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배당주 투자 계획을 다 세워놨는데... 망했다
0. 독자들이 내 미국 석사 학비 2년 치를 몽땅 내줬다. 사실이다. 한국과 비교하면 미국 학비는 적게는 2배에서 많게는 4배까지 비싸다. 차 한 대 급인 셈이다. 그런데 주식 하나 팔지 않고, 적금 하나 깨지 않고 현금으로 2년 치 학비를 한 번에 쏘았다.
1. 직장 없는 내 자금의 출처는 바로 인세다. <무기가 되는 글쓰기> 또는 <플러팅 영어>를 구매한 독자라면, 모두 배작가 석사 장학금 <후원자>다. 다 내 학비에 지분이 넉넉히 있는 후원자다. 오늘 학비가 잘 들어왔다는 확인 이메일을 받았다. 이제 진짜다. 당장 7월부터 석사 과정을 밟게 됐다.
2. 나는 학비 자금의 출처가 부모님도 아니고, 월급도 아니고, 사업 또는 투자 소득도 아니고, <인세>라는 게 찡찡하게 기쁘다. 인세로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이 공부를 바탕으로 또 다른 책을 쓸 수 있다는 건, 작가로서 과히 최고의 인생일 것이다. 23년 1월, 서른이 다 돼서 작가를 하겠다고 설쳤다. 24년 1월에 <무기가 되는 글쓰기>를 출간했고, 4월에 <플러팅 영어>를 출간했다. 6월에 두 책의 인세를 몽땅 석사 학비로 투자한 것이다. 물론 계획한 투자는 아니었다.
3. 인세가 목돈으로 꽂혔을 때, 나는 이를 미국 배당주에 넣어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장기 투자가 될 것이고, 주식이 곤두박질쳐도 중간중간 현금 흐름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내 현재 상황과 안전지향 성향에 부합했다. <박곰희TV>, <경제T슈카쌤> 유튜브를 주말 내내 정주행했고, 배당주 베스트셀러를 잔뜩 쌓아두고 읽었다. 종목 선정이나 비율에 대한 나만의 기준을 세우고 있었다.
4. 그러다가 내가 평소에 배우다 배우다, 갈증까지 느껴버린 <켄 윌버>를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기적처럼 왔다. 그들의 철학을 아우르는 <자아초월 심리학>이란 학문은 생소한 이름이지만, 암만 생각해도 나는 이 학문이 아닌 다른 학문을 전공하는 나를 상상하기 어렵다. 서구의 심리학적 이해와 동양의 지혜 전통을 통합해 인간의 본성에 대한 총체적인 관점을 제시하는 학문 정도로 설명할 수 있다.
5. 이 분야의 학위를 제공하는 학교가 미국에 단 두 군데(Sofia, CISS), 한국에 딱 한 군데(서울불교대학원) 있다. 어차피 원서로 공부해야 하는 분야라 "기왕 공부하는 거, 미국 가서 공부해?" 심각하게 고민한 때도 있었다. 아기 고양이 나일이를 미국으로 어떻게 옮길 수 있을지까지 연구했다. 분명 손쉬운 이동은 아닐 것이다.
6. 내가 이렇게 고민만 하는 동안, 지인들은 한국 학교에서 당장 공부를 시작했다. 나도 실행력 하나는 뒤지지 않는데, 물끄러미 보고만 있었다. 부러웠다.
7. 내게도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졌다. 미국 학교를 한국에서도 다닐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미국 학교가 중국에 분교?를 세웠던 게 잘 운영됐는지, 한국에 처음 들어오게 됐다. 그래서 무려 1기로 입학 통지를 받았다. 단순히 1기라서 주어지는 장학금도 있다. 말도 안 된다. 암만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우주의 타이밍이다.
8. 미국 배당주 투자 계획을 다 세워놨는데... 망했다. 하지만 최고의 투자는 스스로에게 투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쩌면 나는 미국 배당 주보다 월등히 높은 수익률을 낼 것이다. 배작가 석사 학비를 후원해 주신 독자분들을 가만히 떠올려본다. 언젠가 "배작가, 내가 키웠어. 내가 학비도 내줬잖아." 자랑스럽게 말하는 독자의 말을 건너 듣고 싶다.
9. 눈을 감고, 길게 숨을 들이쉬고, 감사한 마음을 보내본다. 마음만 보내지 않고, 배움을 조각조각 소화해, 미주알고주알 나눠보겠다. 학문이 학문으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배우고, 나누고, 나눔으로써 또 배울 때 지식은 지혜가 될 것이다.
10. 사실 앞으로 석사 과정 2년 동안 내게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23년 1월의 내가 지금의 내 모습을 결코 상상할 수 없었던 것처럼. 내가 상상하는 그 어떤 모습보다 더 멋진 신세계가 펼쳐질 것이다.