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 4.
매주 토요일마다 무료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학생은 통영과 거제에 살고 있는 40대부터 60대까지, 다섯 명의 엄마들이다.
제법 영어 문법을 알고 간단한 대화가 가능한 엄마도 있고,“My name is~”를 “마이 네임 이즈”라고 적어 놓고 무작정 외우는 수준의 엄마도 있다.
영어 실력은 제각각이지만, 이들이 공유하는 목표는 분명하다.
2년 동안 매달 15만 원씩 돈을 모으는 것. 그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케냐로 여행을 가서 영어로 현지인과 직접 대화를 해보는 것이다.
처음 그녀들을 만나고, 내가 케냐에서 살다 왔다는 이야기를 꺼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장난 반, 호기심 반으로 얼떨결에 케냐 여행 모임이 만들어졌다.
나는 여느 모임이 그렇듯, 몇 번 돈을 모으다 이런저런 핑계로 하나둘 사람들이 빠져나갈 거라 생각했다. 영어 공부 모임도 갖가지 이유를 대며 흐지부지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들이 본격적으로 돈을 모으고 영어 공부를 시작한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알고보니 무서운 열정과 추진력을 가진 엄마들이었다. 끈기도 대단한데, 성실하기까지 하다.
이대로라면 1년 후 겨울방학에는 꼼짝없이 그녀들과 함께 케냐 여행을 떠나야 할 판이다.
오늘은 2025년의 마지막 영어 수업날이었다.
수업 주제는 ‘영어로 2025년에 잘한 일 10가지 쓰기’와 ‘2026년의 목표 10가지 써보기’였다.
지난주 이 숙제를 내주었을 때, 그녀들은 “올해 잘한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후회되는 것밖에 없구먼.”, “아무 생각도 안 나는데… 뭘 쓰냐?”하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영어로 쓰는 게 어렵다면 한글로라도 꼭 적어 오라고 신신당부했다.
수업시간, 역시나 성실한 그녀들은 모두 노트 한 가득 숙제를 해 왔다.
우리는 둘러앉아 2025년 한 해를 찬찬히 되돌아보며 최대한 쉬운 영어로 문장을 만들었고,
돌아가며 각자의 문장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2026년의 목표를 말할 때,
그녀들의 얼굴에는 반짝반짝 생기가 돌았다.
지금까지 살며 다음 해의 목표를 써보는 게 평생 처음이었다는 한 엄마는 이 시간이 너무 뜻깊었다며 작지만 희망찬 목표를 이야기했다. 집에 가서 아이들과 함께 내년 목표를 세워볼거란다.
우리는 1년 동안 꾸준히 영어 공부를 함께해 온 서로를 칭찬했고, 영어를 공부하면서 영어에 대한 막막함과 두려움이 사라졌다는 소감도 나누었다.
나는 지적이고 어메이징 한, 완벽한 선생님이라는 기분 좋은 칭찬도 들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남았던 말은, 일주일에 한 번 이 시간이 즐겁고 힐링이 된다는 이야기였다.
"못하는 영어 지만 뭔가 깨우침을 받는느낌과
막연했지만 나도 꿈틀거릴수 있다를 느낌받는거 같아 힐링되어요."
꿈틀거릴 수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니, 재미있게 공부를 하며 힐링까지 된다니,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아이를 키우고, 직장 생활을 하며 오랫동안 자신을 위한 시간을 내기 힘들었던 엄마들이 온전히 자신을 위한 시간을 만들고,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이 시간은 스스로에게 주는 큰 선물 같았던 모양이다.
행복이, 인생이 뭐 별거 있는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모여 앉아 서로 마음을 이야기하고, 다독이고 더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는 것. 이것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내년 이맘때, 우리는 또 어떤 성장의 기록들을 나누게 될까.
그녀들과 함께할 2026년의 토요일들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