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오답노트 #10]

옳은 길이 늘 맞는 길은 아니다

by 하늘을 나는 백구


"너 왜 문제를 그렇게 푸니? 그건 비효율적이잖아.
자, 선생님이 알려준 대로 해봐. 이게 정석이야."


수업 시간, 학생들의 문제 풀이 과정을 지켜보다 보면 속이 답답해질 때가 많다. 지문의 핵심은 놓치고 엉뚱한 단어에 밑줄을 긋거나, 선지부터 읽고 지문을 끼워 맞추는 소위 '야매' 방식으로 푸는 아이들. 나는 그들의 손에서 펜을 뺏어 들고 '옳은 방법'을 시연한다.


나의 논리는 완벽하고, 방법은 검증되었다. 그러니 이대로만 따라 하면 아이들의 성적은 당연히 올라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늘 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간다.


옳은 방법을 줘도 받아먹지 못하는 이유


아이들에게 '정답'을 쥐여줘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처음엔 아이들의 노력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곰곰이 들여다보니 문제는 '습관'과 '믿음'에 있었다.


잘못된 자세로 수영을 하던 사람이 국가대표 코치에게 교정을 받는다고 해서 당장 기록이 단축될까? 아니다. 오히려 익숙했던 몸의 리듬이 깨지면서 일시적으로 기록은 더 나빠진다. 물을 먹고 허우적거린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자신이 수년간 만들어온 '익숙한(그러나 잘못된) 습관'이 있다. 선생님이 알려준 '옳은 방법'은 낯설고 불편하다. 그 불편함을 견디고 체화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당장 문제가 안 풀리고 점수가 떨어지니 아이들은 불안해한다.


"쌤 방법대로 하니까 더 안 읽혀요."


믿음이 부족하고 마음이 급한 아이들은 결국 며칠 못 가 다시 예전의 그 '편한 나쁜 습관'으로 돌아가 버린다.


성공 신화가 모두에게 통하지 않는 것처럼


세상에는 수많은 성공 신화가 있다.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찬물로 샤워하고 이렇게 사업을 했더니 대박이 났다." 이 말이 사실이라 한들, 세상 모든 사람이 새벽 4시에 일어나면 성공할까? 누군가에게는 그 방식이 건강을 해치는 독이 될 수도 있다.


공부법도 그렇다. 내가 가르치는 방식이 논리적으로 가장 완벽하고 '옳은' 길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눈앞에 있는 저 아이에게 딱 '맞는' 길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아이마다 성향이 다르고, 호흡이 다르고, 견딜 수 있는 인내심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강요가 아닌 설득의 기술


열 번째 오답노트를 적으며 나는 '강요'를 지우고 '제안'을 써넣는다.

"이게 무조건 옳으니까 따라 해!"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하수다. 그것은 마치 내 발에 딱 맞는 최고급 가죽 구두를 아이에게 신기며 "이게 비싼 거니까 너한테도 편할 거야"라고 우기는 것과 같다. 아이는 발이 아파 걷지도 못하는데 말이다.


이제는 이렇게 말하려 노력한다.

"얘들아, 세상에 공부법은 여러 가지가 있어. 네가 편한 방식대로 해도 돼. 하지만 선생님이 해보니 이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더라. 일단 한번 시도해 볼래? 해보고 영 불편하면 너에게 맞게 조금씩 고쳐가 보자."


이것은 타협이 아니라 '설득'이다. 내가 가진 정답이 절대적인 진리가 아님을 인정하는 것.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이 아이에게는 틀린 옷일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


교사는 '옳은 길'을 걷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가 넘어지지 않고 걸을 수 있는 '맞는 길'을 함께 찾아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 깨달음이 오늘 나의 수업을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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