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실패시즌2_11화 / 미영
저번 주에 원룸을 하나 구했는데 명분은 두 가지다. 하나. 서울살이에 실패하고 광주로 돌아와 거의 9년 만에 가족들과 다시 복작대며 사려고 하니 사골 국물이 돼 가고 있어서. 둘. 백수로 지낸 지 6개월이 넘어가기 시작하자 이제 돈 같은 건 못 벌더라도 뭐라도 해야겠다는 강박감에서.
모은 돈은 쥐꼬리고 모을 돈은 불분명하니 당연히 어떻게든 싼 곳으로 구했다. 생활은 불가능하고 와서 타자를 두드리는 정도만 가능한 방인데도 월 최소 30만원은 나갈 듯하다. 생각해 보니 서울살이에 실패한 큰 이유 중 하나가 공간이었다. 버는 돈이 족족 공간으로 소비되지만 그 공간이 편하지도 않았다. 내 공간을 지키기 위해 출근하는 셈인데 퇴근 후의 내 공간에서도 회사 생각뿐이니 결과적으로 그 도시에 내 공간은 없었다.
그리고 이 낡아 빠진 공간을 작업실로 부르기로 한 이유는 그래야 그나마 작업을 하기 때문. 사람처럼 원룸도 이름 따라 가겠지. 내가 이 생각을 언제 하게 됐냐면 저저번 주에 방을 구하려고 며칠을 발로 뛰어다니다가 마침내 결정을 내렸을 때였다.
방을 소개해 준 중개인은 자기 일정이 너무 바빠 내게 방의 주소와 비밀번호만 알려줬고 그 때문에 나는 이 사람의 얼굴도 모르는 상황. 그런데 내가 방이 마음에 들었다고 하자 가계약금부터 본인의 계좌로 넣어 달라는 것이다.
여기서 안전하게 방 구하는 팁 : 보증금과 계약금은 물론이고, 가계약금이라도 집주인의 계좌로 넣는 것이 안전하다.
단번에 불신의 싹이 튼 나는 '가계약금은 보내고 싶지 않다, 계약서를 작성하기 전에 방이 빠진다면 헛걸음하지 않게 문자만 하나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계약할 때는 집주인이 직접 왔으면 좋겠다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그렇게 해서 그 다음날 바로 공인중개사에서 계약서를 쓰게 됐는데 역시나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일단 공인중개사 사무실이 유흥업소들 천지인 거리에 달랑 하나 있었고, 들어가 보니 수상하게 생긴 어린 놈들 집합소였다. 게다가 집주인의 대리인이 왔는데 이 대리인까지 수상하게 생긴 어른 놈이었던 것이다.
물론 나는 며칠을 고생한 상태였기 때문에 더 미루고 싶지 않았고 결국 등기부등본과 건물 대장까지 모두 떼어서 확인한 뒤에야 계약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바로 청소를 위해 방에 들렀다가 인터넷도 도시가스도 말썽이라 집주인에게 전화해 수리기사를 불러야 했다. 그 사이에 나는 현관 비밀번호를 재설정하고 다이소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러 잠시 외출했는데, 다시 돌아와 보니 문이 열리지 않았다. 분명히 바뀐 비밀번호를 제대로 눌렀는데도 말이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나는 다이소에서 한 보따리 사 온 물건을 방 앞에 내팽개쳐 버리고 뒤돌아섰다. 그때 낯익은 한 남자가 나를 슬쩍 보더니 쌩 하고 지나쳐 위층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그는 집주인의 대리인이었다. 다짜고짜 그의 팔을 붙잡고 "집주인 맞죠?" 하니 몇 초 후에야 "네." 하는 답이 돌아왔다.
아무튼 간에 이 수상하게 생긴 어른 놈에게 비밀번호 키가 고장난 것 같다고 설명하니 '그럼 내일 사다리 차를 불러 창문을 통해 들어가 고쳐 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비밀번호 키를 만든 업체에 문의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으나 '안 된다'라는, 논리는 없지만 매우 확고한, 그러니까 정말 안 되는 일이라는 확신이 드는 대답이 돌아와 나는 끝내 알겠다고 했다.
그렇게 돌아서는데 "근데 이 짐(다이소 물건들)은 여기 두고 갈 거예요?" 하고 집주인인지 대리인인지 알 수 없는 자가 물었다. 만사가 귀찮아져서 "설마 누가 가져가겠어요?"라고 받아치자 "가져가요."라는 또 다시 확고한 답이 돌아왔다.
여기서 더욱 놀라운 일. 실은 이상한 게 너무 많아 앞에서 미처 설명하지 못한 한 가지가 있다.
내가 구한 방의 맞은편 원룸 문짝에는 '해피월드'라고 아주 커다랗게 적혀 있었는데 누가 봐도 수상쩍게 보였지만 '해꼬지라도 당하겠어?'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넘겼던 그곳이었다.
이 작자는 '해피월드'의 비밀번호를 망설임 없이 누르더니 내 짐을 그 안에 넣고서 "내일 우리 여직원이 여기로 출근하니까 문 두드려서 맡긴 짐 찾아가요." 했다. 비밀번호 키 좀 고장났다고 사다리 차를 부르고, 직원을 여직원이라고 부르며, 대리인이면서 건물 안에 '해피월드'라는 자기 사무실을 차린 늙은 남자.
그리고 그 건물 안에 작업실을 구해 놓고 재미도 없는 스낵 컬쳐를 쓰며 코묻은 돈이나 버는 나.
세상은 참 요지경이다. 어쨌든 '해피월드'는 그 이름만큼이나 과연 수상쩍은 곳이었고 나도 이 원룸을 작업실이라 부른다면 언젠가는 이름 따라 작업이 무척 잘되는, 그래서 성공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헛된 생각을 한번 해 봤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