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홍콩 2024
오늘은 오랜만에 처음으로 하는 일이 있었다. 처음의 달콤함을 아주 오랜만에 맛보았다. 바로 하이디라우 인스턴트 핫팟을 먹는 일이었다. 설명하자면 길지만 아침밥을 챙겨먹어야겠다고 다짐한 어제 저녁. 상점은 문을 다 닫은 밤 11시 케네디타운에 세븐일레븐에서 고심해서 사 온 한국 전복죽과 중국 라면. 그때까지만 해도 이건 내게 그냥 중국 컵라면에 불과했다. 좀 크긴 해서 '오. 뭔가 재미있겠네.' 정도였다. 한자를 못 읽으니 뭔지 잘 몰랐다.
나른하고 바쁜 토요일 오후. 저녁을 타이쿠에 가서 먹을까 말까 하다가 그냥 어제 사온 걸 먹기로 했다. 품에 안고 총총 나가는데 친구가 오랜만에 놀랐다.
그거 중국에서 엄청 유명한 건데.
아무튼 나는 글을 읽을 줄 모르니 그냥 라면이고 걔 눈에는 상표가 떡하니 보인 것이다. 잘됐다 생각하고 이것저것 물은 찬 물을 붓냐 뜨거운 물이냐. 물어보는데 친구가 다 해줬다. 이런 친절이 익숙치 않아서 로딩중이었는데 들은 말이다.
이거 처음 해보는 거잖아. 그리고 좀 위험하거든.
훠궈 안 먹은 지 정말 오래되긴 해서 음식만으로도 설레는데. 날 더 설레게 하다니. 처음이라는 건 언제나 좋은 변명이 된다. 하지만 변명만은 아니다. 처음이라는 건 정말 어렵다. 그 자체로 봐줄만한 이유가 되는 모양이다.
오늘 오전에는 인턴을 했는데 닥터는 우리가 처음이라는 것만으로 꽤나 너그럽고, 동시에 그래서 더 엄격하다. 인턴 이벤트를 준비하며 미팅을 하는 와중 그가 '3년 뒤면 진짜 심리학자가 될 거니까. 나도 그렇게 너희를 대할 거다.' 라고 말했다. 멍했다. 난 진짜 심리학자가 될까? 아직 확신하지도 못했는데 닥터가 그렇게 말해주니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뭔가 어정쩡한 감동. 나 진짜 되는 건가? 할 수 있는 건가?
처음 해보는 게 너무 많아서 물렁하고 오히려 그래서 속은 더 바짝 쫄은 나는 중국당면일까? 중국 당면을 안 넣어서 아쉬운 핫팟을 보며 이만 오늘의 글을 마무리한다.
[아무튼 홍콩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