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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in wonderland Jul 27. 2022

나는 나를 오해하고 있었다.

solo leveling_4 관찰카메라 

" 방에 들어갔다 나올 때 불은 끄고 나와야죠." 

" 화장실을 쓰고 나올 땐 뒷정리 좀 하세요. 머리카락이 사방에 떨어져 있어요." 

" 남의 물건을 썼으면 제자리에 두세요. 아무 데나 두지 말고요."

" 밥을 왜 이렇게 지저분하게 먹나요? 식탁 위에, 바닥에 음식물 찌꺼기 보세요. 밥그릇에 밥풀이 이렇게 많이 남아 있는데 다 드신 건가요?"

" 반찬은 먹을 만큼만 덜어서 깨끗하게 다 비우세요. 음식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세요? "

" 물을 아껴 쓰세요. 샤워할 때도 세수할 때도 물을 계속 흘러넘치게 틀어둬서 낭비를 하네요." 

" 책상 위 정리 좀 하세요. 옷장 정리도 하시고요. 방이 너무 지저분하네요. "

" 쓰레기 통이 다 찼는데 비울 생각을 안 하네요. 주변 좀 둘러보세요. "



내가 7살 난 딸내미에게 하는 잔소리냐고? 

아님 남편에게?

아니다. 

내가 요즘 매일같이 그녀들로부터 듣고 있는 이야기들이다. 

들을 때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고 왜 이런 이야기까지 나한테 하나 화가 올라오기도 했으나 나는 그냥 내 마음을 숨기고(표정으로는 모두 드러났을지라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내 성격 같아서야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버렸겠으나 지금은 아주 특수한 상황. 

내 집은 케냐에 있고, 한국에서 나는 여기가 아니면 갈 곳이 없다. T.T 


썩은 음식물 쓰레기를 매일매일 구석에 조금씩 숨겨두는 것처럼 내 화와 어두운 감정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던 어느 날 나는 드디어 폭발하고 말았다. 


"아니~ 내가 뭘 얼마나 지저분하다고 그래요? 사람이 한두 번 실수할 수도 있지 이런 사소한 걸 가지고 사사건건 피곤하게 지적해야 해요? 난 여기 쉬러 왔다고요. 전기세, 수도세가 많이 나와봐야 몇만 원인데 그까짓 돈 내가 주면 되지 이런 걸로 왜 나를 스트레스받게 만들어요? 

케냐에 살 때 나는 사업 관리하랴 애 돌보랴 이런 사소한 일에는 신경 쓸 시간도 없을 만큼 바쁜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집에 가정부가 있어서 청소, 빨래, 설거지까지 다 해 주는 환경에서 있다 보니 내가 무뎌져서 그런 거지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은 아니라고요.!!"


억울함과 화가 뒤엉켜 사방으로 튀어나왔고 한참 소리를 지르며 묵혀두었던 마음을 쏟아낸 나는 방으로 들어가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한 듯 펑펑 울었다.

세상에 내 편은 아무도 없는 것 같고,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것 같고, 모두 나를 비난하고 공격하기만 하는 것 같아 외롭고 슬펐다. 



한참을 그렇게 울며 감정을 모두 쏟아내니 속이 시원해졌다. 

그러고 났더니 나는 조금 머쓱해져 버려 뒷수습을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떤 얼굴로 문 밖을 나가야 하나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 그녀들이 더 이상 나랑 지낼 수 없다고, 당장 집에서 나가라고 하면 나랑 지아는 어떻게 하지? 지금 케냐로 돌아갈 수도 없는데 큰일이네... 에이 나도 모르겠다.' 

나는 될 대로 돼라 싶어 그냥 자리에 벌렁 누웠다. 

그리고 그녀들이 나에게 했던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곱씹어 보았다. 


부주의하고, 지저분하고, 낭비하고, 배려하지 않고.. 

어? 이거 내가 매일 남편을 비난하던 레퍼토리잖아? 

그녀들이 나에게 하고 있는 잔소리들이 평소에 내가 남편에게 하던 잔소리와 정확히 일치했다. 




다행히 이 일로 그녀들이 나를 쫓아내진 않았고, 그날 이후 나는 내 행동을 조금 더 주의 깊게 살피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갔다 온 후 정신을 차리고 다시 한번 들어가 보니, 화장실 형광등은 켜져 있고, 머리카락이 스무 개는 넘게 바닥에, 세면대 위에, 변기 주변에 떨어져 있었다. 설거지를 하고 나왔다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한번 부엌에 들어가 보았더니 어김없이 형광등은 켜져 있고, 싱크대 위의 문은 열려있고, 음식물 찌꺼기가 싱크대 벽에 덕지덕지 붙어 있다. 내가 덜어 놓은 밥그릇의 밥은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먹겠다고 신경을 쓰고 밥을 다 먹었는데도,  정신을 차리고 다시 내 밥그릇을 봤더니 작은 밥알들이 그릇에 붙어 있다. 물이나 우유를 컵에 따라 놓고서 끝까지 마시지 않고 남겨 버리는 일이 잦았다. 나는 더 이상 그녀들의 말에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내가 굉장히 섬세하고, 깔끔하고, 아껴 쓰고, 배려심이 넘치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래서 매일 그렇지 못한 남편에게 잔소리를 하고 비난하고 심지어 무시하기까지 했었던 거다. 

나는 나를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다. 



그녀들: 우리가 싫어하는 타인의 성격은 대부분 자기 자신이 인정하기 싫은 자신의 성격, 자신의 내면의 모습이에요. 그럼에도 타인의 단점만 보는 까닭은 그 단점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도 고치려 하지도 않기 때문이죠.  

우리는 가끔씩 남의 잘못을 기막히게 잘 집어내죠, 다른 사람의 잘못을 비난하는 이유는 그래야 내 마음이 편안해 지기 때문이에요. 다른 사람의 단점을 들춰내다 보면 내 단점은 그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고 심지어는 우월감까지 느낄 수 있거든요. 

상대방을 비난하고 판단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 조용히 비난이 비추어 주는 햇살님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려고 해 보세요. 그러면 남을 비난하는데 쓸데없는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자신의 단점을 고치는데 그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다 보면 다른 사람이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며 사랑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낼 수 있을 거예요. 


그날 이후에도 나의 행동은 여전히 부주의했고, 지저분했으나 다행히 나는 몇 초, 몇 분 때로는 몇 시간의 시간차를 두고 내 행동을 알아차려 가기 시작했다. 


그녀들의 잔소리는 계속되고 있다.  

" 어깨에 힘 좀 빼세요. 설거지하는데 왜 그렇게 긴장을 하고 있는 거예요?"

" 왼쪽 어깨가 올라가 있네요."

" 허리 펴고 가슴을 내민다고 생각하고 자세를 잡아 보세요."

" 걸을 때 왜 이렇게 터널 터덜 걸어요? 발가락 끝에 힘을 주고, 배에 힘을 주고 걸어보세요." 

" 땅에 뭐가 떨어져 있나요? 걸을 때 땅을 보지 말고 저 멀리 앞을 보세요. 발 밑만 보지 말고 주변의 경치를 좀 보세요." 

" 지금 무슨 생각 하고 있어요? 대화중에 왜 상대방을 안 보고 멍 때리고 있는 거예요?" 

" 내 물건을 썼으면 제자리에 좀 돌려주세요." 

" 상대방이 묻거나 이야기하면 대답을 해주세요. 고개만 끄덕끄덕하지 말고요." 

" 생각이 과거로, 미래로 가고 있네요. 현재에 집중하세요. 지금 이 순간 무슨 문제가 있나요?"  


가끔은 내 자세와 걸음걸이를 뒤에서 보고 있다가 동영상을 찍거나 사진을 찍어 보여주기도 하고, 유튜브로 재미있는 예능을 보는 중에도 인상을 쓰고 있는 나를, 남편과 무표정하고 쌀쌀맞은 표정으로 영상 통화를 하는 나를,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구부정하게 낮잠을 자고 있는 나를, 똑같은 자세로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나와 딸아이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보여주기도 한다.  


이곳에서 나는 24시간 관찰 카메라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프로그램에서 오은영 박사님이 주인공들의 말과 행동을 세심하게 관찰해서 문제점을 찾아내고 애정 어린 조언을 해 주 듯이, 나는 이곳에서 나를 관찰해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 그녀들과 함께 있다. 그녀들을 통해 오해하고 있던 나 자신을, 모르고 있던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너무나도 감사하다. 


햇살 : 정말 감사해요. 이런 시간들이 없었다면 나는 남은 인생 동안 나를 평생 오해하고 잘난척하며 교만하게 살았을 것 같아요. 


그녀들: 남편분이 햇살님의 본모습을 그대로 비춰 보여주시는 고마운 거울 같은 존재였네요. 지금 이렇게 귀한 시간을 선물해 준 것도 어찌 보면 남편분 아닌가요? 햇살님에게 스스로의 힘으로 도저히 답을 찾지 못할 만큼 어려운 시련을 던져 주었고, 햇살님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곳으로 오게 만들어서 이렇게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만든 것도 남편분이니 얼마나 감사한가요? 


햇살: 아... 그래서 또 남편에게 호오포노포노 해 보라고요? 

그래요.. 한번 해 보죠. 


내가 나 자신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당신을 미워하고 비난하고 원망했네요. 미안해요. 

어리석음과 교만한 마음으로 당신을 힘들게 한 나를 용서해주세요. 

나에게 이렇게 귀한 시간을 갖게 해 주어서 고마워요. 

... 

사랑해요.. 는 아직 좀 힘들겠네요. 

오늘은 여기까지. 


호오포노포노(Ho’oponopono). 하와이 말로 '잘못을 고친다'는 뜻으로 불균형을 바로잡아 원래의 완벽한 균형을 되찾는다는, 하와이에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셀프 치유법입니다.  호오포노포노의 기반은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은 100%, 전부 나의 기억(잠재의식)이 현실화한 것이다."라는 것이며 이 기억을 정화하기 위해서 "미안합니다. 용서해주세요, 고마워요, 사랑해요"를 반복해서 말함으로써 나의 잠재의식을 삭제(정화)하는 것입니다. 


% 현재 나의 상태 

수치심 20 % :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다고? 완전 교만 덩어리였어. 정말 부끄러워. 

용기 20% : 이젠 뭔가 좀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아. 

자발성 30% : 이번엔 자존심 따위 버리고 내 결점을 기꺼이 바라보고 진짜로 레벨업 해봐야지!  

기쁨과 감사 30% : 나에게 이렇게 귀한 시간이 주어진 것이 너무너무 감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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