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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Nov 23. 2020

탄자니아 통신

옥수수 고개

뭔가 수상하다. 

현관 앞 테라스에 낯선 사람들이 북적인다. 가까이 가니 도넛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한편에서 잘 부푼 밀가루 반죽을 아기 주먹만 하게 떼어 도넛 형태로 모양을 빚어 놓으면, 또 다른 한편에선 튀겨내느라 여념이 없다. 집 안 역시 다르지 않다. 가스레인지 네 개의 버너위에는 제 각각의 색으로 익어가는 도넛이 튀김 냄비 속에서 끓고 있다. 부지런히 손을 놀리며 잘 익은 것을 건져내고, 빈 냄비에 다시 반죽을 넣고... 잠시도 손을 쉴 틈이 없다. 김 선교사님 얼굴에는 발그스레한 꽃이 피었다. 바람이라도 쐬고 오시라며 교대를 청하자 위험하다며 팔을 젓는다. 위험한 건 마찬가지 아니냐며, 뺏다시피 튀김 젓가락을 받아든다. 

  “무슨 일이래요? 잔치라도 벌이시나요?”  설명인즉, 지금 이곳의 시골은 춘궁기로 점심을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단다. 그래서 아이들을 위한 점심 준비를 하는 것이란다. 


  이곳 서민들은 옥수수 가루에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얕은 불에서 잘 저어주며 익힌 후, 마치 호빵처럼 둥글게 빚은 우갈리를 주식으로 한다. 지금 들에는 한참 옥수수가 영글어 가지만 추수를 하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한다. 추수를 하기 전 3~4월이 농민들에게는 가장 어려운 때라는 것이다. 그 옛날, 우리나라 역시 보리를 수확하기 전인 5~6월을 보릿고개라고 해서 가난한 백성들이 풀뿌리나 나무껍질 등으로 연명하거나, 심하면 굶어 죽는 사람도 많았다고 하지 않나. 지금 이곳도 옥수수 고개를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일주일에 두 번, 그 많은 양의 음식을 장만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불 보듯 훤한데, 그것들을 손수 장만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드는 김에 주변의 독거노인들 몫까지 만들었다며 들려주는 빵 봉지를 들고, 아이들을 앞세워 길을 나섰다. 옥수수 밭 한가운데 대여섯 평 됨직한 양철지붕 집. 쪽문을 들어서자 바로 부엌이다. 할머니는 발갛게 달아오른 화로 옆에 쪼그리고 앉아 콩 요리가 익어가길 기다리고 있다. 창이라곤 없는 집에, 갈라진 벽 틈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이 전부다. 부엌 옆 쪽방엔 스펀지 매트리스가 놓인 찌그러진 철제침대만 스산하다. 

  우리를 배웅한다며 따라 나온 그녀는 자그마한 키에 깡마른 몸매다. 신발을 신지 않은 발은 안쪽으로 둥글게 휘어 있었는데 엄지발가락이 기형적으로 길다. 오랜 세월 맨발로 생활한 탓이 아닐까 싶다.   오랜만에 찾아온 낯선 손님이 반가웠던지 여러 번 포옹을 청하는 그녀를 두고 나오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다음날 점심시간에 맞춰 학교로 출발했다. 초행길로 여기저기 파인 물웅덩이와 꼬불꼬불 산길 탓인지 꽤 멀게 느껴진다.  

  수업중인지 세 채의 교사(校舍)가 화단을 둘러 서 있을 뿐 조용하다. 화단이라고 해봐야 삐뚤삐뚤 벽돌을 둘러 시늉만 냈을 뿐, 사람 손이 가지 않아 잡초만 무성하다. 일학년 교실로 들어서자 손바닥만 한 교실에 백여 명이 넘는 아이들이 올망졸망 앉아있다. 하얀 난방에 빨강색 니트, 파란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여기 저기 헤져서 너덜거린다. 일 년에 한 번씩 교복을 나눠주는데 옷 한 벌로 일 년을 나니 당해낼 재간이 없는 탓이란다. 선생님이 함께 한 탓인지 아이들은 얌전히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다. 너무나 차분한 아이들이 낯설기만 하다. 세네갈에서의 경험을 생각하며 은근히 걱정을 하던 터였으니 말이다.   


  세네갈의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지도한 적이 있었는데 마지막 수업 시간, 작별 인사 겸 선물로 비스킷을 준비했는데, 온순하고 상냥하던 아이들이 먹을 것 앞에서 거의 아귀 수준으로 변해 잘못하면 큰 사고로 연결될 수 있는 상황으로 변했다. 담임선생님의 도움으로 간신히 수습을 했으나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아찔하다.   

  고학년으로 갈수록 교실은 널널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자퇴한 아이들이 많아서라고 한다. 중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인데도 시골에서는 아직 아이들을 노동력으로 인식하는 탓이다. 하지만 일부 교육열이 있는 부모들은 소도 팔고 땅도 팔아 학교를 보내기에, 입학 시기가 되면 매물이 많이 나와 땅값이 곤두박질을 친단다.   

  이곳에서 초등학생들이 주로 사용하는 노트 겉면에는 ‘Education is the most powerful weapon we can use to change the world'라는 넬슨 만델라가 했던 말이 적혀 있다. 교육의 힘을 믿는 지도자와 일부 학부모의 교육열이 이 땅을 살릴 것이라 믿는다.    나는 보릿고개를 경험한 세대는 아니지만, 초등학교 점심시간에 식빵이나 옥수수 빵을 급식으로 먹은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선진 자선단체에서 제공한 구호물자였다. 어린 나이의 우리가 그런 것을 알리 만무했고, 별미를 먹는 색다른 즐거움을 누렸을 뿐이었다. 나는 저 초롱초롱한 눈빛을 가진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지금을 추억하며, 좀 특별한 급식을 먹었던 학창 시절의 아름다운 경험으로 기억하길 바란다.   


2017년 3월25일 탄자니아에서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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