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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in wonderland Sep 22. 2023

내 분노일기의 주인공에게

지금 여기 감사 일기 8 

내가 남편에게 편지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나로서도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결혼 10년 차, 함께 사업하며 아이 키우며 오랫동안 힘겨루기를 하느라 서로에게 날을 세우고 있던 우리 부부였다. 같은 공간에 있는 게 어색하고 불편해 밥도 따로 먹고, 가게에서도 같은 공간에 있기 싫어 남편이 가게에 있다가 나가고 나면 내가 들어가곤 했다. 

꼭 해야 할 말은 카톡으로 하거나, 상대의 뒤통수에 대고 했다. 카톡이나 뒤통수에 대고 자기 할 말만 던지듯이 했으니, 제대로 된 소통이 될 리가 없었고 소통의 부재로 인해 오해와 갈등과 미움은 더 심해져 갔다. 

해결방법을 알지 못해 고민하던 나에게 주변의 지인 몇몇은 속마음을 담아 남편에게 편지를 써보라고 조언했다. 

듣자마자 NO를 외쳤다. 

내 성격에, 내 자존심에 속마음을 담은 간지러운 편지라니..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있어야 감사든 사랑이든 표현을 할 텐데 나는 남편에게 원망, 질책, 비난 말고는 할 말이 없었다. 그건 이미 질리도록 해왔으니 새삼스레 편지로까지 전할 필요는 없다 싶었다. 

나는 편지를 쓰지 않았다. 


오랜 시간 동안 내 몸과 마음은 긴장과 스트레스로 서서히 병이 들어가고 있었다. 

찌르는 듯한 귀통증, 만성이 되어버린 어깨 통증, 생리불순, 방광염, 불면증에 만성 피로까지 

적어도 내 몸이 정상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녀들은 나에게 매일 분노 일기를 써보라고 권했다. 화가 나면 화가 난 감정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회피나 억압 없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만나며 매일매일 글로 적어 보라고 했다. 

그러다 보면 내 안에 숨겨져 있는 감정들이 저절로 놓아질 거라고. 

그리고 결국 아무 문제가 없음이 깨달아질 거라고. 


매일매일 분노 일기를 적었다. 

주인공은 거의 매일 남편이었다. 

" 남편이 일의 진행 상황에 대해 나에게 제대로 말해주지 않아 일이 꼬여버렸다. 화가 난다."

" 남편이 나의 감정과 생각에 대해 알아주지 않아 화가 난다."

" 남편이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주변을 돌아보지 않으니 화가 난다." 

" 남편이 나와 의논하지 않고 돈을 쓰니 화가 난다." 

" 남편이 아무 말 없이 나갔다 들어왔다 하니 내가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고 화가 난다."

" 무심하게 핸드폰만 들여다보며 누워있는 남편을 보니 화가 난다. 아빠를 닮아 핸드폰을 보고 있는 딸을 보니 더 화가 난다."

" 남편이 급할 때, 부탁할 일 있을 때만 나를 찾고 나를 몰아세우니 화가 난다."

" 남편이 약속시간에 30분 늦고 운전을 험하게 하고, 나한테 말도 없이 내 가방을 가지고 가버려 화가 난다."


분노일기를 쓴 지 60여 일쯤 지났을까? 

그때까지 내가 써 놓은 분노일기를 쭉 훑어볼 일이 있었다. 


내가 쓴 그 글들을 읽으며 나는 몇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1. 내 행복과 불행이 남편의 말과 행동에 의해 너무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2. 나는 남편의 말투, 행동, 일하는 방식, 갈등을 해결하고자 하는 방식, 휴식의 방법, 운전 습관, 생활 습관, 의사소통 방식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고 그것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에 그는 단 하나도 바뀌지 않았고 나는 그런 그를 보며 혼자 화를 내며 내 몸과 마음을 망치고 있다.  

3. 나는 남편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나는 옳고 그는 틀렸다"는 잣대로 보고 있다. 


마음은 어떤 사건이나 타인이 감정을 일으킨 '원인'이라고 탓하면서 스스로를 그런 외부 원인에 당한 무력하고 순진한 희생자로 본다. "걔들 때문에 화가 나", " 그 인간 때문에 속상해", " 그 일 때문에 겁이 나", "세상 일 때문에 불안해." 진실은 정확히 그 반대다. 억제되고 억압된 감정이 발산 수단을 찾다가 외부 사건을 방아쇠 겸 핑곗거리로 삼으면서 터져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기회만 생기면 증기를 내뿜으려고 벼르는 압력솥과 같다. 언제든 폭발할 수 있도록 방아쇠를 당길 준비가 되어 있다.
- 데이비드호킨스 놓아버림 중에서 


그야말로 나는 언제든 터질 준비가 되어 있듯 화로 가득 차있는 압력밥솥 같았고 남편을 내 모든 화의 원흉으로 삼아놓고 내 화를 쏟아내고 있었다.


우리는 부정적 감정과 마음가짐, 믿음을 어마어마하게 쌓아 둔 저장소를 지고 다닌다. 여기에 압력이 쌓일수록 괴롭기 그지없고, 병이 생기며 잦은 문제가 생긴다. 면밀히 살펴보면 인생이란 본디 마음속에서 겁내거나 기대하는 바를 투사해 세상에 덮어씌우고는 거기서 벗어나려고 긴 시간 동안 이리저리 애쓰는 일이다. 
- 데이비드호킨스 놓아버림 중에서


내 스트레스의 근원이 남편에게 있다고 믿었던 마음이 스르르 사라져 갔다. 

나의 분노일기 속 주인공이었던 남편, 자기가 한 잘못 보다 항상 더 크게 비난받고 미움을 받아 억울했을 남편에게 조금씩 미안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결혼 10년 차에 처음으로 남편에게 편지를 써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팬을 들었다. 


나의 편지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고집 세고 자존심 강한 여자랑 사느라 고생 많았어요..



<평안함에 머무르는 법> 
-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맡기는 것
- 지금 있는 그대로 일어난 모든 일들이 완벽함을 아는 것  
-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 주는 것 
- 내가 노력하여 미래를 바꾸려 하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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