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예상치 못한 즐거움_야식
친구랑 1주일이 넘어가는 여행을 하면 싸우고 오기 십상이다. 하물며 사촌언니와 나는 무려 한 달을 제주도에서 같이 살기로 했다. 그것도 성별과 성향이 매우 다른 두 아이를 데리고 말이다.
우리는 친자매도 아니고, 여행을 종종 함께 했던 친구도 아니다. 다만 서로에 대해 확인한 부분이 있다면,
- 5편 중 4편의 드라마 취향이 맞다는 것 (물론 남주 취향도)
- 달달한 과자보단 짭짤한 과자를 좋아한다는 것
- 2-3일에 한 번은 화끈하게 매운 게 당긴다는 것
- 무엇보다 낮에는 커피 한 잔, 늦은 저녁에는 맥주 한 잔을 즐긴다는 거다.
제주도에서 24시간 애들을 보면서 우리의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은 바로 야식이었다. 악덕한 팀장님 밑에서 직장동료들이 술 한잔으로 끈끈해지듯이, 3살 4살짜리 악동들에게 시달린 우리도 매일 밤 술로 대동 단결했다. 한 달 살기를 계획하며 매일 밤 같이 홈트 (*홈 트레이닝)를 하자는 다짐은 잊어버린 지 오래다. 대부분 맥주를 마셨고, 비가 오는 날엔 해물파전을 굽고 막걸리를 따랐다. 신혼 때 재미가 야식이었는데, 그때의 살찌는 소리가 제주도의 밤에도 들려왔다.
언니와의 타이밍은 정말 소울메이트인 듯이 잘 맞았다. 내 머릿속에 들어왔나 싶을 정도로 언니는 내 생각을 그대로 말로 뱉어냈다. 내 머리에 ‘카페인’라는 시그널이 들어오면 말도 꺼내기 전에 언니는 어김없이 다음 코스로 ‘제주도 예쁜 카페’ 링크를 보내왔다. 왠지 멀리 운전하기 싫은 날엔 언니도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멀지 않은 곳으로 가보자고 제안한다. 한 달 살기가 성공적이었다고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는 부분도 바로 나의 하우스메이트 덕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이와 함께하기 위해 떠나온 ‘한 달 살기’라기 보단, 언니와의 1일 1 맥(주) ‘한 달 야식’을 위해 떠나온 것 같다.
언니랑 함께한 제주살이가, 정확하게는 언니가 만들어주던 야식이 그리운 저녁이다.
누군가와 한 달 살기(또는 일주일 이상의 여행)를 계획한다면, 반드시 야식 취향이 맞는지는 꼭 확인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