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의 법칙, 조급함은 교육의 적이다
어제 학교 강당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과거 근무했던 고등학교 학부모 설명회. 기숙사인 '명정관' 학생 모집과 '미래인재반' 특강 프로그램을 안내하는 자리였다.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잡았을 때, 나는 잠시 숨을 골라야 했다. 역대급으로 많은 학부모님이 참석해 강당을 가득 메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위기는 뜨거웠다. 기숙사 지원율은 최고치를 기록했고, 원래 한 반이었던 '미래인재반'은 지원자가 넘쳐 두 반으로 늘리기로 결정됐다. 학교 측에서도 고무적인 반응을 보였다.
내가 기획하고 운영해 온 미래인재 특강 프로그램이 3년 차에 접어든 올해, 비로소 제대로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화려한 성과 뒤에는 '3년'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처음 이 프로그램을 시작했을 때부터 반응이 폭발적이었던 건 아니다. 시스템을 잡고, 좋은 외부 강사를 섭외하고, 아이들의 변화를 끌어내기까지 시행착오도 많았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꾸준히 밀고 나갔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올해부터 결과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문득, 나의 지난날 오답노트를 펼쳐 본다. 그곳엔 '조급함'이라는 단어가 붉은색으로 적혀 있다.
과거의 나는 교육을 마치 '자판기'나 '컵라면'처럼 생각했다. 동전을 넣으면 바로 음료수가 나와야 하고, 뜨거운 물을 부으면 3분 안에 익어야 한다고 믿었다.
"이번 중간고사 때 바로 성적 올려야 해." "한 달 가르쳤는데 왜 등급이 안 바뀌지?"
당장 눈앞의 내신 점수, 당장 다가올 모의고사 등급. 그 즉각적인 결과에만 매달렸다. 아이들을 닦달하고, 요령과 스킬을 주입했다. 그렇게 하면 반짝 점수는 올랐을지 몰라도, 결국엔 탈이 났다. 기초가 부실한 성적은 모래성처럼 무너졌고, 아이들은 공부에 흥미를 잃었다.
'모소 대나무' 이야기를 아는가? 이 대나무는 씨를 뿌리고 4년 동안은 아무리 물을 주고 가꾸어도 죽순이 3cm밖에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겉으로 보기엔 성장이 멈춘 것 같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대나무는 땅속 깊숙이 수백 미터의 뿌리를 뻗고 있다. 그리고 5년째가 되는 해, 하루에 30cm씩 무섭게 자라나 순식간에 울창한 숲을 이룬다.
교육도 이와 같다. 가르치는 일은 아이라는 땅에 뿌리를 내리게 하는 작업이다. 당장 싹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흙을 파헤치거나 물을 주지 않으면, 그 나무는 죽고 만다.
내가 운영한 '미래인재반' 프로그램도 그랬다. 당장 성적이 오르지 않아도, 아이들의 시야가 넓어지고 사고력이 깊어지는 '뿌리 내림'의 시간을 3년 간 기다려주었기에 지금의 울창한 숲이 가능했다.
이제 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결과만 중시하던 시대에서 과정을 평가하는 시대로, 정답을 맞히는 능력보다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을 보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조급함은 더더욱 치명적인 오답이다. 당장의 암기 실력은 한 달 만에 만들 수 있어도, 비판적 사고력과 문해력은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적어도 3년,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꾸준히 읽고 쓰고 생각하는 훈련이 쌓여야 비로소 힘을 발휘한다.
설명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앞으로도 아이들을 가르칠 때 3년의 호흡을 잊지 말자고.
"선생님, 저 열심히 했는데 왜 성적이 안 오르죠?"라고 묻는 아이에게, "우리 애는 왜 아직도 제자리걸음일까요?"
라고 불안해하는 학부모님에게, 이제는 확신을 가지고 말해줄 수 있다.
"지금은 뿌리를 내리는 중입니다. 조금만 더 믿고 기다려주세요. 교육은 3년 농사입니다."
당장의 열매를 보여주기 위해 가지를 비트는 대신, 묵묵히 뿌리에 물을 주는 선생님. 그것이 내가 열한 번째 오답노트에서 찾은, 느리지만 확실한 정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