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억, 있기는 하고?
20년 전쯤이었을까? 너무나 오래 전의 일이라서 까마득하지만, 저렇게도 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 갖게 한 뉴스가 있었다. 모든 것을 다 접고, 전 재산이었던 전셋돈을 빼서 세계 일주를 떠나기로 한 가족의 이야기였다. 지금이야 그 정도 얘기는 너무 흔해 진부하기까지 하지만, 그 당시는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가장이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아이들은 휴학 시키고 여행을 떠난다? 그런 발칙한 생각을 감히 할 수 있다니, 그리고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니. 나는 즉시 가위를 찾았고, 그리고 스크랩을 했다. 그 기사를 보며 함께 놀라워하고 공감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하며. 그런데 나와 함께 살고 있던 사람조차 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는 듯 나를 바라보며, 언제 철들 거냐는, 더도 덜도 아닌, 딱 그만큼의 표정이었다.
그로부터 한참 후, 2001년을 며칠 남겨두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해외로 떠나기 전, 작별 인사 겸 친구와 만났던 날이었기에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던 중 들려왔던 특별한 뉴스가 우리를 붙들었다. 자그마치 200억 우주여행 이야기였다. 지금도 큰돈이지만, 그 당시의 화폐 가치로 보면 천문학적인 돈이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미국의 백만장자 데니스 티토가 선정되었다는 것이다. 우주여행이란 단어만으로도 매혹적이었지만, 그 많은 돈을 지불할 수 있는 부자가 많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그 순간 나라면? 이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내게 만약 200억이 있다면, 기꺼이 지불한 의향이 있어,”
“나라면 절대 안하지.”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충만했고, 외국에서 살아볼 기회를 얻은 나는 그때 한껏 들떠있었다. 새로운 경험을 위해서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기꺼이 지불할 용의가 있었다. 그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은 없다고 여겼던 시절이었다. 그에 반해 친구는 나보다 훨씬 현실적이었다.
며칠 전, ‘현실로 다가온 우주여행, 얼마면 될까?’, 갓 구워낸 빵에서 나는 달콤한 향기를 내뿜는 글귀가 다시 내 말초신경을 자극했다. 이번에는 우주 호텔이란다. 사년 후에나 가능한 여행상품이 단 삼일 만에 4개월 치의 예약이 완료되었단다.
지금의 나라면?, 하고 다시 생각해 본다. 여전히 미지의 세계는 나를 끌어당기는 최고의 힘이지만, 이제 그것이 최고의 가치는 아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위해 전 재산을 투자하거나, 아프리카에 대학을 설립할 수도 있을 만큼의 돈을 단 며칠의 여행에 쓰지는 않을 것이다.
5년 전, 세네갈로 가며 생각했었다. 학교를 지어주는 프로젝트를 해보면 좋겠다고. 이제는 내가 직접 학교를 운영해 보고 싶다. 꽤 수준 있는 대학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참 엉터리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문제가 생기면 머리를 맞대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개선하려는 우리나라 조직과는 다르다. 이곳은 그냥 참는 것으로 대체한다. 아니 문제점을 인식하지도 못하는 듯하다. 조금만 바꾸면 오래 편하고 보기도 좋은데, 그럴 의지가 없다. 어쩌다 일을 시작해도 한 번에 잘 하지 않는다.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는 문화 탓에 대충하는 게 습관이 된 것이다. 필요할 때는 격렬한 논쟁도 하고, 죽자 살자 싸우기도 하고, 벌도 주고 해야 하는 데 그렇지가 않다. 자기 것이 아니면 나서지 않는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이기적이라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은 사람이고,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은 교육이다. 교육의 중심에 대학이 있다. 우리나라의 역동적인 교육 시스템을 이곳에 가져와 보고 싶다. 예전의 나에게는 개인적인 호기심이 에너지원이었다면, 이제는 내가 이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관심이 에너지원이 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