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냉아. 아부지 식사하러 오시라 해라. 언니들도 불러라. 언능. 국 다 식는다!'
우리 엄마의 밥상은 늘 푸짐하고 따듯하고 신선했다.
텃밭에서 직접 키운 열무와 얼갈이배추는 시원한 총각김치와 물김치가 되었고,
쪽파는 파김치가 되었으며 상추와 깻잎은 쌈으로,
고구마 줄기는 무침으로, 아삭한 오이와 풋고추도 맛있는 밑반찬이 되었다.
사시사철 채소들이 밥상을 넓게 차지했고 붉은 육고기 보다는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싱싱한 수산물이 회로, 구이로, 찜으로 자주 올랐다.
아주 건강한 밥상이었다.
어릴 때는 그 밥상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몰랐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엄마가 당신의 밥상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 또한 은연중에 그랬다는 것을.
지금도 여든을 앞둔 엄마는 딸이 방문하면
예전 같지 않는 몸으로 주방으로 곧장 들어가 밥상부터 차리신다.
힘드시다고, 알아서 챙겨 먹겠다고, 남들이 알면 욕한다고 그렇게 말려도 그러신다.
독립해서 사는 딸, 어떻게 든 따듯한 한 끼 챙겨주시려는 엄마.
그래야 마음이 편하신 걸 알기에 감사하게 수저를 들고 맛있게 먹는다.
그게 엄마의 가장 큰 사랑 표현이니까.
그런데, 엄마의 밥상은 여전히 사랑이지만 그 위에 놓인 찬들은 많이 변했다.
엄마의 밥상은 더 이상 푸짐하지도 신선하지도 않다.
오래 전 독립할 때, 엄마가 신신당부했던 말씀.
‘너무 많이 사먹지 마라. 반찬 같은 것도 사묵지 말고. 몸에 좋을 거 하나도 없다.
반찬이랑 국은 엄마가 해줄테니깐은 니는 따시게 밥만 해가 묵으라.’
‘엄마 귀찮다. 그리고 요즘은 파는 국이나 반찬도 맛있다. 내가 알아서 해 먹을 거니깐은 걱정하지 마라.'
‘국 하나 끓이고 반찬 몇 가지 만드는 그기 뭐가 귀찮노. 어차피 엄마아빠도 먹을라면 해야 하고 그 때 조금 더 하는 건데. 아무튼 일주일에 한번씩 집에 온나. 엄마가 국이랑 반찬 해놓을테니깐은. 알았재?’
엄마는 사 먹는 반찬이나 가공 식품을 못 미더워 하는 전형적인 옛날 사람이었다.
딸들도 그렇게 교육하고 단속을 하셨다.
하지만 일흔 후반을 넘기시면서 딸들에게 해주는 반찬은 점점 줄어들었고 최근에는 아예 끊겼다.
그리고 몇해전부터 우리 엄마 밥상에는 시장에서, 마트에서 산 반찬과 국이 하나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주 조금씩, 조심스럽게. 그리고,
“어? 누가 김치 줬나? 이거 엄마 김치가 아니네?”
“시장 갔다가 샀다. 맛 괜찮재?”
“…어, 어, 괜찮네.”
“인쟈는 힘들어가 김치도 못 담그겠다.”
“그래, 힘들게 하지 마라. 웬만하면 다 사먹어라. 알았재?”
마지막 보류처럼, 엄마 밥상의 파수꾼처럼 버티고 있던 엄마표 김치가 사라진 날,
나는 조금은 착찹한 마음으로 엄마의 밥상을 찬찬히 살펴봤다.
마트에서 산 재첩국과 메추리 간장조림, 시장에서 샀다는 삼색나물과 무말랭이무침,
양념된 명란젓과 조미김이 보였다. 그리고 낯선 속재료가 보이는 김치까지.
전혀 우리 엄마가 차린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밥상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국을 끓이고 반찬 만드는 건 일도 아니라던 우리 엄마는,
김장을 수십 포기씩 해서 딸들과 지인들에게 통 크게 나눠주던 우리 엄마는,
이제 전기밥솥에 밥을 하는 것조차 힘에 부치는 연세가 되셨다.
나나 언니들이 국과 반찬을 만들어 보낼 때도 있지만 부모님의 삼시세끼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고 그 부족한 부분들을 시판용 음식들이 채워주고 있는 것이다.
엄마의 밥상을 보고 있으면 양가적인 마음이 든다.
엄마가 다 직접해야한다는 고집을 버리고 편하게 식사를 해서 다행이라는 마음 한 켠으로
시판 국과 반찬에서 엄마 밥상에 내려앉은 세월의 무심함을 느낀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물든다.
엄마의 밥상이 변했다.
엄마의 정성이 담뿍 담긴,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우리 엄마의 손맛이 하나씩 사라지는 게 아쉽고 안타깝고 슬프지만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안다.
밥상에도, 음식에도 세월에 대한 순응이 필요하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