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믿음과 균열
1.
재난은 불가항력적이다. 흔히 재난을 인간의 오만함에 대한 신의 분노에 빗대곤 하는데, 신화적 종말론의 근저에는 인간 고유의 능력으로 여겨지는 과학으로 그것을 정복하지 못했다는 무력감이 깔려 있다. 특히 코로나는 과학 문명의 시대가 극복했다고 믿어 왔던 바이러스라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비교적 최근 메르스나 신종플루와 같은 전염병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코로나는 그 기간과 규모면에서 두 바이러스와 비교조차 민망한 수준이다.
코로나가 우한 폐렴으로 불리던 시절에 나와 친구들은 기침하는 사람을 보면 "우한 폐렴 아니야?" 라며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다. 지금은 어떤가. 기침하는 사람을 보면 그와의 거리부터 가늠한다. 당시에 우한 폐렴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 곧 종식될 거라는 믿음에서였다. 그런데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는 동안 코로나는 더 깊이 우리의 일상에 침입하고 있다.
이 사태를 지켜보며 예측할 수 없다는 무지의 공포보다, 진리의 다른 이름이라고 믿어 왔던 과학의 여백을 발견했을 때 오는 기지旣知의 공포에 더 큰 무력감을 느낀다. 코로나에 대한 질책을 과학에게만 묻는 건 편협한 책임론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알고 있던(혹은 믿어왔던) 사실이 거짓일지도 모른다는 혐의가 드러났을 때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앞선다.
2.
코로나가 전 세계에 퍼지고 있을 때 나는 도쿄에서 살고 있었다. 당시에 일본 정부는 도쿄에는 확진자가 없다는 보도를 연신 뿌려댔다. 나와 같은 한국인들은 그 보도가 허위라는 걸 알고 마스크와 생필품들을 챙겼지만 일본인들은 정부를 믿고 정상적으로 바깥 활동을 했고, 길거리에 마스크를 쓴 사람도 드물었다. 공교롭게도 도쿄 올림픽이 내년으로 미뤄졌다는 발표와 동시에 도쿄의 확진자 수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도쿄가 락다운Lockdown 위기에 몰리자 내가 일하던 가게가 문을 닫았다. 일자리를 잃어서이기도 했지만 안전한 한국으로 돌아오라는 부모님의 권유 때문에 처음 세웠던 계획보다 앞당겨서 귀국했다. 한국에선 코로나가 사실상 종식된 상황이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제일사랑교회 교인들을 중심으로 제2차 확산이 시작됐다.
일본은 정부, 한국은 종교에 대한 맹신에서 비롯된 코로나의 확산은 성찰 없는 믿음이 얼마나 그 외부의 것들을 불신의 대상으로 간주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코로나 시대에 편재한 불신들이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인간의 믿음이 얼마나 독단적이고 강력한지 재난으로서 체감했기 때문이다.
3.
이제는 코로나가 종식되더라도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든다. 코로나는 ‘전염’된다. 무료로 나오는 술잔도 정이라며 하나로 돌려쓰던 우리가 술집에서 나란히 앉는 것도 금지된 상황이다. 사람이 사람과 접촉하여 이루어지던 활동에 제약이 생기면서 일상의 영역까지 침범한 재난은 유려하게 흐르던 일상을 정체시키고 무너뜨려 어떤 방식으로든 균열을 새긴다. 그래서 코로나에 직접적으로 인명피해를 입은 당사자와 유가족, 그리고 일자리를 잃은 소상공인을 차치하고서라도 코로나는 일상을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후를 고민하게 한다.
그런데 재난 이후 찾아올 뉴노멀New Nomal의 시대를 진단하고 예비하던 각 분야 지식인들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재난 때문에 다시 팬데믹을 분석하고 대처 방안을 마련하는 작업으로 돌아왔다. 그들의 전향을 목격하면서 노말은 고사하고 과연 뉴노멀의 시대가 오기는 올 것인가에 대한 회의까지 든다. 정말 지독한 무력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