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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을 나는 백구 Nov 17. 2024

선택적 교류

진짜 친구만 남겨놓기

  1년에 2번의 초상을 치렀다. 한 번은 5월에 어머님을, 또 한 번은 10월 말에 장인어른을 하나님 곁으로 보내드렸다. 당시 허망함과 슬픔은 지금까지도 가슴 한편에 남아 가끔 숨 쉬는 것처럼 내 가슴에서 요동칠 때가 있었다.

  슬플 때 나를 위로해 주는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한 친구가 있었다. 중학교 교사 발령을 함께 받았고, 내가 학원에 나온 후 그 친구는 공립 중학교로 옮겨 근무를 하게 되었고, 지금은 부장 교사를 하고 있다. 그 친구의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 퇴임을 하셨다. 그 친구는 기가 막히게 다양한 정보를 얻고, 활용할 줄 알았다. 중국 상해에 국제 학교에서 수학 교사로 근무하면서 아이들을 그곳에서 키우고 홍콩으로 유학까지 보냈으니 능력이 출중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 친구는 몸이 좀 둔하다. 살이 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친구들끼리 모여 회식을 할 때면 그 식탐이란 놈이 그 친구의 눈을 가리곤 했다. 회를 먹을 때는 젓가락을 회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밀어 넣어 기어코 5점 이상을 잡아채고는 간장 또는 초장도 제대로 찍지 않고 그대로 입에 넣곤 했다. 소고기라도 먹을 때면 소고기는 익지 않아야 제 맛이라면서 기껏 여기저기 뒤집고 있는 친구들 앞의 고기까지 한 껏 입속에 밀어 넣고 오물거리기 일쑤였다. 그 친구가 상해 근무 때 필자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물론 부의금은 도착하지 않았다. 그리고 귀국 후 그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누구보다 빨리 그 친구를 찾아가 조문하고 부조했던 기억이 있다. 함께 교장으로 근무하던 선배의 부탁까지 받아서 봉투를 전달했던 기억까지 있다. 당시는 카톡이나 상조회사의 문자가 보편화되지 않았을 때이다. 그런데 지난번 어머니 상이나 장인어른 상을 당했을 때 그리 문자를 보내도 감감무소식이다. 아마 같은 직장에 근무하지 않고, 동기들 모임에 자주 참석하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오늘 아침 문득 그 친구가 회식 자리에서 회를 입 속에 밀어 넣던 모습이 떠오른 건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 본다.

  어려서부터 함께 자라고 내가 가장 힘들 때마다 힘이 되어 준 친구도 있다. 또 아버지 상이나, 어머니 상 중에 생각하지도 못했던 분들의 위로를 받을 때가 있다. 예전 근무지를 떠난 지 어언 20년이 되어가는데도 한결같이 조화를 보내는 고마운 분이 계신다. 배명고등학교 현재 이사장님과 학원장님이다. 두 분은 세 번의 초상에 한결같이 조화를 보내 주셨다. 퇴직한 지 오랜 직원까지 챙겨주는 모습이 고마울 따름이다. 

  엊그제 배명고등학교에서 근무할 때 친하게 지내던 후배 교사(지금은 어엿한 부장교사다.) 부친상을 듣게 되었다. 가족장으로 조촐하게 지낸다는 말을 듣고, 부랴부랴 부의금을 보냈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조화를 보내 준 옛 상사들의 고마움이 떠올라 바로 인터넷으로 조화를 주문했다. 후배에게 바로 카톡이 왔다.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로써 나 또한 누군가에게 진심 어린 위로를 할 줄 아는 선배로 남게 된 것이다. 

  물론 부의금의 액수나 조화의 유무가 상대방에 대한 애정이나 위로의 크기와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바쁘신데도 잠깐 와 조문하고 가는 고마운 분들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언급했던 볼이 이 터지도록 고기를 씹던 친구의 모습 자꾸 떠오른다. 

  이젠 선택적 교류를 해야 할 나이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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