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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Nov 11. 2022

600그람의 작은 생명체가 나에게 말한다 ‘엄마’

24주, 조산기로 입원하다

유난히 회사 일이 잘 안 풀리는 날이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그녀는 여전히 메일로 , 전화로, 문자로 나를 들들 볶기 시작했고 언제나처럼 속으로 욕을 한 바가지 하며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키보드를 두드리던 나는, 오늘따라 유난히 침대와 하나가 되어 움직일 수 없는 몸상태가 조금씩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임신 24주 차, 코로나 덕분에 재택근무 중이었지만 회사 스트레스는 재택과 현장 출근을 구분하지 못하는 듯했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된다고 심호흡을 해보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돼를 생각하며 스트레스를 더 받고 있는 나를 보며 또 스트레스를 받는 무한 굴레에 빠져들고 있었다.


이상하게 오늘은 쾌변을 하네 하며 화장실을 4번이나 다녀온 나는, 퇴근 무렵인 5시부터 약간 싸하게 배가 아파옴을 느낄 수 있었고 생리통을 시작하기 전 약간 우리하게 아랫배가 아픈 기분 나쁜 통증 그 느낌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디가 엄청 아픈 것은 아니지만 또 안 아픈 것은 아닌.. 아파 죽겠어서 병원에 당장 갈 정도는 아니지만 약간 끙끙끙 앓게 되는 수준이었다. 하필 오늘은 수요일이라서 내일은 주치의 휴진 날. 저녁 때 분만실로라도 병원을 다녀올까 말까를 고민하다 보니 고통을 잘 참는 편인 내가 이런 고민을 할 정도면 사실은 꽤 아픈 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퇴근한 남편에게 나는 배가 신경 쓰이게 아프고 내 성격상 이 상태로 편하게 자긴 글렀으니 차라리 빨리 병원에 다녀오자고 용기 내어 말을 했다. 별 것 아니라는 말을 들어 졸지에 양치기 소년이 되었던 적도 있었으나, 실제로 수축이 와서 하루 입원했던 적도 있으니 확률은 50:50 아닌가. 이번에도 그냥 괜찮을 수도 혹은 아닐 수도 있다.


정규 진료는 끝났으므로, 분만실에 전화하여 응급으로 방문을 했다. 몇 주 전에도 경부 길이가 살짝 짧았다가 다시 검사했을 때 고무줄처럼 늘어난 적이 있었어서 걱정 반, 희망 반으로 내원을 했고 다행히 주치의 선생님이 당직의 셔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어….”

초음파를 유심히 보던 주치의가 외마디 감탄사와 함께 갑자기 내진을 해보겠다고 했다. 불안하다. 24주 밖에 안된 나에게 왜 자꾸 내진을 하시는지.. 얼굴색이 변한 주치의는 자궁 입구가 1센티 정도 열렸고 경부 길이가 2.5센티 정도 된다며 이 정도면 대학병원에 가야 하고 입원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가까운 2차 종합병원에 소견서를 써줄 테니 지금 응급실로 가라고 했다.


“응급실?”

내가 지금 그렇게 응급한 상태인가?

사실 배가 싸한 것 말고는 아무렇지 않은데?

불안함이 급습했다. 그리고 용기 내어 물었다. 그렇게 응급한 상황이라면 근처 병원이 아니라 빅 3 병원 같은 더 큰 병원에 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그랬더니 주치의는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지금 주수에서 할 수 있는 치료는 비슷하고

660 그람으로 지금 태어나면 살기는 어렵다고 봐야 한다 “


어차피 라니..

하나의 생명을 두고 어차피라는 단어는 사용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의사들이 보수적으로 말을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최악의 상황을 얘기하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 나에게 이렇게까지 잔인하게 ‘어차피 살기는 어렵다’라고 꼭 말했어야 하는가. 그러더니 이제 외래도 거기 가서 보라고 하며 아주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나를 보냈다. 마치 골칫덩어리 환자를 떠넘기듯이. 다시는 오지 말라는 것처럼. 나는 그때 그 주치의의 말과 행동이 가슴속에 한 장의 사진으로 박제되어 있다. 그때 그 분만실에서 나에게 인사를 하던 그 모습. 너무나 차갑고 서운을 넘어선 배신감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나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와 그 길로 소견서를 가지고 근처 2차 병원 응급실에 방문했다. 하필 코로나 정점의 시기라서 응급실은 119 대원들과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열체크 후에 접수가 가능했는데 갑자기 내 체온이 37도가 넘게 체크가 되었다. 남편도 나도 당황했지만 또또또 재봐도 마찬가지. 아마 임산부는 기초체온이 높기도 하고 너무 놀라고 신경 써서 그런 것이 틀림없었다. 남편은 방금 여성병원 분만실에서도 열을 쟀고 그때 정상이었으니 진료를 보고 소견서를 써오지 않았겠냐며 강하게 항의하여 겨우겨우 응급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미 응급실에 들어온 나의 정신은 혼미해져 있었고, 2차 병원 분만실로 또 이동하여 이것저것 검사를 한다고 했다. 분만실은 나 혼자 들어갈 수 있어서 남편과 작별인사를 하고 쓸쓸히 들어가게 되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이후 3개월 동안 남편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될 줄은.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한참 열심히 보던 나는, 초음파를 봐주는 젊은 여자 선생님이 추민하 선생 같은 전공의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이미 새벽 3시가 된 시각이라 교수가 있을 리는 만무하고 아마 당직 순번인 전공의겠지.  전공의는 제법 친절하게 초음파 상태를 설명해주었다. 제일 처음 꺼낸말은


“ 태동이 엄청 활발하네요”


였다. 그제야 나는 정신이 돌아오고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러나 바로 이어지는 말에서 또 숨이 턱 막히게 되었으니


“그런데 경부 길이가 너무 짧고 지금 수축이 주기적으로 잡혀요. 1.4센티 밖에 안되고 수축이 계속 있네요. 지금 배 아프죠?”


그 말을 들으니 진짜 아픈 것 같았다. 내가 너무 둔하고 무딘 것인가. 대수롭지 않을 정도였다. 집에 있었다면 그냥 왜 이러지 신경 쓰이네 하며 잤을 수도 있을 정도. 그런데 3분 간격으로 진통이 잡힌다고 했다. 이렇게 짧은 간격의 진통은 출산 때나 잡히는 것인데. 어쨌든 이 수축을 멈추기 위해 라보파를 투여한다고 했다. 간호사 선생님은 입원에 대해 안내해 주었고 코로나로 인해 면회가 전면 금지되어 남편은 간단한 물품 전달만 가능하다고 했다. 그날 내가 잠을 잘 잔 건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약을 맞고 수축이 좀 줄어 조금은 눈을 붙인 것도 같다. 아침이 되니 회진 시간이 되어 드디어 교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


전 날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이 병원 산부인과 선생님 중 유명한 분이 누구인가 검색을 했고, 다행히 여성병원 주치의가 그 선생님에게 전화를 해 두어 연결시켜 준 것을 알게 되었다. 너무나 미웠지만 이거 하나는 참 고맙다 싶었다.


아침이 되어 교수님이 오셔서

“괜찮아요?”라고 물으시더니 경부가 짧고 수축이 잡혀서 약을 맞아야 된다고, 입원이 길어질 수도 있다고 하셨고 저기 고위험 산모실 가면 비슷한 환자들 엄청 많아요 하시며 나를 위로하셨다. 그리고는


“24주에 태어나도 살 수야 있지만, 우리 조금만 더 버텨봅시다. 최소 28주 그 후에는 30주, 32주 이렇게 버텨나가는 거고 생존율은 확확 올라가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그 순간 병을 낫게 하는 것은 의사의 의술 이전에 의사의 ‘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같은 상황에 너무나 다른 의사의 ‘말’ 사람을 살리고도 죽이고도 남을 말이다.


아직 세포 덩어리에 지나지 않을 600그람 쪼꼬미는 가나에게 ‘엄마 나는 잘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이 생명체가 하나의 작은 사람이 될 때까지 기를 쓰고 뱃속에서 키워야 한다. 첫째 형처럼 그렇게 손도 쓰지 못하고 갑자기 아 아이까지 하늘나라로 보낼 수는 없다. 그럼 나는 남은 인생을 살아가지 못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이 600그람 아이와 나와의 동행이 조금은 이르게, 남들과 다르게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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