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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못된고양이레오 Mar 03. 2019

E01. 추억과 음악은 방울방울

델리스파이스 5집 - Espresso (2003)

어떤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데에 음악만한 것이 없는 것 같다.

5년, 10년 전의 음악일지라도 내가 그 곡을 들으면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에 대해서 어렴풋이 기억나곤 한다.

그러한 음악 중 하나가 바로 델리스파이스의 Espresso 앨범이다.



상당히 신기하게도 앨범이 하나의 주제로 통일되지 않은 느낌을 받는 구성이다.

2000년대 초, 그리고 인디 1세대 앨범의 특징인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옴니버스식 구성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한 곡 한 곡이 모나지 않고 대충 만들어졌거나 시간 떼우기라는 느낌 없이, 꾹꾹 눌러 담은 느낌.




특히 인상 깊었던 트랙은 '우주로 보내진 라이카'와 '저도 어른이거든요'.

'키치죠지의 검은 고양이'는 다소 어두우면서도 분명한 이미지를 그려내고 있는데, 일렉 기타의 연주가 인상깊었고, '노인구국결사대'는 왠지 모르게 베르나르 베르베르 '황혼의 반란'이라는 글이 떠오르기도 하다.


진짜로 우주로 보내져버린 라이카

'우주로 보내진 라이카'는 제목 그대로 우주로 보내진 강아지 라이카의 이야기를 노래로 담았는데, 이 발상 자체가 독특하기도 하고 뜬금 없어서 기억에 남는다.

심지어 7번 트랙, 한국 인디 음악사에 길이 남을 공전의 대히트를 기록한 '고백' 바로 뒤에 나오는 곡이어서 더 기억에 남기도 하다.

외로움과 굶주림 속에 우주를 떠돌다 죽은 강아지라는 주인공과는 달리 다소 밝은 분위기로 곡이 진행되는 것도 인상적.


10번 트랙 '저도 어른이거든요'는 마치 나의 이야기인것 같아 좋았던 곡이다.

착한 아이 컴플렉스라고 하던가?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갇혀 살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어느 순간 그렇게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닳는 지점이 왔던거 같다.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성인이 되고 사람들을 겪어 가면서 조금씩 가치관의 변화가 왔던 것.

그런 변화를 겪는, 소년에서 어른으로의 성장에 대한 음악으로 느껴져 상당히 공감이 되고 좋았다.


그 외에도 '날개달린 소년', '별빛속에', '숨겨진 보석' 등등 모두 좋은 곡들로 구성되어있지만, 뭐니뭐니 해도 이 앨범에서 '고백'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을 것 같다.




델리스파이스 '고백' 하면 떠오르는 세 가지 - H2, 영화 클래식, 응답하라 1997


아무리 인디밴드에 관심이 없고, 델리스파이스가 밴드 이름인지 음식점 이름인지 모를 정도의 사람도 '고백'이라는 곡은 한 번쯤은 접해봤을 거라 생각될 정도로 그야말로 대히트를 한 곡.


일본의 스포츠를 빙자한 연애 만화 H2를 모티브로 해서 만든 곡이라는 사실은 너무 잘 알려져 있지만, 이 곡을 듣기 위해서 H2를 알아야 하지는 않다는 것 또한 큰 장점인 것 같다.

누구나 공감할만한 정서, 듣기만 해도 이미지가 떠오르는 가사, 그러면서도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후렴구까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곡을 들으면서 떠올리는 것은 만화 H2의 장면이나, 본인이 만화를 보던 기억, 혹은 성장기 시절의 사랑 이야기이겠지만, 나는 다소 다른 이미지가 떠오른다.


우선 처음 이 곡을 들었던 고등학교 1~2학년 시절.

스쿨밴드 활동을 하면서 인디밴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러면서 델리스파이스의 음악을 접하게 되었다.

고등 2학년 문학 시간, 다소 독특한 강의 신념이 있던 선생님 덕에 만화를 문학으로 배우게 되면서 H2라는 만화를 처음 보게 되었고, 델리스파이스의 '고백'이 이 내용이다 라는 이야기를 친구가 말해 줌으로 둘이 연관되어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곡을 들으면 그 때 그 친구가 말해주던 그 장면이 떠오른다.

아마 저녁 먹고 야자 시간 준비하면서 가사가 안 그래도 화자가 이상했다면서 알려주던 기억...


또 다른 기억은 대학 스쿨밴드 활동.

아마 밴드 활동을 해보거나 관심있게 지켜본 사람들은 다들 한번쯤은 본 적이 있을 듯 하다.

쉬우면서도 좋은 기타 리프, 한 달 정도만 배우면 칠 수 있는 드럼과 베이스, 적당한 보컬 영역, 너무 어렵지는 않은 기타 솔로까지 그야말로 스쿨밴드가 하기 딱 좋은 음악 구성이 아닌가?

대학 축제 시즌, 혹은 밴드 공연 시즌이 되면 주변 합주실에서는 여지없이 이 곡이 흘러나오곤 했다.

본인도 수 없이 많이 들었고, 연습도 하고, 가르치기도 했었는데 그럼에도 딱 한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대학 밴드에 유난히 기타를 잘치던 친구가 있었는데 합주실에서 마지막 기타 솔로를 정말 기깔나게 뽑아냈던 것.

똑같은 연주여도 이리 다르다는 것을 보고, 예체능은 재능으로 하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는 순간이었다.




아무튼 델리스파이스 하면 인디 음악의 상징과 같이 느껴진다.

두유 노우 델리스파이스? 두유 노우 인디 뮤직?

그럼에도 대중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만은 않은, 접근성 좋은 아웃사이더의 느낌.


오늘날의 음악들과는 달리 가사 하나하나를 찾아 들어가면서 음악이 주는 정서적 교감을 느껴보고 싶다면 인디 음악을, 그리고 그 시작으로 델리스파이스의 앨범을 추천한다.


무언가 모를 포근함이 담긴 음악을 듣고 싶을 때, 한번씩 꺼내 들게 되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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