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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못된고양이레오 Jan 06. 2023

E13. 이쯤 되면 갈수록 못난 것도 재주다

포켓몬스터 스칼렛 / 바이올렛 (2022)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발전한다는 믿음에 갇혀 살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포켓몬 컴퍼니는 그러한 인류를 눈 먼 믿음으로부터 구해내고 싶었던 것일까요?

적어도 포켓몬스터 시리즈는 그러한 인류의 믿음을 철저히 박살내는 중이거든요

언제 출시된 작품을 보더라도 구작이 명작이었다는 소리가 나오는 놀라운 역사를 반복하고 있는

포켓몬스터 게임 시리즈에 대해 잠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포켓몬스터라 하면 명실상부 오늘날 최고의 가치를 지닌 IP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사 방식이나 주체 따라 다르지만 Pokemon 하면 항상 최상위권에 자리잡고 있죠

이러한 포켓몬의 인기 덕에 닌텐도는 지금까지도 게임 업계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습니다

닌텐도 독점 IP인 마리오, 젤다, 포켓몬, 동물의 숲 등의 인기 덕이죠



96년 처음 시작된 포켓몬스터 시리즈는 세대가 바뀜에도 그 인기를 계속해왔고 지금은 부모와 그 자식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위치에까지 올랐습니다

긴 역사 만큼이나 다양한 기기와 다양한 게임들이 출시되었고

소위 말하는 '본가' 타이틀 외에도 다양한 외전들이 출시되면서 큰 인기를 끌기도 했었죠


그 중 특히 '포켓몬고'와 '포켓몬 아르세우스'의 경우 상당한 작품으로 호평 받으며 본가 시리즈와 비교되기도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은 시기 나온 8세대 시리즈, 포켓몬스터 소드 / 실드가 소의 '반갈죽'과 찰흙 모션으로 만듦새에 큰 실망을 안겨주었거든요

리소스 부족으로 개체수를 줄일 것이었으면, 모델링이나 모션에서 이점이 있다던가, 특별히 추가된 시스템이 있어야 납득이 되었을 것인데

상당한 개발 기간을 갖고 출시되는 작품임에도 이전작이나 외전작에 비해서도 한참 못미치는 완성도를 보여 팬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습니다



혹자는 포켓몬 시리즈에 대한 실망은 변화에 대한 도전이 없기 때문이라 하기도 했으나

포켓몬 시리즈는 나름 다양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매우 못 만들어서 그렇지 8세대 소드/실드에 이르러서는 3D 그래픽과 날씨 연동 포켓몬 출연이라는 새로운 시스템, 그리고 거다이맥스라는 새로운 배틀 시스템도 만드는 시도를 했거든요


문제는 이러한 시스템들이 정말 필요했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3D 그래픽은 잘 만들었는가? - 시대의 트렌드를 따르기 급급했을 뿐 완성도는 부족하지 않았나

날씨 연동 포켓몬 출연 시스템은 적절했는가? - 굳이 출연 포켓몬을 날씨에 연동하여 플레이타임만 늘었을 뿐 

거다이맥스는 게임의 재미를 올려주었는가? - 적어도 배틀의 재미를 더해주기는 했다


출연 포켓몬 수를 반으로 줄이면서까지 위의 시스템이 필요하였는가 하는 부분이 설득이 되지 않았기에

결국 일부 포켓몬에 대해서는 DLC '왕관의 설원'에서 복구하기도 하였습니다만

팬들의 애정을 인질 삼아 dlc 팔이를 한다는 또 다른 비판에 직면해야 했죠



이번 포켓몬스터 9세대 스칼렛 / 바이올렛은 그러한 비판들과 외전들과의 온갖 비교를 듣고 출시한 작품이었습니다

하필이면 소드 실드 이후 출시된 포켓몬 아르세우스가 너무나도 잘 만들어진 외전으로 본가보다 낫다는 평을 들었고,

중국 회사에 IP 외주를 준 포켓몬 유나이트 조차 본가보다 훨씬 매끄러운 모델링을 보여주었기에 포켓몬스터 게임 개발 담당인 '게임프릭'의 개발능력이 평가절하되고 있었죠


그리고 스칼렛 / 바이올렛을 출시하며 그러한 여론을 반전시켜 보려 했는데...

PV 공개 동시에 전설 포켓몬이 왜 저따위냐 부터 시작해서

어색한 3D 그래픽과 모션에, 출시 하자마자 온갖 버그까지 보여주면서 또 다시 최악의 세대라는 평을 갱신했습니다


이쯤 되면 포켓몬스터 본가 시리즈는 매번 퇴보한다는 평이 정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죠



여기서 한번 쯤 포켓몬스터 시리즈가 사랑받는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포켓몬스터 게임의 본질은 포획과 성장, 그리고 진화에 있습니다

모험을 거듭하면서 새로운 포켓몬을 만나고 마음 가는 포켓몬을 포획해 성장시키며 진화해 나가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심플한 원칙에 게임의 재미를 배가시키기 위한 장치들이 몇가지 있습니다

첫째로는 투 타이틀 전략 - 1세대 레드 그린 블루를 제외한 모든 시리즈는 골드실버, 루비사파이어, ... 블랙화이트, 썬문, 소드실드, 스칼렛바이올렛과 같이 2개의 타이틀로 분리되어 출시되었으며

이 두 타이틀 간의 차별점을 만들기 위해 출연 포켓몬에 차이를 만들어 두었습니다

한 편으로는 두 별개의 타이틀을 통해 회사의 이익을 높이고, 다른 한 편으로는 유저들 간에 소통과 교류를 유도하게 한 방식이었죠

이 두 타이틀 간에 차이는 출연 포켓몬 뿐이었고, 교환 및 통신을 통해 여전히 원하는 포켓몬은 얻을 수 있었기에 유저들의 반발이 크지는 않았습니다


두 번째로는 랜덤 인카운터 시스템 - 안전한 길과 포켓몬이 출연하는 풀숲을 분리하여 전략적인 선택을 가능하게 하였고, 포켓몬과의 조우를 랜덤으로 만들며 재미 요소를 올리는 장치였죠

다만 원하는 포켓몬을 포획하는데에 피로감을 호소하게 만들기도 했고, 원치 않는 배틀의 강제에 대한 부담도 존재했습니다


세 번째는 스토리의 선형 구조입니다

최근에서야 오픈월드와 다양한 선택지가 게임의 표준이 되어가는 추세이지만, 게임의 재미 본질이 그러한 스토리에 구속되지 않는 포켓몬의 경우 그러한 오픈월드를 구축할 필요가 없었기에 선형 구조를 이루고 있었고

이러한 선형 진행에 맞추어 각 마을의 특색과 관장의 특성을 배치하여 재미를 배가시킬 수 있었던 것이죠

예를 들어 물 포켓몬과 파도타기를 3번 마을에서 배웠다면 4번 마을은 바다를 건너 가야하도록 만듦으로써 스토리의 유기적인 배치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무엇이 게임을 재미있게 하는가? 하는 부분은 심오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추후에 기회가 되면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놀랍게도 포켓몬스터 스칼렛 바이올렛은 이러한 요소들마저 깨기 시작해버렸습니다

랜덤 인카운터 시스템을 완전히 포기하면서 일정 부분 재미 요소를 포기하였고, 오픈 월드를 선언하면서 스토리의 구조는 완전히 박살나 버렸습니다

표면 상으로는 세가지 스토리 방향을 '자율적'으로 선택해서 진행한다고 했지만, 현실은 그런 진행은 불가했으며, 오히려 각각의 스토리를 진행하는 데에 정신없게만 만드는 진행 방식이었던 것이죠

전형적인 '잘못 설계된 오픈월드'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외에도 각종 버그와 직관적이지 않은 시스템들도 문제였습니다

버그들이야 추후 버그 픽스 패치로 해결했다 치더라도

아르세우스에 비해 한참 떨어지는 포켓몬 라이딩 시스템,

마찬가지로 아르세우스에 비해 한참 떨어지는 포켓 볼 투척 조준 시스템,

포켓몬 사냥을 통한 소재로만 제작 가능한 기술머신 제작 시스템,

말 같지도 않은 샌드위치 제작 시스템이나 전혀 별개로 떨어져 붙지 않는 식사 모션,

자유로운 의상 커스텀이라면서 실제로는 거의 바뀌는 게 없는 색칠놀이 의상 시스템 등은 너무도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하다못해 체육관 도전 미션 및 퀴즈마저도 8세대보다도 퇴화한 모습을 보며 이게 정녕 생각하고 만든게 맞나 싶기도 했습니다




게임을 이렇게까지 조져놨으면 판매량이라도 낮아지면 모르겠는데

또 그렇지가 않은게 문제입니다

워낙에 인기 시리즈인지라 일단 판매는 잘 되고 있거든요

아무리봐도 제작 퀄리티로 봐서는 제작비는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것 같은데 매출은 늘고만 있으니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는게 참 암울할 따름입니다


이제는 하도 기대감조차 없어져서 많은 것을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냥 예전의 그 정도 수준만으로라도 유지만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명작이나 재미는 그냥 아르세우스 같은 외전에서 챙길테니

본가 시리즈 만큼은 망치지나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포켓몬스터 스칼렛 / 바이올렛은 정말 간만에 즐긴 최악의 게임이었습니다


바닥인줄 알았는데 지하가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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