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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원 Jul 19. 2024

아주 작은 흔적에 대하여

4·3 활동가 인터뷰

[아주 작은 흔적에 대하여]


                                                                                                                                                                                                           김잔디_4·3 활동가, 제주다크투어 국장


가만히 있으면 0인 상태인 거고,
아무 흔적도 없이 흘러가요.
아주 작은 흔적이라도
우리가 이것에 저항했었다.
그 기록이나 역사를 남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패하더라도요.




[소개]


쓰는 섬


제주에서 글을 쓰는 청년들의 모임. 쓰는 섬은 청년 동아리 지원 사업을 계기로 인터뷰라는 새로운 도전을 하였다. 각자 다른 배경과 관점을 가진 세 명의 청년이 같은 것을 듣고 다른 것을 쓴다. 미숙하지만 4·3 유족의 목소리를 전할 마지막 세대라는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인터뷰집을 기획하였다. 쓰는 섬은  4·3 프로젝트를 마지막으로 해체되었다. 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쓰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김잔디


아름다운 제주에서 누구나 쉽게 4·3을 알 수 있도록 알리고 기록하는 4·3 활동가. 비영리단체인 제주다크투어에서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평화 운동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제주 4·3이 오래전에 끝난 역사책 한 모퉁이에 기록될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며 우리 모두의 역사라고 말한다.


김잔디 활동가


누구나 삶에서 자신만의 조용한 투쟁을 벌인다. 우리는 어쩌면 어릴 때부터 미처 인식하지도 못한 저항과 함께했을지도 모른다. 부모님이 바라는 나의 모습과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이 달라 반항하기도 했을 테고, 사회에서 요구하는 일반적 관념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때로는 어쩔 수 없이 더 편해지기 위해 저항하지 않는 편을 선택한 때도 있었을 것이다. 마음은 불편했지만 몸은 편했을 어떠한 순간을 맞이하며 도돌이표처럼 다시 의문을 가지기도 한다.


미스터 선샤인에서 놈팡이 부잣집 도련님으로 나오는 김희성은 “봄이 왔나 보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여기 다 있구려. 내 원체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웃음, 농담 그런 것들.”이라고 말한다. 제주에 있는 온갖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이 다 피어나는 4월. 벚꽃과 유채꽃이 만발하고 알록달록함이 가득한 세상에서 누군가는 시렸던 제주의 겨울을 바라본다. 언젠가 눈이 소복이 내린 겨울, 4·3 평화공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친구와 평화공원의 눈 쌓인 벌판을 뛰고 웃다가 바라본 위령탑 주변의 수많은 각명비는 이상한 기분이 들게 했다. 희생자 중에는 10살을 채 넘기지 못한 어린아이들이 많았다. 해설가는 추운 겨울 얇은 저고리 차림으로 갓난아기를 업고 한라산을 올라야 했던 평범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갖난아이는 한라산을 오르는 피난길에서 동상으로 죽었다. 아이는 해설가 선생님의 형제였다.


어둠, 검은색, 죽음, 학살, 침묵 이런 것들은 마주하면 겁부터 난다. 검은색은 모든 색이 섞여 만들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어쩌면 검은색은 가장 알록달록한 색의 총결합일지도 모른다. 행복과 불행이 알록달록하게 뒤섞인 우리의 삶처럼. 우리의 삶 어딘가에도 숨겨둔 나만의 검은 역사가 있고, 때로는 그것을 꺼내 보기가 무서워 마주하지 않는다. 쓰는 섬은 누군가는 어려워서, 무서워서, 머리 아파서, 알고 싶지 않아서, 관심 가지지 않는 4·3을 마주 보기로 다짐한 사람들, 수많은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 사이에서 어두운 길에 손전등을 켜고 사람들을 안내하는 제주다크투어 활동가를 용기 내어 만나보기로 했다.


제주다크투어 사무실에서 인터뷰_2023년 11월


제주다크투어 사무국에는 2명의 상근 활동가와 한 명의 반상근 활동가 총 3명의 인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3명의 안내자들이 하는 일은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제주 4·3 유적지를 여행과 비슷한 형식으로 소개하는 것이다. 그들은 유적지를 관리하고, 생존자나 유족들을 만나서 증언을 듣고 기록한다. 김잔디 사무국장의 제주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그녀는 사회복지사, 시민단체 활동가,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살아왔고, 걷는 걸 좋아해서 제주를 자주 방문하다 다크투어 후원 회원이 되었다. 그녀는 제주 강정 해군기지 등 평화와 관련된 사건들을 눈여겨보았고, 그러다 우연히 4·3에 대해 듣게 된다. 외관은 아름다우나 사실 어두운 이야기를 지닌 정방폭포처럼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지만, 설명도 제대로 되지 않은 장소가 너무나 많다는 것에 그녀는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제주에서 살다 보니 전에는 몰랐던 남영호 침몰사건을 알게 되었어요.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만드는 안타까운 사건이었어요. 저에게 세월호 참사는 과거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던 시절에 매우 큰 영향을 준 사건이에요. 결국 그 참사의 진상 규명 활동을 하며 여러 상황들이 누적되면서 시민단체 활동을 그만뒀죠. 그런데 남영호 침몰사건도 저는 알지 못했어요. 남영호 조난자 위령탑이 정방폭포 주차장 한편에 있는데도 몰랐어요. 아무도 관심이 없어요. 왜냐면 모르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그늘지고, 사각지대에 있는 이야기들은 시민단체에서 꺼내줘야 해요.”


김잔디 활동가는 세월호 참사 당시 유족들, 그리고 반대하는 편의 긴장감, 또한 누군가가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힘들어 시민단체를 그만뒀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그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남영호 침몰 사건을 알고서는 또다시 4·3에 뛰어들었다. 어떻게 다시 한번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평화가 두 종류거든요. 무기를 완전하게 만들어서 우리의 안전을 지키자의 평화가 있고, 무기를 없애서 누구도 다치지 않는 평화를 원하는 단체. 저희는 후자에 속합니다. 우리는 중립은 없다고 이야기해요. 어떻게 보면 그건 의미가 없어요. 우리는 4·3 역사의 마디마디에 대한 의견이 있고, 아직 단체가 전체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부분도 있을 수는 있겠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진 부분에 대해서는 합의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4·3 뒤에 뭘 붙일 것인지 이제 이런 것들은 더 큰 사회적 차원에서 합의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우리 단체도, 다른 4·3 단체들도 4·3을 무엇으로 부를 것인지 정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전통적으로 예전부터 4·3 단체들이 의견을 모았던 건 4·3 항쟁이죠. 근데 저희 자문 위원 중에서 김종민 선생님 같은 경우에는 항쟁이 너무 작은 의미라는 거예요. 4·3의 역사를 봤을 때 항쟁보다 훨씬 큰 의미라는 거야. 저희는 이런 논의가 활성화될 필요는 있겠다 싶어요. 기념관에 들어가면 가장 처음에 보이는 게 백비거든요. 이름 짓지 못한 역사, 그 백비를 세우는 데 우리가 조금이라도 기여하길 바라요 “


그녀는 육지에서 시민단체로 활동하던 시절, 서울 길거리를 나가 함성을 외치는 무리에 포함되어 있기도 했다. 4·3 활동은 길거리로 나가 미친 듯이 저항하는 활동은 아니다. 다만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녀는 20년 안에 사과와 보상이 빠르게 이루어진 대만의 대학살을 이야기하며, 민주주의의 중요한 기점에 대해 언급한다. 보상이 끝나고 나니 국민들의 관심은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빨리 되는 게 능사는 아니에요. 역사적으로 이야기를 훼손하는 세력이 있더라도, 시민단체는 계속 문제를 이야기하고, 관심을 이끌어내야 하죠. “ 아쉬운 것은 4·3 당사자들이 이미 많이 돌아가셨고, 심지어는 유족분들도 돌아가신 분이 많아요. 너무 느리게 가면 희생자분들의 명예회복이 돌아가신 뒤에 되다 보니 안타까운 거예요. 살아계셨을 때 무죄판결도 받고, 명예회복도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런 걸 보면 속도를 내야 하나 싶더라가 도 어떤 면에서는 천천히 제대로 짚고 넘어가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


그녀는 아직까지도 쉽지 않다고 말한다. 제주 토박이가 아니고 육지에서 왔다 보니 처음에는 제주사람들이 얼마나 마음을 열어줄지도 걱정이 되었고, 인터뷰를 하다 보면 알아들을 수 없는 사투리에 힘들 때도 많았다. 그러나 사람들이 마음을 열어주는 기억. 그런 사소한 것들이 좋았다고 한다.


“다크 투어 회원은 330명 정도 되는데 그중에서 70%가 육지 회원이에요. 보편적으로 육지분들에 대한 4·3 다크투어로 이루어지고 홍보가 되기 때문에 제주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육지 사람들이 동기부여도 훨씬 잘 되기도 하죠. 왜 내가 이걸 몰랐지, 아름다운 제주도를 매번 오면서 나는 왜 정작 이곳의 역사를 몰랐을까 하는 생각으로 다들 시작하시는 거 같아요…. 제주에서 구경할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은데 다 포기하고 이 우울하고 아픈 역사를 1박 2일을 듣겠다고 오시는 것 자체가 너무 감사한 거예요. 고마우니까 최대한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4·3 생존자이신 93세 오태경 선생님의 안내를 따라 떠나는 가시리 마을 다크투어는 새롭게 다가왔다. 마을 주민 약 1600여 명 중 450명이 4·3 사건 당시 목숨을 잃었다


이일을 하는 동력은 무엇인가 하는 쓰는 섬의 질문에 김잔디 활동가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가만히 있으면 0인 상태인 거고, 아무 흔적도 없이 흘러가요. 아주 작은 흔적이라도 우리가 이것에 저항했었다 그 기록이나 역사를 남겨야 되는 게 저는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실패하더라도요. 사실 대부분의 운동은 실패하거든요. 그런 실패들이 있어야 어느 순간 한 번은 굉장한 성공이 있고, 그리고 갑자기 변화하는 기회가 오거든요. 그래서 그 순간을 만들기 위해서 조금 지치더라도… 지치면 좀 쉬더라도 다시 또 돌아와서 의미 있는 활동을 하면 되지 않나 저는 이제 와서는 그렇게 생각이 들어요."


실패하더라도, 작은 흔적을 남기기 위해 조금씩 천천히, 때로는 강렬하게, 때로는 잠시 쉬어가며 저항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우리 삶에서 어떤 작은 흔적을 남기고 싶었나?




* 인터뷰는 2023년 11월에 진행되었고, 2024년도 5월에 인터뷰 당사자에게 확인 및 공유 동의를 받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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