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대화의 온도 맞추기
“대리님 앞으로 이런 일 없도록 잘 챙겨주세요. 저도 더 잘할게요.”
“네 그러세요.”
‘그래요’도 아니고 ‘그러세요’...?
말도 안 되는 일로 방송이 펑크가 날 뻔했다. 편성을 꼭 받아달라는 협력사 요청에, 우리 팀원들의 다른 상품도 다 희생시키고, 편성팀과 피 터질 정도로 싸워서 얻어낸 편성이다. 그런데 협력사가 다른 이유로 방송을 못할 것 같다고 연락 왔다. 그 요청을 들어줄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무엇보다 이 편성 하나 받기 위해 여기저기서 욕먹은걸 생각하니 화가 치밀었다. 여차여차해서 그 방송은 변경 없이 그대로 진행하기로 마무리했다. 언성이 높아졌긴 했지만 다시 잘해 보자는 뜻에서 건넨 화해의 멘트. 그런데 그의 답변을 듣고 화가 나는 건 비단 나의 문제인 걸까?
같이 대화하기가 힘든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꼭 기분이 나빠진다. 욕하고 싸운 것도 아닌데 찝찝한 기분이다. 사적인 관계에서야 안 보면 그만이지만, 업무적으로 만나는 경우엔 정말 괴로워진다.
우스갯소리로 소개팅에 나가 대화하는 팁 중에 끝말을 따라 하라는 말이 있다. 이건 육아서에도 많이 등장하는 ‘공감’ 스킬일 것이다.
“친구가 물어보지도 않고 내 물건을 가져가서 짜증 났어”
“정말 짜증 났겠다”
마지막 말만 똑같이 반복해도 공감받는 기분이다. 참 쉬운 공식인 듯 하나 왜 입 밖으로는 꼭 다른 말이 먼저 튀어나갈 준비를 하는 걸까.
신랑의 말투에 특이한 버릇이 하나 있다. 고마워, 미안해 등의 말에 다른 대답이 아닌 꼭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다.
“고마워”라고 말하면 보통은 “응/ 아니야 뭘/ 괜찮아”라고 대답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고마워”라는 말에 신랑도 “고마워”
“미안해”라는 말에도 신랑은 “미안해”라고 앵무새처럼 따라 말한다.
누구 하나가 더 고맙고, 더 미안한 듯이 대화하지 않고 늘 그 온도를 맞춰준다. 그리고 그런 대답을 들으면 기분이 꽤 괜찮다. 우리가 고맙다, 미안하다는 표현을 안 하는 이유는 그 말을 뱉으므로써 뭔가 지는 기분, 상대방을 우쭐하게 하는 동시에 나는 너무 작아지는 기분 때문일 것이다.
소중한 사람에게 그의 말을 똑같이 들려주는 건 어떨까.
우리의 사랑은 “사랑해”라는 고백에 “응, 그래, 고마워”라는 대답이 아닌, “사랑해”라고 같은 말을 들려주며 시작했다는 걸 잊지 말자.
Photograph by 나의 절친 박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