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야 Aug 29. 2022

18 하기 싫은 건 있지만 하고 싶은 건 없다




이제 그런 나이가 되었다. 누군가는 일을 시작하고, 누군가는 결혼을 고민하지만, 누군가는 대학도 졸업하지 않은. 내 친구는 지금껏 추구해왔던 길을 버릴지 고민 중이고, 나는 또 다른 안전한 선택을 하기로 결심한다. 누구도 아무것도 알지 못해서 섣불리 조언조차 해 줄 수 없는 그런 나이가 되고 말았다는 걸 자주 깨닫는다.




속초에서 올라오던 길이었다. 친구의 연락을 받은 건. 나는 집까지 30분을 남겨두고 그대로 지하철에서 내려버렸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고속도로가 너무 막혀 예상 시간의 두 배가 걸린 고속버스를 탄 뒤라서 제정신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전날 마신 술과 아침부터 들이부은 커피에 맛이 간 몸 때문이었을지도 모르지. 그렇게 의리가 있다거나 연락을 자주 하는 사람은 못되지만, 왠지 먼저 온 연락을 거절할 수 없었다. 아마 주저하는 말투에서 느껴지는 구조 신호 때문이었을 것이다. 


친구는 부모님의 권유로 원치 않는 학교의 원치 않는 학과를 다녔다. 안정적인 직업이니 그 길로 가야 한다는 입김이 작용한 결과, 친구는 고시 생활의 후반이 된 지금 갑자기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정말 이게 하기 싫구나. 사실 그녀의 친구라면 전부 아는 사실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친구의 대학 선택에 의문을 가졌던 건 나뿐만이 아니었으니까. 대학을 다니는 내내 별로 정을 붙이지 못하더니, 결국 이렇게 되었다. 이것만은 하고 싶지 않지만, 대안으로 하고 싶은 건 구체적으로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다. 친구는 지나치게 성실해서 싫은 것조차도 더 이상 참지 못할 때까지 하는 사람이었다. 문제는 이렇게 더 이상 견디지 못할 것 같은 순간이 오고 만다는 것이다.


사실 실패를 해 본 적이 없는 건 아닌가, 그리고 이 순간이 내 실패의 시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친구는 공감했다. 친구는 고등학교 3년 내내 우수한 성적을 받아 좋은 대학에 갔다. 원하는 곳은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이 진로로 꿈꾸는 안정적인 직업을 위해서였다. 좋아하는 것인지와 상관없이, 목표에 도달했다는 사실만으로 그녀는 성공한 것이 되었다. 원하는 것을 얻은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를 얻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막연하게 관심이 없던 분야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만은 싫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그 분야의 장점이 누군가에겐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건 그 상태에서 안주해도 된다는 말이었지만 그걸 오래 한다는 상상을 하면 숨이 막힌다고, 그렇게 말했다. 당장 도망치고 싶지만 도망칠 구석이 없어진 친구는 그렇게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아 나와 만났다.


나는 고3 말기, 가장 중요한 시기에 그랬다. 그림이고 입시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아프다는 핑계로 수업을 자주 빠지기 시작했다. 어떤 겨울날에는 그렇게 아프다는 핑계로 늦게 수업에 가다 빙판길에 미끄러지고 말았다. 그대로 뒤로 넘어져 사람 없는 길에 한참을 누워있었다. 춥고 아팠지만, 일어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일어나면 수업에 가야 했고, 나는 어떻게든 시간을 버리고 싶었다. 지나가던 인심 좋은 행인이 일으켜 세워주어 결국 수업을 들으러 갔지만. 미끄러져 넘어져도 일어나기 싫은 정도로, 나는 대학이고 뭐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였다. 친구는 7월까지 5시간씩 자며 14시간 이상을 공부할 정도로 열심히 였다. 원하는 길이 아님을 알면서도 그렇게 한 건 지금까지의 시간과 노력 때문이었다. 이제는 선택지가 없다고, 지금은 되돌리기에 너무 늦었다고, 내가 고시생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실패하기 부끄럽다고. 여러 이유로 하기 싫은 일을 하다 보면 미끄러져도 일어나고 싶지 않아지고 만다.


이십 대 중반이면 벌써 늦어버렸다는 생각이 들게 된 건 왜일까. 세상의 젊고 성공한 자들 때문인가? 아니면 이쯤 되면 무언가가 정해져 있을 거라고 믿었던 고교 시절의 나 때문인가? 이렇게 지나가 버린 지난 5년처럼 앞으로의 5년도 지나간다면 30대의 나도 아무 답을 해줄 수 없는 것은 매한가지일 것이다. 내가 원하는 건 대단한 명예도 엄청난 인기도 많은 관심도 아니지만, 그런 미지근한 존재로 사는 것조차 상상하기 힘들어진다.




내 미래는 불투명하고 내 친구들의 미래도 함께 불투명해서, 친구들과 만나도 해줄 말도 들을 수 있는 말도 없다. 함께 어깨동무하고 늪으로 빠지고 있는지, 손을 잡고 안개 속을 나아가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17 이제 희망은 추석 연휴뿐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