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위담

연재실패시즌2_12화 / 보라

by 금붕어

설날에 동생과 술을 마셨다. 서울에 사는 동생과 광주에 사는 나는 술 마실 일이 그다지 많지 않고 함께 술을 마신 적도 별로 없다. 하지만 둘이 술을 마셨다 하면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의견 주장하기(내가 일방적이긴 했음), 부둥켜안고 펑펑 울기 등의 화려한 전적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술 마실 일이 별로 없는 건 오히려 괜찮은 일이었다.

그런 동생과 내가 시간, 온도, 습도가 다 맞는 타이밍이 찾아와 이번 설에 술을 마시게 되었다. 장소는 집 앞 막걸리집. 주종은 소주. 안주는 두부김치. 내가 2살 언니기는 하지만 동생보다 괜찮은 점은 요만큼도 없었기 때문에 만만한 언니로 지냈으나 술 마실 때만은 달랐다. 나는 물 대신 맥주로 입을 헹구는 사람. 그거 하나만으로도 분위기를 장악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 병, 두 병, 세 병, 네 병(이 때 그만했었어야 했다), 다섯 병(제발 그만), 여섯 병(에휴)을 먹었을 때쯤 나와 동생은 만취했고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자 완전히 맛탱이가 가버렸다.

우리는 술집 앞 공터에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갑자기 너무 슬펐고, 갑자기 내 동생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고, 갑자기 죽은 고모 생각도 났고, 갑자기 헤어진 애인 생각도 났다. 갑자기 너무 외로웠고, 갑자기 누구랑 너무너무 이야기하고 싶어진 나머지 핸드폰을 뒤져 아무에게나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내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남자친구와 통화하고 있었던 것 같다)

문제는 몇몇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사랑고백을 했던 것, 그것도 엉엉 울면서. 더 문제는 또 다른 몇몇 친구들에게는 살인예고와 함께 협박을 했던 것, 그것도 엉엉 울면서. 더 큰 문제는 그 중에 내가 정말로 마음 쓰였던 사람도 있었던 것이다. 왜 나는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정작 잘하고 싶었던 사람에게는 욕을 퍼부었을까. 나도 내가 너무 싫다. 자기혐오 성공^^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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