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고 불리는 사람

과거에 남아 있든, 현재를 살아가든

by 하늘을 나는 백구

사실 그로서는 현재 이처럼 막무가내인 공간에서 직장생활을 한다는 것에 무척 회의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곳에 오기 전에 보습학원 원장을 했었고, 그전에는 종합학원 3군데 총원장을 했었고, 그전에는 방송 강의와 수능출제업무까지 했었고, 그전에는 외고교사에, 그전에는 일반고 교사에, 그전에는......


그 일이 있기 전에 그로서는 지금의 모습을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10년 전 딱 이맘때였다. 그는 친구 K와 함께 온라인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동시에 단과와 종합학원을 운영하는 사업에 뛰어들었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그가 사업에 투자한 것은 아니었지만, K는 그에게 일정 지분만큼 마음의 빚을 지니고 있음에 분명하다는 식으로 그가 일방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실 K가 이만큼 큰 사업을 하게 된 데에는 그의 힘이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K는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잠실의 작은 보습학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면서 박카스 한 박스를 들고 그가 근무하던 학교를 찾아왔다. 벌써 25년 전 일이었다. 그때 그는 친구끼리 뭘 이런 걸 다 사 오냐면서 그와 소소한 일상을 주고받고 헤어진 기억이 전부였다. 그 후로 몇 년이 지나고 그가 방송 강의로 명성을 쌓고 있을 때 선배인 H가 그와 K의 만남을 주선해 주었다. 선배는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다가 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공교육에서,
그리고 너는 사교육에서
최고의 강사가 되면 좋겠어.

이 말이 그에게는 무척 감동적인 것으로 다가왔다. 최고란 말이 주는 달콤함도 그렇지만 공교육과 사교육을 아울러 최고라니 그렇다면 부와 명예를 동시에 같이 나눌 수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날 이후 그는 K에게 모의고사 문제를 만들어 주었다. 당시 학원의 메카는 대치동이 아니라 노량진이었다. 노량진에서 단과 강의를 열면 수많은 학생들이 줄을 섰다가 강의 등록을 한다. 인기 있는 강사라면 제일 먼저 마감이 되는 강좌가 생긴다. 접수처에서는 커다란 시간표가 있는 전단 홍보지에 '마감'이라는 도장을 찍어준다. 그 강의는 가장 큰 강의실 배정을 받게 된다. 그렇게 되면 학생들은 자연 마감 강의로 쏠리게 된다. 결국 모든 강의를 마감하게 되면 전타임 마감 강사가 된다.

커다란 홍보 전단지에 제일 먼저 '마감' 도장을 찍는다는 의미에서
'1타'라는 말이 생겨났다.


대부분 마감 강사들이 참고서나 문제집을 오려서 프린트를 만들어 쓰던 시절인데 그의 도움으로 K는 버젓이 자신의 이름을 단 문제집을 가지게 된 것이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 모의고사 문제집으로 수업을 할 때가 수능 모의평가가 시작될 때인데 지문과 문항 중 유사한 사례가 속출했다는 점이다. 노량진에서는 K가 문제를 유출한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모의평가만 시행되면 터져 나왔다. 결국 K는 다음 해 유명 온라인 사이트로 이적을 하게 되었으며, 다시 1년 만에 전국 최고 강사, 이른바 1타 강사의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물론 온라인 사업을 위한 교재, 조교, 답변 조교 등을 총괄하여 구성해 준 것도 그였다.


이런 이유로 그는 K가 늘 마음에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K는 유명 학원을 인수하고 온라인 사업에 뛰어들면서 그와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그가 K와 벌인 최초의 실수였다.


<계속> 본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 등은 모두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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