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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운 Feb 10. 2021

다른 걸, 익숙하게

OCN드라마, <경이로운 소문> 리뷰

<경이로운 소문>(이하, <경소>)이 OCN 드라마 시청률을 거듭 경신해 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작품성에 관한 의구심이 아니라, 내게는 이 드라마가 OCN이 줄곧 시도해오던 장르물의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경소>는 ‘소문’이라는 고등학생이 악귀를 물리치는 ‘카운터’가 되어 악귀와 싸우는 이야기다. 시놉시스에서도 알 수 있듯, <경소>는 평범한 인물이 비범한 힘을 얻은 뒤 비일상적 집단에 들어가 시험들을 통과하며 성장해가는, OCN 장르물이 자주 사용해온 고전적인 영웅서사의 구조를 착실히 따른다. 스릴러, 드라마, 로맨스, 액션, 코미디, 심지어 호러까지 섞은 다채로운 장르의 혼합 역시 기존 OCN 드라마를 비롯한 국내 장르물 시리즈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 않은가. 시각적 비주얼도 다른 영상물에 비해 뛰어난 수준이라고 말하기 어렵고, 액션에서도 특징지을 만한 성취를 발견할 수 없다. 안정적이고 매력적이지만, 색다르다고 말하기엔 망설여지는 이 드라마가 OCN의 시청률 기록을 갈아치울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당겨 말하자면, <경소>의 성공요인은 현재 한국 드라마 시장이 지향하는 할리우드화의 한국적 변용에 있어 보인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최근 드라마 업계의 화두는 OSMU(One Source Multi Use)이다. 원작을 재가공하여 영상물로 내놓는 일은 꽤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으나, 그 대상이 과거엔 소설이었다면 최근엔 웹툰과 웹소설로 무게중심이 이동했다. 이는 대중적 관심도가 높은 웹툰과 웹소설이 고정 팬덤을 유인하기 쉽고, (평균적으로) 일주일 별로 회차가 나뉘는 서사의 호흡면에서도 드라마화하기 편이하다는 장점이 있겠지만, 마이너한 취향이라고 여겨졌던 장르물이 미디어 스토리텔링의 주류로 떠오른 시장의 흐름도 영향이 있다. 웹툰과 웹소설은 뚜렷한 하이컨셉(흥행을 목적으로 쉽고 간결하게 전달될 수 있는 내용의 기획)을 토대로 그 위에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쌓으며 전개된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경소> 역시 ‘대한민국의 평범한 고등학생이 악귀를 사냥하는 힘을 얻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라는 명확하고 강렬한 하이컨셉을 쥐고 있다. 방대해진 콘텐츠 시장에서 시청자들의 눈길을 끄는 참신한 하이컨셉은 콘텐츠의 성패를 가르고, 이는 관성적으로 영상물의 장르색이 짙어지는 결과를 낳는다. 또한, OTT업계의 성장과 함께, 콘텐츠들은 출퇴근 길에 시청할 수 있는 숏폼의 형태로 변화했다. 따라서 회차별로 친구, 학교 폭력, 살인사건, 부패한 기득권 등 다양한 서브플롯을 갖춘 <경소>가 시장의 니즈에 부합했을 것이다. 참신한 하이컨셉, 가족과 관련된 사건, 회차별 기승전결을 갖춘 에피소드는 할리우드 장르물의 방식이기도 한데, 그렇다면 <경소>는 할리우드의 성격을 따르는 드라마라고도 말할 수도 있을 테다.


     


한국의 장르물이 할리우드를 지향하는 것이 최근의 일은 아닐 텐데, <경소>의 성공에서 눈여겨볼 점은 할리우드식 컨셉과 결합한 한국형 스토리텔링이다. 기술적, 재정적, 산업적인 면에서 한국 콘텐츠 시장은 할리우드와 현격한 거리가 있다. 그리고 인프라의 격차보다 중요한 건, 한국 콘텐츠가 미국을 따를 필요도 없다는 점이다. 이는 문화적이기도 하지만, 지정학적으로도 그렇다. 중진시를 지켜야 할 사회 시스템은 무능하거나 혹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 역할을 카운터들이 대신한다. 이는 얼핏 공권력이 아닌 사적 집단이 대신해 세계와 주민을 수호하는 ‘미국의 자경단’과 유사해 보이지만(‘마블’ 시리즈가 그 예시다), <경소>의 적과 히어로들은 능력이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이들과 다르다. 악귀의 힘은 세계는커녕 한 도시를 위협하기에도 부족해 보이고, 카운터의 힘도 권능과는 거리가 멀다. 애초에 카운터의 목적은 사명감보다는 생존과 가족(혹은 친구)을 지키려는 개인적 욕망에 가깝다. 드라마는 첫 장면부터 부모가 의문의 죽임을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면서, 드라마는 외부의 위협이 아니라 사건의 내막에 더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카운터들을 가로막는 주된 갈등은 욕망의 좌절과 부패한 권력이다. 이는 <경소>가 에피소드화하는 일진과 계급 갈등과 더불어 한국 드라마의 관습적이고 익숙한 갈등 구조인데, 클리쉐한 서브플롯은 만화적 설정이 주는 거리감을 대중화하는 데 한몫한다. 결론적으로, <경소>의 대중적 성공은 할리우드의 방식을 한국형 모델과 성공적으로 결합한 이음매에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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