손을 쓰니 오해를 사거나 불편하게 만들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른손으로 짜파티를 서툴게 찢어 입에 구겨 넣으며 최대한 밝은 미소와 함께 맛있다는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대답을 듣는 둥 마는 둥 밖으로 나가더니, 아이의 할머니를, 친척을, 그리고 이웃일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하나둘씩 데려와 인사시켰다.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따뜻하고 유쾌한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