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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소리 Nov 25. 2024

덜어내야 보인다 : 내 삶의 진짜 사람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온갖 욕심이 덕지덕지 들러붙은 찌들고 찌든 속세 사람임을 부정할 수 없다. 언제부터인가 ‘더하기’의 삶에만 집중하고 있던 나. 비단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의 연결고리까지 온 힘을 다해 엮어가던 나 자신을 발견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내가 소유한 것이, 나와 연결된 것들이 많아질수록 “나는 역시 인싸다운 삶을 살고 있군” 하는 안도감에 휩싸였다. 마치 관계의 숫자가 나의 가치를 증명하는 듯한 착각 속에 살았던 시절, 나의 더하기식 삶의 방식 중 가장 대표적이었던 것이 바로 인간관계였다.


각종 친목 모임에 빠지게 되면 무슨 큰일이라도 날까 봐 불안했고, 내심 승진의 욕심도 있었던 나는 직장 내 인맥관리를 위해 퇴근 후 푹푹 절여진 파김치 같은 몸을 억지로 이끌고 각종 술자리에 참석했다.


어디 그뿐이랴. 차곡차곡 쌓아 가기만 하고 추려낼 생각은 좀처럼 하지 않았던 핸드폰 속 연락처들부터, 더 많은 친구, 더 넓은 인맥, 다양한 나의 관심사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각종 커뮤니티 목록까지. 그 숫자는 해가 갈수록 늘어나기만 할 뿐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수집가처럼 차곡차곡 모으고 있던 건 비단 오프라인 인맥뿐만이 아니었다. 요 몇 년 사이에는 SNS 팔로워 숫자에도 신경이 쓰이더라. 블로그며, 인스타며, 스레드며, X며... 뭐 하나 새로운 플랫폼이라도 뜬다는 소문을 접하면, “이런 건 초창기에 올라타고 봐야 해”라며 일단 정체성 없는 계정부터 개설했다. 1만 팔로워, 5만 팔로워, 10만 팔로워 쯤은 되어야 그래도 어디 가서 ‘나 SNS 해‘라며 어깨를 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무분별한 문어발 팔로우 신청을 하기도 했다.


간만에 새로운 피드라도 하나 올렸을 땐 또 어떠했던가. 내 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얼마나 빨리 오는지, 그리고 또 얼마나 많은 좋아요 와 댓글이 달리는지 수시로 핸드폰 알림창을 확인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레고처럼 쌓아만 가고 있던 인맥 타워가 나를 서서히 짓누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수많은 인맥의 가지 속에서 나란 사람은 진심으로 위로받고 있는 것인지, 내가 너를 소중하게 여기는 만큼 너 역시도 나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것인지, 이 중에서 내게 진정으로 의미 있는 관계는 얼마나 되는 것인지, 고민하는 시간들이 점점 늘어갔다. 


사람들과의 만남 후 느껴지는 (흔히 기빨림이라고 불리는) 에너지 소진과, 그로 인해 내가 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것저것 따지고 계산하다 보니, 결국 내려진 분명한 결론은 ‘내가 원하는 삶은 이건 아니다!’라는 것.


그리하여 ‘내 삶의 가지치기 프로젝트’에 돌입하게 되었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핸드폰 연락처 정리하기. 당시 내 핸드폰에는 수천 개의 연락처가 저장되어 있었는데, 그중엔 일 년이 지나도 연락 한번 하지 않는 분들의 연락처가 수두룩했다.


우선 이분들의 연락처를 과감히 삭제하기로 했다. 혹시라도 업무 관련하여 추후에 연락할 일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너무 과감하고도 무분별한 행동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잠시 스쳤지만, 놀랍게도, 아주 놀랍게도, 수년이 지났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더라.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도 그리 염려 마시길. 연락처 삭제의 나비효과는 생각보다 미미하니까.


현재 내 핸드폰엔 100개 남짓한 연락처만 저장되어 있는데, 나의 인간관계의 폭이 너무 좁은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긴 하지만, 내가 관리할 수 있는 관계 에너지의 범위가 딱 이만큼이라고 생각하니 그래도 일단은 마음이 평온하다. 그래. 그걸로 족한 거지.


핸드폰 연락처를 정리하며 그분들과의 추억을 되새겨 본 것 또한 의미가 크다 하겠다. 잠시 과거로의 추억 여행을 다녀온 후 바로 그분들의 연락처를 무참히 삭제하긴 했지만, 이렇게나마 한 분 한 분 떠올려 보는 시간을 가지는 건 이때가 아니면 또 언제 해보겠나 싶다.


그래. 쇠뿔로 단김에 빼랬다지. 뭔가 홀가분해진 기분에 텐션이 한층 더 높아진 나는 내친김에 쌓이기만 하고 있는 SMS 수신 문자들도 꼭 남겨 두어야 할 것 20개 미만만 남겨두고 모두 삭제해 버렸다. 나 혼자만의 느낌적 느낌일 수도 있으나 핸드폰이 한결 빨라지고 가벼워진 듯했다. 무엇보다 내 마음이 깃털처럼 홀가분해진 게 이날의 가장 큰 소득이랄까.


좋아. 이 기분 그대로 이어서. 이번엔 무분별한 단톡방 탈출하기 시도. 그 언제부터인가 각종 목적의 단톡방들이 우후죽순 참 많이도 생겨났다. 일일이 톡을 다 확인하지 못한 단톡방 목록에는 300+라는 숫자가 무겁게도 나를 짓누르고 있었으니. 항상 급하게 눈팅만 하고 휙휙 손가락으로 넘기느라 바빴는데 내가 여기서 무슨 대단한 인사이트라도 얻겠다고 여기에 다 속해있는 것인가 또 한 번의 현타. 그리하여 수십 개의 단톡방도 과감히 나가기 성공. 이제 내 단톡방 목록은 10개 미만.


최근에는 부담스러운 모임, 형식적인 만남 역시 되도록 자제하려 하고 있다. 내가 가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범위 내에서(이 에너지는 해가 갈수록 줄어드는 것이 문제지만) 딱 그만큼만의 커뮤니티에만 속한 지금의 삶이 나는 참 좋다.


그렇다고 나란 사람이 사회생활 부적응자가 되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니 독자 여러분들은 안심하시길.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관계를 줄이자는 것이 아니라, 과감히 정리한 불필요한 것들의 자리에 정말 소중한 것들만 남기라는 이야기이다. 마치 옷장 정리를 하고 나면 정작 입고 싶었던 옷들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꼭 어디 수십 개의 커뮤니티에 속해있지 않아도 괜찮다. 그러니 안심하시라. 혼자여도 충분히 빛나는 당신. 관계의 독립은 개인의 고립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현명한 선택이다. 모든 모임에 참석할 필요도, 모든 사람과 친해질 필요도 없다.

더 깊고 풍요로운 관계를 만들어나갈 당신의 40대를 응원한다. 더 풍요로운 나를 위한 인생의 가지치기. 지금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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